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승계에 실패한 사람들
1. 개요
최근 계층의 '사다리'라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청년의 계층 사다리를 치워버려서' 등의 용법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문제는 이 계층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누군가 떨어져야 올라갈 수 있고, 모두가 올라가면 그 가치는 희미해진다.
즉, 이 계층의 사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몰락하는 사회라는 의미이며, 이 사다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화되어 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이 '계층의 사다리'가 세대갈등의 용어로 사용되고, 중산층 가정의 청년들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계층'이라면 어느 정도 세습을 전제로 사용되는 용어일 텐데 말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현대가 기술 중심사회인 동시에, 근대가 탈계승 사회임에 주목하였다. 즉, 현재의 청년들은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그 어떤 기술도 부모로부터 승계받지 못한 무산자, '기술적 프롤레리타리아'이다.
2. 전근대적 노동환경
먼저, 우리가 흔히 '전통적'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은 대개 자본주의의 이식 이전의 사회적인 풍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 글의 초반에서 우리는 이 전통적인 사회 풍경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전근대는 근대적 국가의 등장 이전, 근대적인 사회분화와 개인화 이전의 시대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공간은 공유개념이고, 시간은 계절에 따라 회기하고, 정치는 종교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개인은 가문과 신분에 종속된, 대략 계급사회와 봉건제적인 풍경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전근대를 일원적인 '스펙터클 사회'로, 근대를 다원적인 '규율사회'로 규정한다. 이 말은 전근대에는 위정자의 포스와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사회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근대는 부권과 가부장제에서 확장된 왕권과 봉건제의 시대이며, 신분과 가문, 역할에 귀속되어 그 지위와 책임을 세속 하는 사회였는 사실이 유추 가능하다. 지금은 덜하지만, 일본의 가업계승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시대의 노동환경은 위의 두 시대의 비교로 유추할 수 있다. 지역 또는 가족(어차피 지역 외의 이동이 적으니 이웃들은 대부분 먼 친척이다.)과 공유하는 농지 등의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노동하고, 노동과 생활이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능력이 아닌 역할에 맞는 노동을 하고, 출신 신분에 종속된 역할을 계승하며, 역할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비분화의 시대였다. 대략 전통적인 농촌마을을 떠올리면 된다.
공동체의 의존도가 높고, 모든 개인은 신분과 역할과 동일시되었으며, 시간은 순환하고, 계승과 전통이 사회유지의 핵심이었다.
3.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
이러한 '역할은 영원하고, 사람만 바뀌는 사회'는 근대적 국가와 시장경제의 등장으로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정확히는 소빙하기를 전후하여 이 역할과 책임으로 정당화되던 사회체계가 붕괴하며,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새로롭게 등장한 근대국가는 정보와 체계적 범주화로 무장한 체 소빙하기의 혼란을 정리하지 못한 국가들을 식민화하였고, 그중 근대국가 일본제국과 식민지 대한제국이 있었다. 일제은 약해진 청나라와 불리한 한경의 러시아제국을 꺾고, 미국과 합의하여 첫 대륙 식민지 조선을 손에 넣었다.
문제는 조선의 첫 식민지가 조선이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유달리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안정했고, 이는 조선에서 충분히 노하우를 얻은 후 지배한 대만은 한반도에 비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적은 사실이 반증한다.
이제 근대화된 한반도에서는 공동의 공간에서의 공동작업대신 근대적 회사와 공장이 들어섰고, 전통적인 유교적 사농공상의 위계는 뒤집어졌다. 약 천년 간 이어져온 역할중심의 사회가 하루아침에 시장중심사회로 변했다면, 심지어 외국인 관료들에 의해 일방통보 되었다면 이 새로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로 적응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새로운 체계가 자리 잡기도 전에 일본은 10년마다 총 2번 통치 방법을 바꾸었고, 광복 이후 이승만정권이, 장면 내각이, 박정희 정권이 기존의 체계를 뒤엎으며 사회적 혼돈이 지속되었고, 군사정권의 중앙집권적 국가주도 경제성장에 성공하며, 임진왜란부터의 사회적 혼돈이 정리가 되었다.
이러한 연속적인 혼돈에서 역할 사회는 도덕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군사정권 이후 전문적인 직업적 분화 즉, 근대적 사회관이 형성되었다. 유럽국가가 근대성에 회의감을 느끼고, 68 운동 등을 일으키며, 대대적인 탈근대화 또는 전근대화의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대한민국은 이제야 진정한 근대화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안정화되던 사회는 유럽에서 탈근대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유학생들의 민주화로 인해 짧은 전성기를 마무리한다. 즉 또 한 번 준비되지 않은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여성의 사회진출, 저출산, IMF외환경계위기였다.
4. 노동환경의 변화
이제야 이 글의 본 주제인 기술의 승계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노동의 시공간적 변화'와 '혈족 중심 사회의 붕괴'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근대는 구분과 범주화, 측정, 감시의 시대였다. 근대의 노동환경은 말 그대로 달걀 생산 시스템과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 사람들이 수행하는 말 그대로 '정해진' 구조주의의 시대였다. 지금의 생산 공장과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사무실을 생각하면 된다.
