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족한 거. 식구들 입고망으로 들어가는 것

제주 음식

by 은정




우리 친정집은 ‘문전철갈이’를 했다. ‘문전철갈이’란 제주도 풍습으로 각 가정에서 음력 정월 초순에 집안의 가신(家神)에게 한해의 액운을 막고 복을 비는 의례이다.


아주 어린 꼬꼬마시절의 기억으로 설 다음 날 때쯤 집으로 ‘심방’들이 찾아와 집 안에 서 굿을 한 뒤 같이 음식도 나누어 먹었고, 좀 더 자랐을 때는 엄마가 이른 새벽 굿당에 다녀온 뒤 ‘차롱’에 담긴 음식들을 나누어 먹었다.


‘차롱’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구니이다. 정월 초순 굿당에 다녀온 “엄마의 차롱”안에는 흰쌀밥과 과일, 삶은 계란, 구운 생선, 돌레떡이 놓여 있었다. 깨끗하게 닦은 차롱에 담긴 신들이 먹는 음식은 맑고 정갈하고 담백했으며 가엾고 소박한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새벽, 엄마는 돌레떡을 만들었다.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을 부어 반짝이는 새 스댕낭픈(스테인리스 양푼)에 치대며 익반죽을 했다. 완성된 반죽덩이를 적당한 크기로 뜯어내어 동그랗게 빚는다. 동글동글. 동글동글. 고단했던 거친 손에서 멥쌀가루 반죽이 갸륵한 소원들과 더불어 동그랗게 빚어진다.


떡은 찌지 않고 뜨거운 물에 삶아 낸다. 갓 만든 돌레떡은 방금 삶았을 때보다 좀 식었을 때 아주 맛있어졌는데, 엄마가 새벽 굿당에 다녀온 오전 9시에서 10시쯤이 가장 적당했다. 설을 지내고 사촌 형제들이 다 서울로 돌아간 뒤, 아쉬움에 울고 있는 철부지의 마음을 채워준 건 굿당에서 돌아온 돌레떡이었다. 식은 돌레떡은 그야말로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깨끗하고 신성한 떡과 짭짤하고 고소하게 구워진 생선은 아주 궁합이 잘 맞았다. 떡 한 입, 생선 한 입, 떡 한 입, 생선 한 입. 정월 초이틀, 결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먹을 수 없는, 우리 식구들의 늦은 조반이었다.




돌레떡만큼이나 특별했던 음식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몸국’이다. 지금은 향토음식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내 기억 속 몸국은 잔칫날 먹는 음식이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과거 제주에서 결혼을 할 때면 3일간 잔치를 했다. 첫째 날은 ‘도새기 잡는 날’이라 하여 친척과 가까운 마을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아 잔치를 준비했고, 둘째 날은 ‘가뭇잔치(가문잔치)’로 손님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으며, 셋째 날은 ‘예식’을 올리는 날로 결혼식과 폐백음식을 준비하고 신부를 신랑집으로 떠나보냈다. 그중 첫째 날 먹는 음식이 바로 몸국이었다. 몇몇 동네어른들은 기왕이면 베지근하게(고소하고 진하고 다소 기름기 있어 속이 든든하게) 몸국을 먹어야겠다며 굳이 첫째 날 잔칫집에 오기도 했다. 몸국은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시간은 제법 많이 걸린다. 잔치를 위해 잡은 돼지의 뼈를 아주 큰 가마솥에 푹 고운다. 하루 온종일 고아낸 국물에 고기와 모자반을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팔팔 끓인다. 어른들을 졸라 유리병 오렌지맛 환타를 까먹은 나와 동생과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은 따뜻한 몸국 한 사발에 추위를 털어버리고, 북적북적한 잔칫집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돼지를 삶는 솥은 보통 마당 구석 한쪽에 자리 잡았는데 그곳에는 희뿌연 연기 속 장작더미들과, 고기들과, 소주 한 잔 걸친 동네삼춘들이 모여 있었다. 일회용 나무젓가락 껍질들이 바닥을 굴러다니던 멍석 옆, 천막 속 접의자들의 끼익 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윷놀이 한판이 벌어졌다. 작은 종지에서 날아간 손가락 마디만 한 윷가락에 굵직한 환호가 터져 나온다. 코흘리개들은 윷 판 근처를 주억거리다가 고기도 집어먹고, 순대도 집어먹고, 그마저도 배가 부르면 아빠나 삼촌들 틈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중산간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다. 몸국에는 평소 자주 못 먹는 모자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시장에 가면 돈 주고 살 수 있다 하여도 모자반이니 톳이나 성게 등은 해녀들이 바당에서 맨몸으로 건저온 귀한 식재료임이 분명했다. 제주에는 돼지뼈로 국물을 낸 요리가 제법 많은데 배추나 무는 오래 삶으면 물러졌지만 오독오독한 모자반은 씹는 맛이 있었다. 베지근한 국물에 풀어진 메밀가루는 고소하고 걸쭉했 다. 고기가 잔뜩 들어간 뜨끈한 몸국 한 숟가락에 허한 뱃속이 12월의 잔치집만큼 부산스러워졌다.

