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VC)은 왜 특허 개수에 속지 않을까

투자 유치의 성패를 가르는 'IP 포트폴리오'의 진짜 의미

by 석종헌 변리사

"변리사님, 저희 이번 시리즈 A 투자 IR(기업설명회)에서 특허가 10개나 있다고 자랑했는데, 심사역들 반응이 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요?"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하소연입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출원한 특허증이 10장이나 쌓여있는데, 왜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벤처캐피탈(VC)과 엔젤투자자들이 기술 실사(Due Diligence)에서 확인하는 것은 종이로 된 '특허증의 개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경쟁사가 우리 시장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겹겹이 쳐놓은 '치밀한 방어선(IP 포트폴리오)'입니다.


"투자자는 특허의 개수를 세지 않습니다. 특허가 지켜낼 시장의 크기와 독점력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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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착각: "특허가 많으면 기술력이 입증된 것이다?"


가장 흔한 착각은 '특허의 수 = 기술력의 척도'라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권리범위가 좁은 특허 10개보다, 회피 설계가 불가능한 강력한 핵심 특허 1개가 기업 가치를 훨씬 높게 견인합니다.


투자 심사역들은 기술가치평가 전문가들을 대동하여 특허의 청구항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만약 10개의 특허가 모두 특정 실시예나 좁은 성분 비율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경쟁사가 성분 하나만 살짝 바꿔도 쉽게 침해를 피해 갈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곧 실질적인 독점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특허는 투자 가치 평가에서 철저히 배제됩니다.


두 번째 진실: 점(Point)이 아닌 선(Line)과 면(Area)으로 방어하라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IP 포트폴리오'란 대체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의 기술을 입체적으로 보호하는 다층적 방어망을 뜻합니다.


단일 특허 하나를 출원하는 것은 시장에 그저 작은 '점'을 하나 찍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포트폴리오는 핵심 특허(물질)를 중심으로, 이를 개선한 개량 특허, 새로운 용도를 덧붙인 용도 특허, 그리고 더 나은 제조방법을 보호하는 제법 특허까지 거미줄처럼 엮어내는 것입니다.


"점 하나는 피해 가기 쉽지만, 선과 면으로 구축된 지뢰밭은 경쟁사가 결코 함부로 밟을 수 없습니다."


시드(Seed) 단계에서는 핵심 기술 하나를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면, 시리즈 A 투자를 앞둔 단계에서는 이처럼 주변 기술과 변형 가능성까지 모두 포괄하는 포트폴리오 확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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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전략: 경쟁사의 목줄을 쥐는 '길목 특허'


한 걸음 더 나아간 훌륭한 IP 전략은 방어를 넘어 '공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술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철저한 선행기술 분석을 통해 경쟁사가 앞으로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기술적 '길목'을 예측하고 그곳에 미리 특허를 선점하는 전략입니다.


경쟁사의 포트폴리오를 맵핑(Mapping)하고 빈틈을 찾아내 특허 풀(Patent Pool)을 구축하면, 향후 크로스 라이센싱 협상이나 특허 분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의 미래를 읽고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특허 전략을 보여줄 때, 비로소 투자자들은 당신의 기업에 기꺼이 수십억 원의 자금을 베팅합니다.


에필로그: 특허는 기업의 미래를 증명하는 보증수표다


결국 IP 전략이란, 한정된 자원을 가진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청사진입니다.


15년 차 변리사이자 기술거래사로서 투자 유치 현장을 지켜보며 얻은 결론은 명확합니다. 특허는 단순한 기술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는 이만큼의 시장을 안전하게 독점할 수 있습니다"라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보증수표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책상 서랍에 있는 특허증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단순한 종잇조각인가요, 아니면 시장을 철통같이 방어하는 든든한 방패인가요?



석종헌 변리사
15년 차 바이오·의약·화학 전문 변리사이자 기술거래사 및 지식재산가치평가 전문가. 녹십자, 서울대학교병원 등 주요 연구기관과 혁신 스타트업의 특허 전략을 전담해 왔습니다. 단순한 권리 확보를 넘어, 기술이 기업의 가치가 되고 투자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관점의 IP 포트폴리오를 설계합니다. 실험실의 혁신이 자본 시장에서 온전히 빛날 수 있도록 돕는 통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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