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금빵 Nov 06. 2024

1. 신혼 이혼, 내 이야기가 되고 있다.

생지옥의 시작



여름 휴가지를 정하며 내가 그랬다.

해외 여행을 가고 싶은게 아냐, 너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거지.


나는 우리가 여행을 다녀오면, 예전처럼 다시 애틋해질 줄 알았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바닷가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도 많이하면, 원래 우리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연애하는 5년간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했고, 어려움이 많았던 결혼 생활도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요사이 유난히 냉랭하고 말없는 네가, 너만의 굴 속에서 나오면 고민하고 견디느라 또 고생 많았다고 꼭 안아줘야지 라며, 이 고난을 극복해낸 우린 한층 더 단단해질 거라고, 나는 이혼은 꿈도 안꿨다.


얘기 좀 하자길래, 나는 드디어 터널이 끝나나보다 싶어 내심 반가웠다. 이제 진솔한 대화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네가 꺼낸건 "결혼 생활 여기까지 하고싶어." 라는 이혼 통보였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을 철회하는 법이 없는 너는, 오늘 밤 잘 곳을 구해놨고, 내일은 내가 출근한 사이 짐을 빼 구해둔 방에서 머무를 것이라는 계획을 단조롭게 말했다.


잠을 못자는 날은 있어도 밤을 새본적은 없는 사람인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 속에서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와 내가 손수 하나하나 마련한 가구와 가전과 소품들 사이에 홀로 남겨진 채,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하나님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도하면서, 눈물 한방울 조차 흘리지 못했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을 그만 두고 싶다는 건 정말 낭만적인 핑계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거고, 우리 앞에 놓여진 무수히 많은 어려움들을 견디기 싫었던 거지. 나는 너와 손잡고 모든걸 이겨내고 싶었는데. 어려운 문제보다 함께 있단 사실에 집중하고, 서로가 있는 일상에 행복함을 느끼며 같이 늙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인줄 내가 미처 몰랐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에 나는 난생 처음 태어나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나는 생각 정리도 못하고, 아직도 새벽에 깨서 멍하니 앉아있는다. 이혼 서류도 못쓰고, 재산 분할도 남의 얘기 같고, 약에 취해 무감각해진 채로, 삼십여년간 긍정해왔던 나의 판단력과 노력을 부정하며, 생지옥의 초입에 서 있다.


잔인한 식아

세상 순수하게 날 바라보던 너는 죽고 이제 없구나

꽃을 든 네가 좋았어. 예쁜 손이, 너의 품안에 안겼을때 나는 향기가, 영원할 거라 믿어서 내 마음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

나는 아직도 배신 속에 허우적대는데, 너는 나를 이렇게 만들고 혼자가 되어 이제 행복하니. 이제 자유로워 좋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