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당신 대신 책임 지지 못한다.
0. 개요
최근, 자신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같아요'라고 라고 답하는 이유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가며 무언가를 확언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발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성 때문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나도 자주 사용하는 말투라 괜히 혼난 느낌이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책임회피와 맹목적인 원리 원칙의 준수와 상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멋대로 행동하면 내 책임이지만, 원칙을 따라 움직이면, 이는 원칙이 책임저야 한다. 즉, 나의 잘못은 내가 아닌 원칙의 책임이 된다.
원칙과 타인의 명령에 따랐다고 실행자에게 책임이 없는가? 그렇다면 원칙이 잘못되었을 때 발생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지는가?
우린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과연 원칙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대신 책임질 수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 역사적 배경-조선의 사회 붕괴와 미숙한 근대화
지난 글에서 한국적 원칙주의의 계보를 논하였다. 이 짧은 글의 분량상, 가볍게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한반도는 고대부터 강력한 계급사회를 임진외란까지 유지해 왔고, 특히 조선은 근대 서구의 규율사회의 '보이지 않는 지배', ' 내제화된 명령'을 떠오르게 하는 도덕과 규율의 시대였다.
허나 순조의 도망과 의병 처벌은 기존 책임과 역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유교적 위계질서를 붕괴시켰고, 정조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소빙하기의 기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근대화할 기회마저 앗아갔다.
남은 것은 허물만 남은 유교적 규율과 도덕주의였으며, 대부분의 구성원에게는 익숙해진 명령과 규율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은 것은 규율에 따르며 현실의 붕괴를 무시하고 버티는 자세였다.
문제는 고통을 처절히 버틴다고 현실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비정한 현실이었다. 소빙하기 이후 근대화된 유럽과 일본 즉, '열강'은 나약해진 이웃들을 하나하나 식민지로 복속시켜 갔으며, 당시의 조선의 왕인 고종은 무너진 사회를 재건할 힘도 지식도, 그를 따르는 유능하고 충직한 신하들도 없었다.
그렇게 조선의 패권을 두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긴 일본제국은 드디어 염원하던 대륙의 반도를 손에 넣었다.
다만, 식민지 조선은 일본 본토와 너무 다른 사회적 구조를 지니었기에, '일본화'를 목표로 한 급작스러운 근대화는 한반도민에게 강렬한 내면의 상처를 남겼다.
농민은 암울한 미래를 한 번에 떨쳐내려는 도박가로, 기생은 음악과 영화를 창조하는 대중예술가로, 유학자는 젠체하는 불평가로, 천대받던 상인은 사회 주류층으로, 사농공상은 단숨에 자본주의의 이식으로 뒤집어졌다.
일제의 지배와 갑작스러운 사회적 변화는 마지막 남은 유교적 원칙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성역화로 이어졌고, 일제의 항복으로 인해 수립된 현대의 대한민국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도덕의 법률화다.
이제는 사라진 친족상도례와 가부장제, 간통제 등 유교적 도덕주의의 흔적이 법률화된 사례들은 법률형성 초기까지 유교적 사회관이 사화에 남아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일제시절을 고난과 역경의 시기로 기억하고, 이미 이겨낸 시련으로 여기지만, 이제 강점기의 진정한 상처는 사회와 사회구조에 대한 구성원의 불신과 불신이 커질수록 꺼내드는 한방주의와 원칙주의일 것이다.
2. 법률화된 도덕, 도덕화된 명령
이제 시선을 미래로 옮겨보자.
역자적 배경을 지녔다는 것 만으로는 기이하게 대중화된 책임회피 방식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답은 이승만 정권부터 군부정권 사이의 혼돈에 있다.
