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독특한 지형과 삶
마을 안에는 진불래, 내팟동네, 큰 동네, 알동네, 성앞이, 버리동산, 고잪이 등등 작은 동네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내가 살았던 동네는 진불레(진빌레)다. ‘진’은 ‘긴’의 제줏말이고 ‘빌레’는 넓적한 바위나 암반지대를 의미한다. 즉 진빌레는 너럭바위가 길게 펼쳐진 지대다. 누가 "어디살맨?" 물으면 "진불레 살맨."이라고 대답했다. 난 진불레 아이였다. 마을 주민들 중에도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는데 이렇듯 우리 집은 마을 끝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난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어 동생과 노닥거리며 보냈다. 주로 집에서 놀았지만 간혹 진불레에 나가서 놀 때도 있었다.
척박한 제주, ‘너럭바위 암반지대’ 답게 밭으로는 못쓰는 공터가 펼쳐져 있는데, 그 시절 꼬마 아이 눈에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진불레 버덕에 나가면 온갖 가시덤불과 잡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길 엠바이(옆에) 무성하게 자란 잔디인지 억새인지 토끼풀인지 모를 풀 숲 안으로 들어서면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같은 것들을 늘 볼 수 있었다. 난 좀 겁쟁이라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곤충들을 덥석덥석 아무렇지도 않게 잡지는 못했다. 그래도 심호흡을 하고 숨죽여 다가가 살짝 다리를 집어 올리면 나도 잡을 수 있었다.
메뚜기는 머리도 네모나고 턱도 도드라진 게 좀 깡패같이 생겨서 고집 있고 힘 쎄 보였다. 조그마한 새끼들은 귀여웠지 만 덩치 큰 녀석은 좀 징그럽기도 하다. 방아깨비는 일 잘하는 똑똑한 삼촌처럼 생겼는데 가만 보면 얼굴도 잘생겼다. 성실하고 야무져 보여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곤충이다. 얄쌍하고 야리야리해서 톡 하면 부러질 것 같은 여치는 잡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얘네들이랑 놀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는데 어쩌다 낫 같은 두 팔을 휘적거 리며 위협하고 있는 사마귀를 볼 때면 기겁을 했다. 무서운 사마귀. 사마귀는 지금 봐도 괜히 썹지그랑하다. (오싹하고 진저리 나다)
진불레에는 사시사철 오만 풀들이 자라고 있다. 내창(건천) 근처에 토끼풀 군락이 있었다. 동글동글한 하얀 꽃들이 몽실몽실 잘도 몽케져있다(무리를 이루어 구름처럼 포개어져 있다). 이왕이면 땅과 가깝게 꺾어야 줄기가 길어 무언가를 만들기가 좋다. 진불레에 사는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는 토끼풀로 왕관도 만들 줄 알았다. 하양꽃줄기가 머리카락 땋듯이 마치 마술처럼 세 갈래로 꼬여지고 포개지고 더해진다. 나도 해보려 했지만 손재주가 없었는지 잘 되지 않아 금세 포기하고 그냥 꽃반지를 만들면서 놀았다. 흙 묻은 꼬질꼬질한 손에 하얀 꽃반지면 왕관은 없지만 난 이미 공주님이었다.
진불레는 넓은 공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암반지대라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집을 짓기도 어렵고 해서 그렇게 뒀던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진불레 버덕을 쓸모없이 방치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콩을 타작하기도 하고 깨를 세워 말리거나 털기도 했다.
콩은 제주사람들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랐다. 특히 돌밭에서도 잘 자라 예부터 흔히 심었던 작물이다.
콩밭에서 마른 콩가지를 꺾어 진불레에 가져와서 온 사람들이 달라붙어 매탁기로 최종 수확을 했는데 기계는 귀한 콩알들을 콩콩콩콩 타닥타닥 안으로 쏟아냈고, 쓸모없는 껍질들은 밖으로 멀리 토해냈다. 엄마는 콩알들을 솔빡(곡식을 푸는 바가지)으로 한껏 모아 마다리(포대)에 담았다. 분리된 콩껍질과 콩가지들은 적당한 곳에 버려져 거름이 되었다. 수확한 콩은 우리 집 창고에서 채로 치고 선풍기 바람에 불려 비로소 뽀얀 햇콩이 되었다. 마당에 멍석이나 갑빠(천막재질의 넓은 천. 무언가를 덮거나 바닥에 깔아 널 용도로 쓰임)에 콩들을 쏟으면 아빠나 할아버지가 갈래죽(곡식더미를 밀어 평평하게 만드는 도구)으로 평평하게 펼쳤다.
