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준수의 도덕관의 변천사
0. 개요
나는 어릴 적 어른들에게 어떠한 도덕적 행위의 이유를 물으면 '원래 그래' 또는 '당연히'라고 대답하는 그 표현이 싫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만든 규칙과 상식도 아닌데 '어른은 모든지 알 것'이라는 어린이의 맹목적인 '왜-왜-왜' 꼬리물기에 대한 귀찮음의 표현이었겠다. 하지만 사회적인 의무나 금기에 대한 의구심과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몰상식하고, 반사회적이라는 듯한 어른들의 반응은, 당시 맹한 어린이였던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 내가 학생일 때의 교육 패러다임은 '개성'이었지만, 정작 남들 같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재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규교육과정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회의감을 지닌 말 잘 듣는 이단아가 되어보기도 하였다.(중2병~)
그러면 우린 질문해볼 수 있겠다. '왜 우리는 맹목적으로 원칙을 준수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암기위주의 교육을 하게 된 것일까'
이번 글에서 저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고,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려는 시도가 적은 지 알아보자.
우리의 사회는 왜 원칙을 중시하고, 평범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지리학적 특성과 계보학적 역사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이론적 문제점을 찾거나 의심이 든다면, 저의 미래를 위해 비판적으로 지적해 주시길 바랍니다.
1. 방법론-사회구조와 계보학
현대 사회학에서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각자의 기질과 사회적 영향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즉,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특성과 역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피에르 브루디외의 장 이론에 따르면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비슷한 경험과 교육으로 인한 일종의 지역적-계층적 특성을 재생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사회적 재생산의 구조를 파악하는 구조주의적 방법론이 이번 주제의 핵심으로 보이지만, 푸코 가 제시하였듯이, 사회적 개념과 구조는 자연적이고 영원불변한 이데아적인 존재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칙적이고, 지역적으로 다원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범시대적-지역적 일반론으로 통합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지역을 한반도로 한정하고, 역사적으로 원칙주의가 쉽게 받아들여진 지리학적 토대를 추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려 한다.
나는 이 방법론을 '계보학적 구조주의'라고 부른다.
2. 지리학적 토대
한반도는 예로부터 식량문제가 지역사회의 핵심중 하나였다. 합성비료의 발명이전에 어디가 안 그랬겠냐만은, 유달리 한반도 국가들은 식량확보에 진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고유 식문화의 특징 중,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집중할 것은 다양한 식재료와 더 다양한 요리법이다. 다른 지역이라면 먹지도 않을 미미한 독이 있는 야생 식물이나 버섯을 어린것만 먹거나, 말리고, 굽고, 데치고, 끓이고, 훈제하고, 삭히여 제독하거나, 한계까지 발효시켜 먹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식재료에 대한 다양성의 압박이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대로 내려온 전통과 절차를 무시하고 도전했던 이들은 한반도를 떠나 중국 유학에서 기회를 노리거나, 아무거나-아무렇게나 도전적으로 먹고 죽거나 크게 아팠을 것이며, 남은 구성원들은 더욱 절차와 금기를 중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다양한 제독방법과 발효음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많은 도전들이 시도되었다는 방증이며, 금기에 대한 공포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식재료 확장의 압박을 받는 동시에, 나는 도전하고 싶지 않다는 사회적 경험의 퇴적으로 인하여 보수적이고 기존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회적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사회적 의무와(모두 하기 싫지만, 누군가는 모두를 위해 시도해야 한다) 강력한 계급사회가(아무도 기존질서에 도전하지 않음)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다.
정리하면,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법은 한반도가 원리원칙을 중시하게 된 지역적 특성의 압력을 방증한다.
이러한 풍토는 이유를 묻지 않고 맹목적으로 원칙과 법률을 준수하는 기반이 되었다.
3. 원칙주의적 보수성의 계보
위의 이론은 우리 사회의 경향성을 잠정적으로 설명할 뿐, 식재료의 선택지가 풍부해진 현대사회의 원칙주의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의무를 중시하는 강력한 계급사회'에서 현대사회까지의 역사를 열거해야 전체적인 변형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길게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분량상 가볍게 흐름만 보겠다.
우선 한반도민(?)의 역사적 계보를 논한다면, 원삼국시대의 승자이자, 한반도 사람들을 최초로 하나의 체제 안에 통합한 통일신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하는 매우 폐쇄적인 신분구조를 지닌 국가였다. 위계질서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지닌 지역이어서 인지, 다른 지역이었으면 빠르게 붕괴할 만한 골품제라는 매우 폐쇄적인 계급구조가 약 300년(삼국통일 기원후 642년-신라 멸망 기원후 936년) 동안 이어졌다.
