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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도 Dec 26. 2021

[새벽 산책] 6. 심연 그리고 상(像)

적당한 어둠을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고, 슬픔의 맛을 깨달아버렸다. 꽤 오래토록 나를 지탱하던 선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달까!

어느 순간부터 문득 목적 지향적 삶 자체가 결국 현재를 팔아서 미래를 사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감정의 수렁에 빠질 때마다 미친듯이 행복 혹은 기쁨으로 덮어버리고자 했던 것도 마치 허공 속의 무지개를 휘어잡기 위한 맹목적 버둥질로 보였다. 어찌보면 고독과 멜랑콜리야말로 인간 본연의 실존일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부르짖음에도 이를 향유하지 못하고 더욱 더 침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현대사회가 가정한 행복의 정의는 애초부터 전제의 오류에 기반한 신화가 아니었을까. 비현실적 기대를 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타당하게 바라보는 것 이상을 가지더라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현재에 집중하는 카르페디엠, 인생의 성공, 더 큰 이익, 헌신, 사랑 등 지금껏 고민해 오던 삶의 가치가 하나하나 위험성을 지닌 잠재적 도화선처럼 느껴졌다. 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 혹은 대안으로 현재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의미와 목적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조금 더 반짝거리고 생기넘치는 돌파구를 찾고 싶은데, 깊게 들어갈수록 그토록 혐오하던 회의주의로 빠지고 있다. 아무래도 꽤 오랜 시간 동안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심연의 더 멀고 깊은 곳으로 가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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