낮 내내 소락 하게(쾌적하고 습기 없이 뽀송뽀송하게) 햇볕에 말려진 콩은 저녁이 되면 다시 걷어서 창고로 집어넣는다. 콩을 거둬드릴 때 멍석이나 갑빠의 끄트머리를 잡고 콩이 흘리지 않게 가운데로 사악 모으면 가운데 작은 콩언덕이 생겼는데 어린 나와 내 동생은 거기를 올라가서 놀았다. 온몸을 던져 콩더미에서 헤엄 칠 때마다 서늘하고 딱딱한 콩알의 감촉이 기분 좋게 피부에 닿았다. 설레도록 엄청나게 많이 쌓인 콩알들을 실컷 만지고, 일손을 보탠답시고 한껏 모으고, 콩 담는 마다리 속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꼬맹이들의 온갖 벌테짓(개구쟁이 장난)에도 그 시절 젊은 날, 가진 것이 없던 엄마, 아빠는 타박할 새 도 없이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솔빡으로 마다리에 콩을 부지런히 담아 날랐다.
진불레에는 아주 커다란 폭낭(팽나무)이 여러 그루 있었다. 8월 중순, 더위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폭낭 아래에는 깨를 수확하는 농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더위에 깨농사는 고단하고 힘든 일이라 깨를 묶을 때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는데 우리 집 농사를 도와주면 다음번에는 그 집 농사를 도와주는 식이었다. 이런 품앗이 문화를 제주도 사투리로 ‘수눌음’이라 부른다. 갑빠를 펼쳐놓고 이제 막 베어온 깨가지들을 펴서 한 줌 크기로 나눠 묶는다. 아주 어릴 때는 온 식구 다 같이 모여 새(억새)를 꼬아 끈처럼 만들어 묶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 줌 크기로 묶은 깨들을 진불래버덕 적당한 곳에 작은 움막 모양으로 세웠다. 깨움막(?)들을 줄줄이 길을 따라 일렬로 세워 뜨거운 햇빛에 말렸다. 며칠이고 바싹 말려진 깨묶음 들은 세 번에 걸쳐서 수확한다. 갑빠를 깔고 깨묶음들을 가지고 와 몇 개씩 들고 막대기로 탁탁 때릴 때면 깨가 정말 깨깨깨깨하고 떨어졌다. 깨고 콩이고 진짜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싶은 게 깨는 생김 마냥 아주 작고 납작한 알갱이가 정말 ‘깨’ 같고, 콩은 통통통통 야물딱지고 경쾌한 게 정말 ‘콩’ 같다. 뜨거운 여름 수확한 깨는 역시 우리 집 창고로 가서 채로 치고 선풍기로 불려서 마당에서 소락하게 말렸다.
화산 지대인 제주에 자리한 하천은 대부분 비가 많이 올 때만 흐르는 건천이다. 비가 오고 나면 한 때의 영광처럼 물은 잘도 넘쳐흘렀지만, 평소에는 바위에 둘러 쌓여 야속하게도 바닥을 훤히 드러냈다. 하지만 가끔 마르지 않고 고인 물도 존재했는데 진불레에는 그런 연못이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곳이 호수처럼 넓게 느껴졌는데 소금쟁이 가 성큼성큼 물 위에 떠 가던 기억도 난다. 진짜 아주 어릴 때는 아빠가 농약 치러 갈 때 가끔 거기서 경운기로 물을 펐었다. 가뭄이 들었을 때도 진불래 연못물을 퍼서 미깡밭에 주기도 했다. 태풍이 불거나 비가 아주 많이 오면 물은 진불래 연못 밖으로 넘쳐 내창(건천)을 타고 학교 앞까지 마구마구 흘러갔다. 이렇게 물이 넘쳐 흐르는 것을 ‘내친다’고 한다. 우레 같은 소리로 진불래 내 칠 때면 슬쩍 나가서 모여있는 어른들 틈에서 물에 떠내려온 슬리퍼 같은 것을 구경하곤 했었다.
이제 마흔이 넘어 친정 가는 길, 모처럼 진불레로 자동차 핸들을 돌려보았다. 폭낭들은 그대로 있지만 연못은 사라졌다. 토끼풀과 잔디들은 마을정비사업으로 심어놓은 왕 벚꽃나무들과 콩을 털던 들판을 나눠 쓴다. 길 앰바이 잡풀 속에 살던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사마귀보다 근사한 타운하우스가 먼저 눈에 띈다. 다시 볼 수없는 그 시절 기억들이 건천을 타고 펑펑펑 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