이러한 골품제는 후백제, 후고구려 등의 반란으로 신라멸망 후 사라졌지만 고려가 기존 신라귀족과 호족을 수용하면서,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폐쇄적이고 강력한 신분체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풍토가 얼마나 고질적으로 자리 잡았는지, 무신정변과 몽골침입 등 기존체계가 붕괴될 정도의 굵직한 사건들 이후에도 세력만 바뀌었을 뿐 고려의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폐쇄적인 사회를 고쳐보겠다고 나선 '정도전과 친구들'이 만든 조선조차, 불교가 유교로, 기존 귀족들이 유학자로, 원나라가 명나라로 변경되었을 뿐이고, 계급적 위계는 표면상으로만 사라젔을 뿐, 위계는 유교적 도덕과 규율이 되어 사회구성원들의 내면에 더욱 깊게 심어졌다.
이렇게 깊게 뿌리내린 계급질서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빠르게 붕괴되어 간다. 신라와 고려의 귀족체계는 신분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조선의 양반들은 경직되고 진리화된 원리와 규율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신분을 정당화하였기에, 역사적으로 사용했던 선조와 관료들의 도망전술은 의무를 기반으로 편성된 유교족 이상론적 질서에 큰 상처를 주었다.
굳건했건 신분사회의 균열은 그 오랜 응력을 과시하듯 강력한 파동을 발하며 큰 단절을 만들어 냈고, 마치 지진파처럼 조선 전국의 기존 사회시스템과 토대를 연쇄적으로 붕괴시켰다. 여기에 소빙하기의 대혼돈까지 겹치며, 통일신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강력하고 견고하면 신분체계는 이제 신분체계를 정당화하던 유교적 원칙만 허울처럼 남았다. 즉 기존 질서를 지탱한 마지막 기둥은 유교적 도덕주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도 일단은 굴러가는 사회시스템을 방치한 보수적인 지도층과, 유교적 도덕주의에 맹목적으로 묶여 지도층을 전복시키지 못한 사회 구성원들은, 조선의 사회시스템을 복구하지도, 재건축하지 못하였다.
그 대가는 기존질서를 벗어던지고 근대국가로 우화한 유럽과 일본의 침공으로 치루어졌다.
이제 배경은 식민지시대로 이동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국가가 된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제국을 밀어내고, 식민지 대한제국을 손에 넣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외부적 근대화는 임진왜란 이후의 거친 사회 붕괴와 단절을 일절 무시한 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기존질서가 무너진 체 농경중심의 유교적 원칙만 버려진 철근처럼 덩그러니 남은 땅 위에, 일제는 새로운 건물을 위해 무심히 잔해들을 정리하여, 그 위에 자본주의라는 콘크리크를 부어버렸다.마치 석굴암처럼
기존 질서와 절묘하게 결합된 근대적 자본주의는 이제 한반도민의 새로운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빠르고 경제적으로 견고하고 비현실적으로 매끄러운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매끄러운 것은 표면뿐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을 친족으로 여기던 유교적 인식과 적자생존 시장경쟁체계가 결합되고, 사회질서는 조선 말의 유교적 원칙주의 도덕관과 근대적 법률이 뒤엉킨 덩어리로 세워젔으며, 자본을 숭상하지만 자본을 중시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민주주의지만 국가지도자에게 왕의 책임을 요구하는, 매우 이질적인 유교적 세계관과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마구 뒤섞여 명확히 분리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매끈한 사회적 토대가 형성되었다.
이 철근 콘크리크는 군사정권의 국가주도 경제성장과 성급한 민주화, 보수적인 교육계의 방치하에 여러 세대동안 재생산되어 단단하게 굳었으며, imf이후 유교적 사회관을 거부하고 도덕적 규율과 법률만을 더욱 중시하는 일명 '원칙주의 사고관'이 확산되었다.
이 긴 내용을 정리하면, '도전을 기피하는 사회적 토대->폐쇄적인 계급사회->계급의 도덕화->도덕의 법률화->법률과 도덕의 혼합->도덕적 세계관 붕괴' 정도로 요약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지닌 사회적 구조의 계보학적 흐름이다.
4. 한국적 원칙주의의 사회적 기능
위의 새로운 토대를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한강의 기적 등을 이루어낸 원천 또한 그로테스크하고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진 한국적 원칙주의 덕분이었다. '한국적 원칙주의'란 표현은 사회적 원칙 법률, 절차를 개인의 현실과 판단보다 우선시하고, 원칙준수를 도덕성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집단적 사고관을 지칭한다.