대한제국을 잇는-민주주의-자본주의-공화국 이기에 '대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초기에는 고구려-고려-조선-대한제국과의 계보적 연관성도 북한에 비해 떨어지고, 딱히 자본과 산업기반기반도 없고, 민주 인권의식도 없고, 6.25 전쟁초기에는 대통령이 외국으로 도망치고, 제주 3.4 사건,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 등, 가장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친숙한 초대 대통령부터 딱히 민주적이고 공화주의적이지 않은 미국의 위성국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면내각을 끌어내린 반민주주의의 대명사인 군부정권은, 대한민국의 지위를 미국이 위성국에서 무시하지는 못하는 소국 정도로 키워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크게 성장하였으나, 이 성장의 주역 중 하나는 슬프게도 군부의 도덕화된 명령이었다.
즉, 이미 건국 초기에 법률화된 도덕과 초대 대통령의 무리수들로 인해 신성함이 약해진 법률을 활용하여, 군부정권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명령을 규율화고, 유교적 사고방식 위에 결합하여 사회적 명령에 대한 순종을 도덕화하였다.
누군가 이건 잘못되었다 라고 외쳐도, 주위 모든 이들이 '굼주리던 시절로의 이행'을 원치 않았기에, 군부는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
이후 5.18 등의 사건들로 군부정권은 몰락하였지만, 도덕화된 규율화된 명령의 순종은 명령의 주체가 없어진 후에도 맹목적으로 이어져 왔다.
3. 명령주체의 실종-민주화
민주화에 성공하였지만, 이미 군부가 재계와 결합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화 세력은 제계인사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은 국가 내부의 혁명의 열기를 식히고, 노동자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처우개선도 하고, 북한 등 국가적 분열을 악용할 국가들에게 건제함을 보이기 위해 88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운명의 여신은 한국의 편이 아니었다.
문민정권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내적으로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가 발생하였고, 외적으로는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 일본의 버블경제 쇠락, 등이 발생하였다. 안 그래도 행정적으로 부족한 첫 민주화 정권인데, 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에 투자할 가장 큰 이유가 없어지며, 걸프전 등으로 자금이 부족해지자 투자금을 빼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IMF경제위기가 왔다.
부족한 문민정권, 국제적 분위기의 변화, IMF 경제위기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가 왔고, 구성원들은 많은 실망을 했으며, 누군가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점차 책임회피가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몰락한 한국의 절대다수들은 그저 조상들이 그러하였듯, 도덕적 원칙주의만을 신봉할 뿐이었다.
4. 우리는 무엇에 복종하는가-책임과 권위의 위탁
'시키는 대로 하면 점점 나아지던 과거'에 대한 선망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 믿는다. 노스탤지어의 말뜻처럼,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미화와 향수병은, 돌아갈 수 없기에 생기는 것이다.
누구도 명령하지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데 왜, 그리고 무엇에 순종하고 매달리려 하는가?
그렇기에 자유와 책임에 질린 이들은 선택할 수 없던 과거의 잔재에 매달리려 한다. 규율화된 명령의 잔재인 규율에, 믿을 수 없는 자기 판단력 대신 원칙에 의존하며, 책임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스스로 사슬을 몸에 두른다.
마치 자기가 문제를 일으키면, 사슬을 보이며 '내가 아니라 사슬로 명령한 사람이 조종한 것이에요', '난 묶여있어서 아무런 선택의 자유도 책임도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자니 겁이 나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부탁하자니 못 믿겠고, 방치하기에는 고통스럽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어른 대신 비인격적인 원칙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의존하고 책임전가하는 원칙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사회지도층? 원칙의 설계자? 아닐 것이다. 바로 본인과 사회전체가 책임져야 한다.
누구도 가시적으로 명령하지 않았기에 그 선택은 본인의 것이며, 포기함 책임은 고스란히 선택자가 속한 사회에 공공의 책임이 된다. 즉, 미혼모가 애아빠가 없다고 자기 부모에게 애를 맞기는 셈이다.
책임이 버겁다고 해서 선택을 포기하고, 책임을 부정한다면, 그 사회는 모두가 쓰레기로 가득한, 아무도 자기 탓이 아니라며 방치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잊지 말자. 당신의 선택의 결과는 당신의 책임이며, 당신이 포기한 선택의 결과도 당신이 책임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