몸국을 꼭 잔치집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몸국을 조금씩 나눠 가기도 했다. 이젠 성인이 되니 더 이상 동네의 일가 잔칫집에 놀러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엄마가 큰일밭(잔치, 장례 등 큰 경조사를 치르는 곳)에서 가끔 몸국을 가져왔기에 집에 있어도 여전히 든든하게 밥을 말아먹을 수도 있었다. 아마 큰일밭에서 속고 있는(수고하고 있는) 동네 삼촌들은 내가 비록 나가 사느라 어쩌다 가끔 집에 들른다 할지라도 “야야, 희정이 어멍아, 아이들 와샤? 이거 가졍 강 아이들 주라.” 하며 몸국을 엄마 손에 챙겨 주었을 것이다.




오뉴월 제주의 들에는 꾸밈없이 수수하고 하얀 메밀꽃이 한창이다. 낮지만 옹골찬 까만 돌담이 소금밭 같은 메밀꽃을 둘러앉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군소리 없이 잘 자라는 착한 메밀은 소박하고 구수하니 맛도 참 착하다.


몸국에도, 빙떡에도, 고사리 육개장에도, 온갖 음식에 맛을 더했다. 메밀과 무는 짝꿍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무와 함께 범벅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독성이 있는 메밀을 무가 중화시켜 주었다고 한다. 버릴 것이 없는 메밀. 사람들은 메밀의 겨로 속을 채워 베개를 만들었다. 메밀베개는 더운 여름 땀이 많은 물애기(갓난 아기)들의 시원한 베개로 안 성맞춤이다.


피를 맑게 해주는 메밀은 산모도 즐겨 먹었다. 큰 아이를 낳았을 때는 메밀조베기(메밀수제비)를 미역국만큼이나 자주 먹었다. 출산 후 기력이 약해졌던 나는 입맛도 까다로워져 젖이 잘 돌라고 만든 돼지족 같은 기름기 많은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어했는데, 메밀 조베기만큼은 자극적이지 않아 소화도 잘 되고 입에 잘 맞았다. 딸의 출산을 맞이한 엄마는 팔팔 끓는 진한 멸치 육수에, 저냥한(미리 챙겨놓은, 모아 둔) 메밀가루로 만든 조베기 반죽을 트막트막(듬성듬성 큼직하게 토막냄) 떨어뜨렸다. 새파란 배춧잎을 아무렇게나 썰어 넣고, 간은 그저 굵은 소금로만 한다. 퍼런 잎이 들어간 잿빛 메밀덩이에 투박한 국물. 화려한 색감으로 식욕을 돋우려 애를 쓸 필요 없다. 친정 엄마와 몸을 푼 딸 사이. 그저 메밀조베기 한 사발. 몸조리하는 뜨끈한 방바닥에서 선땀(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푸푸 불어 먹었다. 그만하면 모유를 돌게 하기에도, 몸을 회복하기에도 충분했다.


밭농사조차 쉽지 않아 거센 바람에 씨앗이 날리고, 해안가 소나무조 차 낮게 휘어진 채 자라야만 하는 척박하고 고단한 땅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신 앞에서, 굿당에서, 특별한 날 모여 먹었던 귀하고 소박한 음식들은 나를 만들었다. 아이고 족한 거(아이고. 아깝고 소중한 거). 식구들 입고망으로 들어가던 것들의 기억. 선하고 간절한 소망과 정이 복작거렸던 큰일밭의 냄새, 손 닿는 곳에 흔히 볼 수 있는 투박하고 수수한 맛. 나는 돌레떡과 몸국, 메밀을 먹고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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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고명이 2024. 마실나갈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