유교적 도덕 원칙주의가 서로 이질적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중간자로서 매개결합되며, 법률준수=도덕적인 인간=인성평가 라는 3단 구조가 형성되었다. 보편적으로 법률을 존중하고, 사회적으로 두려워하는 사회구조가 느슨하게 형성되었으며, 본래 식량문제로 인해 공동체의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던 지역적 토대로 인해 '안전하고 보수적이고 성실한, 신뢰할 수 있는 거래처' 이미지가 구축되었다.
즉, 원칙준수가 사회적 도덕이 된 동시에, 기술적 보수성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였기에, 원칙주의는 고도성장기의 경제적 기둥으로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긍정적 경험으로 인해,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구성원들이 공통의 원칙을 준수할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를 지닌,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은 사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5. 한국적 원칙주의의 사회적 한계
원칙준수가 곧 인격평가의 기준이 되는 도덕체계는 개발도상국 시절 고도성장의 기둥이 되었지만, 유교적 집단주의적 신뢰가 깨진 imf이후의 저성장 시대에는 부적용만 작용하는 듯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도덕과 법률이 뒤엉켜 있다는 사실이다.
법률이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도덕적 판단을 타당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즉, 처벌을 정당화하는 도구지요. 이 법률이 도덕과 엉켜있다는 의미는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 비교적 개인적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근대 유럽국가들은 자신들의 법률을 신성화하여 처벌과 제도를 정당화하였으며,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전체주의와 국가주의를 교육하였다. 현재 한국적 원칙주의는 상호신뢰를 잃은 채, 맹목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강력한 한 개인의 법 해석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의 악몽을 연상하게 한다. 심지어 우리 사회는 유교적 도덕주의가 법과 결합하였기에, 68운동을 위시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운동에 회의적이라는 면이 우리를 근대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전체주의의 위협뿐만 아니라, AI시대의 주요 사업이 될 공학과 인문학,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맹목적인 원칙주의의 보편 도덕화를 막아야 할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급격한 기술과 사회의 변화 뒤에는 예술과 인문학의 발전이 따른다. 이는 르네상스의 주역인 이탈리아 인문학,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의 대중문화 형성, 제정 붕괴 이후의 러시아 문학 등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과학과 사회는 기존 질서를 초월함으로써 발전하는데, 이 초월을 이룬 사람들의 지위과시와 계층적 구분짓기를 위한 경제적인 소비, 사회적으로 뒤쳐진 이들의 세상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공포의 공감을 기반으로한 인문학 작품들의 소비로, ai시대의 개막 직후 거대한 인문-예술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대로는 조선말 처럼, 또 다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너무 늦어, 혁신적인 신기술과 인문-예술 시장이 발전하지 않은 문화적 종속국이 될 수도 있다.
인문-예술 시장의 가치를 체감하고 싶다면, 연예계 소속사의 경제적 규모를 보면 된다.
6. 결론
우리가 절차와 원칙을 반발 없이 받아들인 지리적 토대는 식재료 확장의 압력과 공포 때문이었으며, 역사적으로 강력한 계급체계를 지니었다가 조선 때 유교를 통해 계급이 도덕화 되었고, 입진왜란 이후 도덕사회가 붕괴하며 일제에 의해 몰이해한 근대화를 겪은 결과가 유교적 도덕과 법률이 뒤섞인 원칙주의이다.
이러한 원칙주의는 상호신뢰를 형성하여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를 지탱하기도 하였으나, imf이후부터 신뢰가 아닌 상호강제의 형태로 변질되었으며, 이는 표면적으로 현실적인 손익보다 평등이나 공평, 정의 등을 외치는, 하지만 딱히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기묘한 사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제 맹목적인 준수가 아니라, 사회적 금기에 대하여 '왜'를 물으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야 한다. 한때 우리가 의존하였던 원칙주의는 이제 선진국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며, 식량확보가 최우선이던 지리학적 풍토도, 유교적 세계관도 해체되었다면, 남은 원칙주의도 해체하여 새로운 실천적 도덕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상대방에게 원칙과 도덕의 맹목적인 준수를 강요하며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움직이며 현재 우리가 맞이한 현실에 맞는 법률과 원칙으로 개편하고, 매 순간 시민들은 자신이 따르는 도덕과 신념과 철학이 올바른지 스스로 의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말의 곤욕을 또다시 치르게 될 것이다.
-많이 부족한 저의 첫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