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 있어도 괜찮아요

by 생크님

"저 여행 가기 싫어요" - A님을 만난 날


"코치님, 저 이상한가요? 보통 사람들은 여행 좋아하잖아요. 새로운 경험도 하고, 풍경도 보고, 쉬기도 하고... 1년 전부터 준비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여행이었는데, 그런데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이 10 중에 2밖에 안 돼요. 그냥... 동굴 속에 가만히 있고 싶어요. 멍 때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고 싶어요."


A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깊은 피로가 묻어났어요.

지난 1년간 A님에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고 했어요. 경제적 어려움, 복잡한 해결절차, 신뢰했던 사람과 불화,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생계는 계속 이어가야 했고, 주변에 말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억지로라도' 버텨야 했대요.


"30대 중반인데 이루어놓은 게 하나도 없어요.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워요."

지금의 상황은 '실패'처럼 느껴졌다고 하셨어요.


"그런 상태에서 여행은... 온전히 누릴 만한 여유가 없어요. 가족들이랑 있으면 위로가 될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여행을 가면 더 공허해져요. 그냥... 고요한 카페에서 차 마시거나, 혼자 천천히 걸을 때만 좀 괜찮아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을 때요."



자가 진단 - 동굴기 진입 신호 체크리스트


☑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내 삶의 키를 내가 쥐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제일 무서워요."

"1년 후, 3년 후 제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아요."


☑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요

"왜 나는 이렇게 됐지? 왜 그 사람을 믿었지? 계속 자책하게 돼요."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게 없어요. 나는 충분하지 않아요. 항상 뭔가 부족해요."


☑ 너무 오래 혼자 버텨왔어요

"억지로라도 살고 싶어서 버티고 있어요. "

"하루하루 견디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써요. 퇴근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힘들었어,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잘 버텼네, 라는 말 듣고 싶어요."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말이 너무 듣고 싶어요."



회복 신호 체크리스트


☑ 작은 호기심이 생겨요

"억지로라도 살고 싶어서... 카페도 가보고 산책도 해요. 자연스럽진 않지만요."


☑ 지금 여기가 조금은 견딜 만해요

"완전히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차 마시고 걷는 게 의미 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 안전한 곳에서 평안을 느껴요

"한적한 카페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괜찮아요. 거기 있으면 평온하고, 때로는 고요하게 안정돼요."




A님을 위한 맞춤 솔루션


① 혼자 버티는 걸 멈추기

A님께 말씀드렸어요. "충분히 혼자 버텼어요. 이제는 도움을 요청해도 돼요."


상담을 시작했어요 (이미 큰 용기였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선배 한 분께 "제가 지금 힘들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가장 가까운 언니 한 명에게만 상황을 조금 말했어요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긴 대화를 나눴어요


"코치님, 말하고 나니까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혼자 감당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분이 그냥 듣기만 해주시는데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②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인정하기

완벽주의자인 A님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약함'처럼 느껴졌던 거죠.

하지만 이건 당연한 거예요. 모든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해요.


스스로에게 해주기 시작한 말

"나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루어놓은 게 없는 게 아니야. 살아온 경험, 직업에서의 역량, 가족과의 관계... 이게 다 있잖아."



③ 완벽주의적 자기 비난 내려놓기

A님의 가장 큰 적은 '완벽주의'였어요.

"왜 나는 이렇게 됐죠?" "나는 충분하지 않아요."


함께 다시 본 A님

10년간 쉼 없이 일한 성실함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계를 유지하는 책임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력

가족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깊이


"이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가요, A님?"

"아니요... 있네요. 제가 못 봤던 거네요."



④ 동굴 안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허락하기

A님께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가족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세요. '나 지금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야. 여행보다는 조용히 쉬고 싶어. 나중에 내가 좀 나아지면 우리 다시 여행 가자.' 진짜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이해해줄 거예요."


동굴기에 할 수 있는 것

카페에서 차 마시며 멍 때리기

혼자 천천히 트레킹하기

최소한의 일상만 유지하기 (출근, 식사, 수면)

오래 본 선배나 친구와 대화하기


동굴기에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사람들 많은 곳 억지로 가기

즐거운 척하기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자책하기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조급해하기



⑤ 눈물 허락하기

"자꾸 눈물이 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A님의 눈물 속에는 이런 것들이 섞여 있었어요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함에 대한 공포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수치심

너무 오래 혼자 버텨온 피로

인정받고 싶은 간절한 갈망


"A님, 이 다섯 가지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니까 '이게 뭐지?' 하고 혼란스러운 거예요. 이유를 몰라도 괜찮아요. 그냥 울어도 돼요.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여전히 느끼고 있다는 증거예요."




A님에게 나타난 변화들


얼마가 지난 후, 저는 A님과 조용한 야외 카페에서 만났어요.


"코치님,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에요. 여전히 불확실하고, 여전히 힘들어요. 근데요..."


A님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어요.

"이제는 좀 알겠어요. 회복이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거. 좋았다 나빴다 하면서 평균치가 조금씩 올라가는 거더라고요."



작은 호기심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억지로라도"가 아니라, "저 길 걸어볼까?" "저 카페 가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 때가 생겼어


미래를 조금씩 상상할 수 있어요

"1년 후에는 이 문제가 해결되고, 3년 후에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그림이 조금씩 그려져요."


자기 비난이 부드러워졌어요

"이뤄놓은게 아무것도 없다"던 A님이 이제는 "그래, 힘들었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라고 말해요.


타인에 대한 방어가 줄었어요

"완전히 마음을 열진 않지만, '이 정도는 관계 맺어도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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