하늘이 정한 신분과 역할은 국가와 사회가 부여한 적성과 직업으로 대체되었고, 종교는 과학과 사회학으로 대체되었다. 농노는 노동자로 변신하였고, 전근대의 성직자는 학자로 변신하였다. 명령과 종교적 해석대신, 규율과 학문적 해석으로 사회가 유지되었다. 한마디로, 타인과 사회가 기존에 '하늘'이 행하던 정체성의 부여를 대신하게 되었다.
개인을 발견한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체된 것은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와 책임뿐이었다. 개인은 혈족 사회에서 벗어나는 대신 국가에 귀속되었으며, 농노는 신분의 귀속에서 벗어나는 대신 노동력과 시간을 매매하여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프롤레리타리아가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인 노동환경은,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정권의 국가주도성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에 뿌리내렸고, 아직도 '노동'이라고 하면 출근과 월급을 생각하게 되었다.
직업적 기술의 승계는 자식이 아닌 후배노동자에게로 이어졌고, 아이들은 직업을 얻기 위해 전문교육소(길드나 학교)에서 교육받기 시작하였다. 탈신분제의 대가는 혈연적 기술 승계의 어려움이었다. 여기에 더해, 자본과 계층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이 차이 났기에, 사실상 계층은 재생산되었다.(브루디외)
세계 1차 대전 이후, 인간 이성과 구조주의의 한계와 시장경제와 규율사회의의 폭력성을 지적한 의견들이 늘어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페미니즘, 아나키즘 등의 반근대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68 운동 이후 탈근대사상들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과정을 제처 두고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진출, 노동자의 수 증가, 노동의 가치 저하, 인건비 저하, 맞벌이와 노동경쟁 증가, 가정교육의 말소, IMF이후의 성장둔화와 대학진학률 증가, 근대적인 지식과 경쟁위주의 입시를 위한 교육과 상반되는 실용적 기술과 협력중심의 사회, 그로 인한 불필요한 전문지식 인텔리의 과다 양성과 필요한 기술 인텔리의 유출 정도로 흐름을 정리할 수 있다.
90년대에 취업한 현 5060세대의 자식세대인 2030 세대는 부모의 맞벌이로 가정교육도,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적인 기술도,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기에 사회능력과 개성적인 기능도, 그 무엇도 배운 것이나 가진 것이 없다. 심지어 부모가 가진 기술은 그 직장의 그 직급에서만 사용가능하다.
그렇다면, 지식 암기와 속도중심의 문제풀이 능력을 주로 훈련한 이들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냔 말이다. AI는커녕 메모지와 계산기, 녹음기, 인터넷, 스마트폰으로도 대체가능한 자칭 고급 인력들을 말이다.
5. 결론
컴퓨터가 상용되었을 때, 인터넷이 상용되었을 때, 전자사전이 상용되었을 때, 스마트폰이 상용되었을 때, 최소 AI를 세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우리 사회는 기술적 프롤레리타리아의 양산을 막을 기회들이 충분히 있었다. 최소한 지식 암기가 아니라, 중세유럽의 페키아 시스템-강의-토론의 교육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최소한 대학과 학문, 예술은 소수의 천재를 위한 것이므로, 차라리 중학교나 고등학교까지만 교육받고 부모의 일터에서 교육생으로서, 부모에게 그 직무를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사회제도와 시스템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저 안일했고, 무관심했다. 부모는 일하느냐 자식세대를 관찰하지 않았고, 자식세대는 장밋빛 미래만을 생각하며 입시공부만 했다. 학교와 대학에서는 기업의 사정에, 기업에서는 신입의 교육적 환경에 관심이 없었고, 정부는 외교와 국방, 경제위기를 신경 쓰느냐 기업과 사회의 요구와 교육기관의 교육방침이 왜곡됨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또한 근대적인 전문적 분화의 리스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가 아닌 탈근대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사회구조는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자기 참조적이라는 것도 안다. 즉,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며, 그렇기에 그 결과도 우리의 책임이다.
기술적 프롤레리타리아의 미래가 일본의 빙하기 세대(잃어버린 세대)의 과거와 유사하다는 동영상을 보았다, 일본의 8050문제와 기업의 중간관리자의 부재로 생긴 문제를 인지하였다면, 그래서 일본정부가 늦었어도 이들의 취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았다면, 우리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
쉬었음 청년이 쉬었음 중년, 쉬었음 노년으로 이어지기 전에, 특히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바로 위에 안보를 위협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음을 인지한다면, 이 지식적 인텔리들을 기술적 인텔리로 변신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는 러시아 제국의 말로와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이들을 기술적 '프롤레리타리아'라고 명명한 이유는, '정신이 나약한' 재정적 프롤레리타리아가 일으킨 공산혁명들을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크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임을 강조하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