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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Jun 29. 2024

 우월과 열등 사이 어디쯤 서있는 우리

수필-울산광역매일신문 해외기획편  게재

그녀는 벌써 한 시간 반 넘게 자랑 중이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익숙한 수다로 서로 사는 이야기를 잠시 한 후 그녀의 일방적인 자랑이 시작되었다. 틈틈이 그녀는 커피 잔과 조각 케이크를 요리조리 돌리며 각도를 조절하고 테이블 위 화병을 이리저리 옮기며 사진을 찍고 나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산만함에 대화의 흐름이 끊어져 ‘처음 꺼낸 이야기가 뭐였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잠깐 딴생각에 빠진 것을 귀신 같이 알고 그녀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집중해 달라는 뜻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대기업에 취업해서 용돈을 얼마를 줬다는 대목에서 맞장구를 쳐주지 못한 게 거슬렸나 보다.


  이번에는 남편이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직원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대목이다. 한 번도 못 본 그 여자 남편 회사 직원들의 이름과 직함까지 외울 지경에 이르자 지루하고 힘든 표정을 숨길 수 없었지만 아랑곳 않는 그녀의 지난달에 바꾼 새 차에 대한 품평과 공부 잘하는 딸 이야기까지 이어서 듣고 나서야 겨우 그녀의 자랑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행복해죽겠다는 표정과 뿌듯한 자부심으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녀의 자랑이 불편했고 소통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을 봐서 내 오후 일정에 대해 말하고 바빠서 이만 가야 한다고 하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조금만 더 놀다가.”하며 기어이 30분 더 붙잡아 앉혀 놓고 자신의 SNS계정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여행지 사진과 예쁜 옷과 가방, 파티, 비싼 음식들로 잘 편집된 사진들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고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행복해 보였고 우아했다.

  “내가 SNS 들어가서 찬찬히 볼게.”하고 시계를 들여다보자 아직 한 시간쯤 더 자랑이 남아있는 표정의 그녀에게 기어이 오래전 지워버린 SNS 가입을 약속한 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한 때 친구들끼리 행복 경쟁을 하듯 SNS에 비싼 식당 음식 사진을 올리거나 여행 사진이나 자랑거리가 생기면 편집해 올렸던 적이 있었다. 서로 샘내듯 사진들을 올리고 품앗이로 얼른 답도 해주면서 SNS는 한동안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고 SNS 재미에 빠져들어 사진을 찍기 위한 이벤트를 찾기도 했다.

  먼 곳에 사는 어릴 적 친구가 SNS 사진을 보며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자주 못 만나는 친구의 생활도 마치 가까이 살며 지켜보는 듯 자세히 알 수도 있는 뜻밖의 즐거움도 더해졌다.

텃밭에서 딴 옥수수나 감자를 찍어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친구의 소박한 사진을 보며 웃기도 하고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가 올려주는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으로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해외여행 7박 8일을 매일 리포터가 된 듯 예쁜 의상과 색다른 이야기로 꾸며주기도 하고 멀리 해외에 사는 친구의 일상을 마치 옆집에 사는 듯 들여다볼 수도 있어 반갑고 좋았다. 또 고등학교 때 은사님의 SNS를 여러 연결고리로 찾게 되면서 동창들과 은사님과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던 SNS는 우리를 점점 묘한 경쟁과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게 했고 진솔한 모습보다 고단한 일상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잘 가지 않는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즐기기보다 사진 찍기가 중요해 식은 음식을 먹었다거나, 명품 가방을 주인공으로 사진 찍기 위해 무리해서 구입했다는 얘기, 비싼 골프장에 자주 가는 것처럼 여러 벌의 옷을 가져가서 갈아입었다는 얘기, 영국 차를 마시러 가서 비싼 차와 달콤한 간식들을 주문 후 사진만 찍고 살찔까 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는 얘기, 십만 원이 넘는 호텔 빙수나 케이크를 오직 사진 찍기 위해 사 먹었다는 이야기들이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닐 정도로 SNS에는 자랑과 질투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자랑이 피로해졌다. 내 자랑도 피곤하고 남의 자랑도 식상했다.

 한 친구가 오랫동안 연락도 않고 지내던 중학교 때 친구가 SNS에다 ‘자랑되게 하네. 행복하냐?’하고 글을 달아서 공유하는 다른 이들에게 부끄러워 그 친구를 차단해 버렸다는 말을 듣고

‘왜 그랬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알아낸 소식은 그 친구가 이혼 후 고단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SNS에 무엇을 올리기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문득 ‘삶에 지치고 고단한 사람에게는 정제되고 미화된 자랑으로 남들은 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나만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하는 이 나이쯤 되면 알 수 있는 상식조차 서로 자랑질 하느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내 것이 아닌 행복으로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독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지만 이런 가식은 아니다 싶어서 SNS계정을 지웠다.

  SNS계정을 지우고 들여다보지 않으니 처음에는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고 ‘나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신경 써서 사진을 편집해 올리고 하트 개수에 매달리며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는 시간 낭비도 않게 되고 굳이 SNS를 하지 않아도 알 소식은 알게 되고 알고 싶지 않은 소식은 안 듣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SNS에서 한발 물러나보니 끊임없이 사진을 올리고 자랑하는 마음에 대해 ‘무엇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충만함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결핍을 숨기기 위한 포장이 필요했을까?’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문득 ‘이건 옳고 저건 틀리고 누가 정답을 매길 수 있을까?’하는 질문과 함께 SNS에 드러내는 겉치레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비난만 앞세우기에는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충족되지 않은 공허나 불안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은지, 내가 모르는 결핍이나 상처 같은 것이 있다면 이해하고 쓰다듬어 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SNS에 하트라도 하나 남겨주고 싶어서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내 SNS를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일 년에 한 번씩 자동으로 올려지는 ’ 생일 축하합니다.’만 찍혀 있었지만 수년간 열어보지 않은 그 빈 곳에도  친구들의 생일 축하 글들이 주욱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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