2일 차, 하도조아
전날 막걸리를 마시고 잠을 자서 그런지, 꿀잠을 자고 8시 반쯤 일어나 급히 세수를 하고 짐을 싸서 들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샌들을 신고 식사 장소로 가렸는데 다리가 조금 당기긴 했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식사 장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는 중에 어제 저녁 막걸리 한잔 할 때 봤던 일행 중 한 명이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주인 아주머니와 약간의 이야기를 했다. (뭐 어제 막걸리 마시면서도 조금 얘기하긴 했지만) 그리고 나서 가방을 메고 나오려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알바생과 주인 아주머니께 우리 커플이 멋지다고 응원을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앞으로 계획에 대한 약간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사실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고 응원도 많이 받지만 아무 연이 없는 사람에게 응원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월정리 해변가로 가서 다시 올레표식을 따라가기로 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서 영양바도 사고, 대일밴드도 샀다. 근데 뚝방이가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내 양말을 돌돌 말아 가방끈이 어깨에 닿는 부분에 끼워 주었더니 많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다음번에 가방을 사게 된다면 어깨 부분이 넓고 푹신한 것으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어제 올레 20길을 반 정도 걸었기 때문에 나머지 반 + 올레 21코스 반 걷기로 했다.
총 20km쯤 되는 길이다.
걷기 여행이라는 게 사진 찍으며 여행하기 좋았다. 차를 타고 다녔다면 작은 골목길, 담벼락에 간신히 얼굴만 내놓고 짖는 동네 개라던지 주인 없는 작은 귤나무에 열려있는 덜 익은 푸릇한 귤 따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면 걸으면서 주변 풍경들은 느리게 지나갔고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제주도의 검은색 현무암 돌담은 많은 것과 조화를 이루었다. 흙, 모래, 갈대, 풀, 앞에 지나가는 할머니, 똥개 등…. 모든 것을 운치 있게 만들어 줬다.
길 따라 계속 걷다 보니 무슨 아마존을 방불케 하는 작은 숲이 나왔다. 길이는 짧았지만 제주도의 작은 열대우림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큰 나무들과 풀, 벌레, 새..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었다.
작은 열대우림을 빠져나오니 이번엔 유적지가 나왔다. 잠깐 위에 올라가 햇빛도 피할 겸 물도 먹고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유적지에서 휴식을 마치고, 걷다 보니 이번엔 특이한 밭(?)들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정원 같기도 하고 분명 다시 봐도 밭인데... 가운데 저렇게 나무가 있다던지 돌들이 있고 약간 코스가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밭들도 있었다.
느리게 걷는 여행이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들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꾸준히 걷다 보니 평대리까지 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되고 해서 주변에 있다는 알 이즈 웰을 찾아봤다. 제주여행 블로그를 보다가 찾게 된 집이었다. 둘째날 점심을 여기서 먹자고 생각을 했었지만. 화요일 휴무로 인해 가게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명진전복이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해서 전화를 해봤다. 하지만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걷다가 괜찮은 곳이 나오면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점심도 못 먹었고, 기운도 없어서 평대리 근처에 커피맛으로 유명세를 탄 카페를 가보려 했다. 하지만 역시, 화요일 휴무였고 담벼락 밖으로 반겨주는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만 있을 뿐 이었다.
커피타임을 포기하고, 길을 따라 가보니 이번엔 시베리안 허스키 믹스견이 담벼락 밖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마을 골목길과 약간의 숲, 도로를 거쳐 다시 바다가 나왔다. 시원한 바람에 잠깐 감탄을 했다. 메르스의 여파인지, 아직 비수기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화읍의 바닷가 근처 마을은 정말 조용했다.
세화읍에 와서 제일 먼저 음식점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찾은 어느 작은 이태리 식당이다. 2층에 있었는데 멀리 바닷가가 보이는데 꽤 운치 있는 음식점 이었다.
