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지 않는 사회

야망 없는 사회에 남는 것은 미숙함 뿐이다.

by 프로아마추어

1. 개요


나는 스포츠나 예술 등을 주재로 하는 만화나 영화에서,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구도를 좋아한다.


자존심 또는 일종의 인정욕구를 위해 서로의 실력을 초월하려 노력하면서, 한 쌍의 초신성처럼 이중나선의 궤도를 그리며 서로를 더 높은 경지에 밀어 넣는다.


이것이 경쟁과 야망의 선기능이다. 야망은 도전을, 도전은 경쟁을, 경쟁은 적자생존을, 적자생존은 분야의 성장을 낳는다.


즉, 야망은 생존본능을 자극하여 성장을 유도한다.


2. 젊은 보수의 사회적 분석


나는 요즘 '젊은'보수라는 사회현상에 만은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름부터가 자극적이다. '젊은 보수', 가장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야망을 불태우며 공격적으로 도전할 것 같은 '젊은'이들이 '보수'화 되었다니, 사회적 토픽감이긴 하다.


이들을 그저 포퓰리즘을 반대하는 실력주의자들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노력(?)'과 '헌신(병역의 의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반진보주의'에 가까운 집단으로서, 변형된 사회적 통념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민주화 이후의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끼는 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의 보수화는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 20대-30대가 받은 근대적인 규율과 복종 중심의 교육과, 군부정권의 몰락 이후의 한국사회 사이에는 너무도 많은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대 초반에 군부가 무너졌지만, 군부가 만든 교육체계는 20년대 초반에서야 내부적으로 혁신되기 시작하였기에, 그 사이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즉, 이들은 부모의 교육적 부재와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공교육, 사회적 공간의 말소로 인한 지역사회망 부재 등으로 , 사회에서 살아갈 아무런 지식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교육적 프롤레리타리아'이다.


이들에게 변화한 사회는 상경한 그로테스크였고, 이들이 외칠 수 있는 것은 자격증과 학벌을 위시한 '실력주의'와 '올바른' 사회로의 회기뿐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조급해지는 상황에 군대라는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공간에서 1년 반을 시간낭비 해야 한다니!'라는 공포가 군가산점 폐지와 여성할당제, 전국적인 채무 탕감, 레디컬 페미니스트 지지 등에 대한 반감이 반진보주의로 이어지며 보수화를 가속화한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사회를 판단할 기준도,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이루고픈 욕망과 야망을 표출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국사회는 성장과 혁신의 동력인 젊은 혈기야먕에 의한 도전을 잃었다.


3. 도전 꺼리는 사회적 원인들


저번 두 개의 글에서 서술하였듯, 한반도는 도전을 꺼려하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중시하는 사회적 토대와, 민주화 이후의 급변한 사회에서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기 어려워, '올바른' 규율에 의존하려는 사회적 풍토 형성되어 있다.


'한국적 원칙주의의 계보'에서 거시적으로 한반도의 리적-역사적 토대를 알아보았고, '명령 없는 복종사회'에서 미시적으로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과 부정권의 몰락 이후의 사회를 논하였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식량 확장의 압박에 의해 도전을 꺼려하고 위계와 원칙을 중시하는 지리적-역사적 토대를 지녔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사회적 제도가 급조되었다 무너지는 일이 반복된 근현대사를 겪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전하지 않으려는 문화적 환경에, 위계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 금기된 오랜 역사, 도전의 실패가 가족에게 민폐가 되는 현 상황까지, 지속적으로 도전을 막는 요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가장 도전적인 집단들까지 도전을 꺼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며, 소빙하기 이후의 침울한 역사를 또다시 겪게 될 것이다.

4. 사회적 제도의 역할과 사회참여의 대가


푸코는 자신의 여러 저서에서 사회적 구조의 시대적 변화를 계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구조의 인위성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제도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정확히는 '인위적인 세상'이 제도인 셈이다.


한반도의 원칙주의적인 토대를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이를 점진적으로 바꾸는 제도를 시도해 볼 만하다.


그렇기에 우린 '세상이 원래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사회에 영향을 끼칠 권리와 책임이 있다. 모두가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만든 제도들의 결과가 우리의 책임하에 있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정치관료를 뽑고, 이들의 실패를 욕할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과 사회를 책임지는 대가로 얻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다.


다가오는 AI시대에, 도전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목을 압박한다면, 도전을 장려하는 제도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한국 사회가 지닌 도전에 대한 '성공하면 너의 이득, 실패하면 우리의 피해'라는 인식을 바꾸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할까?


다행히도 우리 주변에 문화적으로 비슷하고, 근현대의 경험이 엇비슷한 중국이 보수적이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야망과 도전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중국의 제도가 사회주의적인 기반에 의한 것이라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당이,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배움을 얻은 인재들 덕에 가능하다면 유학파가 많은 보수당이 혁신을 일으키면 된다.


만약 우리가 문화적으로 비슷한 중국의 제도 변화를 재현할 수만 있다면, 근대 국가로의 변신에 실패한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한 열강들에게 당한 수모를 또다시 겪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사회가 끌어안으며, 도전의 결과를 데이터화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여, 다음의 도전의 밑거름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작가의 이전글명령 없는 복종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