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 언니

가슴으로 나눈 인사

by 옹달샘


센터에서, 방문 돌보미 자리가 났다는 전화가 왔다.


치매가 있으신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다. 함께 사는 아들 내외는 맞벌이 부부라, 남의 도움을 받게 됐다고 하면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게 자식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돌봐드리기로 했다.


어르신과 통성명을 하고 얼굴 익히는 첫날이다. 김이쁜 어르신, 이름대로 고우시다. 어르신은, 다섯 살 난 딸을 시장에서 잃어버렸는데, 그 후 십여 년 동안 딸을 찾아 헤매다가 몸도 마음도, 생활도 망가졌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왔고, 연세 드시면서 치매까지 왔다고 한다. 아직도 딸 이름을 부르며 식음을 전폐하시기도 한다니. 그동안 가족들의 고통도 컸으리라 짐작해 본다.


"영자야, 어디 갔다 이제야 오는 거냐,

하시면서 나를 붙들고 우신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

잃어버린 딸 이름이 영자라고 한다. 어르신을 안아드리며, 진정시킨 뒤. 동행의 첫날을 보냈다.




어르신은, 치매가 온 이후론, 감정기복이 심하고 행동도 과격해져, 물건을 잘 집어던지고 누군가가 딸을 훔쳐 갔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내가 퇴근할 때면 가방을 뒤지기도 한다. 의심을 해소시켜 드리기 위해, 작은 손지갑만 가지고 출근을 한다.

" 너, 내 아들이 미국에서 사다준 가위하고 다리미 가져가면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하면서, 난리를 피우신다.


아들한테도 가위와 다리미에 얽힌 사연이 있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한다,

가위와 다리미에 얽힌 사연이 뭔지 나도 궁금하다.

가위와 다리미, '혹시 젊으셨을 때 봉재 일을 하셨을까?' 하고, 상상을 해본다.


우리 엄마도 젊었을 때 봉재일을 하신 기억이 새록 난다. 엄마의 가위질 소리는 " 싹둑싹둑" 새벽의 정적을 깨고, 자장가 되어 귓가를 맴돌았고,

전등 밑에서 밤을 하얗게 태우며, 원단을 잘랐을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솥뚜껑 같은 손 덕택에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살았다.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쓰기도 주저하신 엄마,

우린, 그렇게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며,

우린, 그런 엄마의 희생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고 살았다. 바보같이...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삶도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효도를 해도, 긴 병엔 장사가 없다고 하니...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환자와, 친구가 되어주고 그분들의 든든한 편이 되어 주어야 된다.


맑은 정신일 때는,

" 자식들 다 필요 없어, 네가 제일 좋아, 나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함께 있어줄 거지?,


나를 참 많이 의지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상태가 심한 날에는 몰래 집을 나가시기도 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잠이 드신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꿈속에서, 잃어버린 딸과 시냇가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라도 나누는지,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문득,

작은 딸아이 세 살 무렵, 병아리색 원피스 입혀 걸음마시킬 때,


"어머나. 매가 체가겠다."라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가곤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자식인데 어르신은 평생 생사도 모르는 자식을 가슴에 안고 살았으니...


두 달을 돌봐드렸지만 치매 증상이 호전되는 기미는 안 보이고 점점 나빠져서 가족들이 의논 끝에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한 듯하다.


오늘은 어르신과 보내는 마지막날이다. 당신이 요양원에 가는 걸 눈치채셨는지, 오늘따라 나를 보는 눈빛이 슬퍼 보인다. 식사도 잘 안 하시고 생각에 잠긴 듯이, 창밖만 바라보고 계신다.


자식을 먼 곳으로 입양 보내는 심정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같으려나...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이 불치병 "치매"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켜드리며, 따뜻하게 안아드렸다.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스럽기까지 했다.


퇴근하려는 내게,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두 장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셨다.




" 이쁜 언니, 가지고 계시다가, 드시고 싶은 거 사 드세요, 아니야, 영자 너 사탕 사 먹어라. 하시면서."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셨다.

어르신이 내게 주시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았다.


책갈피에 꽂아 놓고 "김이쁜 어르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기로 하고, 다음 어르신을 맞이할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목에.


하루를 뜨겁게 불태웠던 태양이, 저녁노을 속으로 멀어지고,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

무심한 바람은 가지를 마구 흔들어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