밥 먹고 기운내서 금방 하도리 입성!, 하도리에 20코스 끝 지점 21코스 시작 지점이 있었고, 21코스 중반엔 오늘 우리가 숙박할 하도 조아가 있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찍은 뚝방이…무서워서 저만치 떨어져 찍었다.
하도리에는 별방진이라는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별방진 : 1973년 4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김녕읍에 있던 진을 이곳으로 옮겨 별방이라 이름 하였다. 성의 총 길이는 1,008m, 높이는 35m 정도이다. 성에는 관사와 창고가 있었고, 동·서·남의 세 곳에 문이 있다. 성을 쌓을 때 흉년이 심하여 부역하던 장정들은 인분(人糞)까지 먹어가며 쌓았다는 이야기가 인근에 전해 온다. 구좌읍 하도리는 옛 지명이 별방이며, 서문리는 별방의 서문 안에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고려 때부터 동부와 서부 해안에 석성을 쌓아 군인들을 주둔시켜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는데 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명월진, 차귀진, 모슬진, 서귀진, 수산진 등 9진이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별방진 [別防鎭] (두산백과)
어느 순간 마을을 빠져나와 주변을 보는 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되지만 내 앞의 보이는 모든 곳에 바다가 있었다…
마을과 밭들을 빠져나와 끝없는 해안도로 가운데 있는 어느 망고주스 집에서 스페셜 망고 주스를 먹었다. 스페셜의 이유는 아무것도 첨가 없이 100% 망고로만 만들었기에 그렇단다. 맛도 스페셜 했지만, 멋진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잠깐 쉬면서 먹는 망고 주스는 어느 때보다 더 스페셜 했다.
21코스 중반에 하도리동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우리 숙소는 하도리동동의 하도조아라는 숙소이다. airbnb에서 쿠폰도 받았겠다, 독채를 예약을 했다. 독채 치고는 가격이 비싸지 않을뿐더러 정말 모든 게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마을 입구에서 꽤… 거리가 됐다. 약 5km는 걸어간 것 같다. 마을 깊숙이에 자리 잡은 숙소, 아름다운 집 만큼이나 주인 아주머니는 매우 친절하고 멋지신 분이었다.
우리가 숙박한 하도조아,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깔끔하고 아기자기했다. 오자마자 샤워를 하며 빨래를 했다.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건조기를 돌린 뒤 빨래를 널고, 사진을 간단하게 찍은 뒤 고기를 사러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5월에 친구들과 동해로 놀러 가는 겸 해서 웨딩사진을 찍었었다. 원래는 제주도에서 찍고 싶어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동해에서 진행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제주도로 걷기 여행을 온 것이고, 약간은 웨딩촬영도 겸하자 하는 의견을 수렴하여 여행 중에 발견하게 되는 예쁜 장소에서 간단하게 몇 컷씩 찍기로 했다.
전문 사진작가가 멋지게 찍어주진 않았지만, 땀 흘려 얻은 멋진 장소와 여기까지 믿고 따라와준 뚝방이 그리고 허접하지만 나름 챙겨온 옷과 준비물들을 이용해 온전히 나와 너, 우리의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정말 보람찬 일이다.
촬영은 1시간 폭풍 촬영을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시내로 나가 먹을 것을 사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까운 세화읍으로 나가, 제주도 돼지의 오겹살과 항정살 등, 유산균 막걸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구워서 먹었다. 멋지신 주인 아주머니가 밭에서 풀이나 좀 뜯어서 고기와 같이 먹으라 했지만, 귀찮기도 해서 그냥 김치랑 먹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소금도 쌈장도 없이 김치와 고기만으로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돼지고기도 정말 맛있었지만 유산균 막걸리는 정말 일품이다. 여행 첫날에 먹고 알게 된 막걸리인데 제주도내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유통기한이 짧아서 외부로 가지고 나가기 힘들다는 게 그 이유이다. 멋진 저녁식사를 한 뒤에 찍은 사진들과 오늘 놓쳤던 뉴스들을 보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둘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