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장애물이 아니다

by 옹달샘


낯선 문을 열자
쉽게 풀리지 않는 공기가
방 안에 층층이 고여있다

싱크대엔
짝 잃은 고무장갑 하나
거친 손등처럼
굳어진 채 걸쳐져 있다

누렇게 바랜 벽
지나간 사람의 체취
살이 터진 듯 벌어진 자리

손을 대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진다

흐르다 멈춘 얼룩은
눈물의 모양으로 남아

밤을 비운 병 하나
아직 바닥에 구른 채
떠나길 주저한다

벽지를 한 겹씩 벗겨낸다
이곳에 눌어붙은 시간들을

드러난 자리마다
익숙한 숨을 밀어 넣고

마침내
벽 앞에 선다

벚꽃 벽지로 덮는다

짐을 풀고
빈 곳을 채우며,
한 장씩
나의 시간을 벽에 바른다

벽을 넘어
벚꽃이 번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