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요(1)
(40대 후반 남성. 1년 동안 대화내용 압축)
그
저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나와 연봉이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쯤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나름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40이 되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제 옆에 없어서 엉엉 울다 깨어났어요. 그 후로 생각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달려 온 지난날이 보이면서 점점 삶의 의욕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가족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원리 원칙에 충실한 돈 벌어오는 말 없는 고집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가족과 저 자신에 대해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습관적으로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레바퀴처럼 굴러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을 하며 지쳐가고 있는 한 마리 말 같은 저를 발견합니다. 삶이 허무하고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하니 우울해집니다.
질문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가 있지요. 그때가 삶의 전환점입니다. 자신으로 돌아올 절호의 기회입니다. 아프고 힘들 때도 기회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지내는지요?
그
그래서 저의 회사에서 제 위치가 높은 편이라 오랫동안 쓰지 않던 연차를 모아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에너지 충전도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볼 생각이었어요. 그때 지도를 보며 눈을 감고 찍힌 곳으로 가서 두 달 정도 쉬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곳이 인도였습니다. 갠지즈 강이 유명하다 하여 거기서 강둑에 앉아 화장터에 연기를 지켜보면서 죽음이 무엇이며 난 이 생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리시케쉬에 가서 처음으로 명상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명상이란 것을 하면서 제 안에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길 빌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또 묻다 새벽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시절 이후 울어 본 적이 없는 눈물이 너무 낯설었지만 여기에서는 체면을 차리고 싶지 않아 한참을 꺼이 꺼이 울었지요. 그리고 새벽까지 깊은 명상 속에서 고요와 평화로운 마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00아쉬람의 스승과 대화하면서 제 고통의 감정과 마음이 사라지며 텅 비어지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승을 만나면 모든 의문이 사라지며 평안했고 제가 견성을 했다고 생각하며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질문
좋은 경험을 단시간에 하시다니..... 당신의 선함과 집중력이 진리와 친밀해지게 되었군요. 평화와 고요한 상태는 참나가 드러난 것이지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 너머에 잠시 머물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체험하곤 합니다만 그 후로는 어떠셨나요? 일상적인 삶이 흔들리지는 않았나요?
그
처음에는 자신감도 좀 생긴 것 같고 직장도 가정도 문제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지요. 마음과 나 자신에 대한 허무한 감정도 내가 만든 것임을 알기에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지냈으나, 열흘쯤 지나니까 과거의 허무감과 억지로 무언가 끌고 가는 자신으로 되돌아온 저를 만나게 되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인도로 돌아가 스승의 옆에서 그 에너지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기에 한국에서 유명한 수행 단체를 휴일마다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40대 내내 악몽을 꾸거나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면서도 가족을 위해 직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어느 날, 저의 부인이 '당신은 예전의 당신이 아닌 것 같아. 왜 그러는거야? 가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 보여? 당신 도대체 왜 그래?' 하는데 저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질문
마음 너머를 본 것에 대한 갈망이 당신을 힘들게 했군요. 그것은 일종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 전에 했던 말이나 행동을 잊거나 실수를 하시지는 않나요? 혹은 남의 말을 잘 안 듣거나 멍하게 존재 안에 머물다 현실적인 일들을 놓치지는 않으셨나요?
그
맞습니다. 자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못 보거나 생각 없이 그냥 보기만 해서 중요한 일을 놓친 적이 있었어요.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찾아오면 '나는 존재 하는 것은 맞는가?' 하는 의문 속에서 운전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스승의 곁에서 행복감에 젖어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갈증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질문
현실을 놓치거나 생각이 멈추는 것은 성장한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과정이라 생기는 부작용일 뿐 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 보다 외부로 향한 에너지가 내면과 균형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현실을 놓치는 것 같지만 큰 흐름 안에서는 여유와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변화의 시기에 나라고 하는 굳어진 에고가 느슨해지면 참나의 힘이 필요한 능력을 채워줍니다만 어떻게 삶을 다루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
음, 한 번은 깨달은 분이 있다 해서 찾아갔어요. 그분이 운영하는 00에 일요일마다 가서 공부를 했지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점점 친해지니까 저에게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신과 1년을 함께 해야한다 하더군요. 그분은 자신이 가진 대단한 의식의 에너지를 저에게 줄 수 있으며 그때는 영원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 했어요. 스승 없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며 저의 분열 상태를 방치하면 고통이 심화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마땅한 스승도 없었고 혼자 이런 저런 책도 보고 호흡수련으도 해왔지만 진전도 없고 재미도 없어 지쳐가던 차라 솔깃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저를 다시 마음 너머의 고요와 행복감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헌데 은근히 그곳의 운영비를 내주기를 바랄 뿐아니라 제가 부유한 사람인 것을 아는 총무는 지나치게 아부도 했습니다. 그게 부담스러워 몇 백만원 기부를 하고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질문
그런 말을 듣고 갈등이 더 커지셨겠군요.
그
아닙니다. 저는 현실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가족도 제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들로 느껴지고. 그냥 꾹 참고 이런저런 온갖 수행을 실험해 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 스승은 늘 '이 길은 스승이 없이 갈 수 없다. 너가 너의 어떤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얻을 수 없다.' 하고 말했지요. 그러나 저는 어린 시절부터 모범생으로 자랐고 저의 부모님이 사신 듯 저의 가족이 가장 소중합니다. 헌데 제 가슴 속에는 너무나 공허감이 커서 이대로 살다간 어떤 선택을 할지 두렵기도 하고 막막합니다.
질문
당신의 성격특징은 몰입력과 결단력 그리고 영적으로 예민함도 있어 보입니다. 이 장점을 잘 활용해 지금까지의 노력들의 장단점을 찾아 어디까지 마음이 따라오고 있나 명확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주로 혼자 있을 때 자주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그
사회의 틀을 벗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감과 스승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가장 많습니다.
질문
그럼 먼저 분노감의 뿌리부터 살펴볼까요? 사회의 틀을 벗고 싶다 하셨는데 그게 왜 필요하다 생각하십니까? 막연하게 부자유한 당신의 현실을 뭉뚱그려 사회에 투영하며 불평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만.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부모님은 엄격하고 당신처럼 명석하며 인지적으로 칼같이 상황을 분석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습니까?
그
어떻게 그것을 아시는지......
질문
당신의 기질 안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대체로 착한 심성인데다 모범생으로 자란 사람들은 부모의 기본기질이 그대로 입력되어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패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선택하는 방법에 자신의 패턴이 숨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배운 대로 무의식적으로 선택합니다. 의식이 깨어날수록 창조적이며 개별적인 가치를 성장시키는 선택을 하지요. 우리의 참나는 과거를 추앙하며 살기보다는 지나간 과거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당신은 딱 멈춰 있습니다. 저도 모범생으로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다 어느 날, 견성체험을 하고 불완전함으로 괴로워하며 당신처럼 오랫동안 완성을 그리워했기에 그 막막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떻게 극복을 하실 수 있었는지, 당신의 목소리는 평안해 보입니다. 이제 그런 갈등은 없으신지요?
질문
녜, 없습니다. 한때 저 역시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입장이어서 홀로 있고 싶었으나 늘 집안 대소사와 두 자녀 양육을 해야 했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깨달음이니 뭐니 하는 이미지를 잘 느껴보세요. 결국 왜 깨달으려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셨을까요?
그
음... 저는 바가바드기타, 법구경, 초기 불교경전, 마하리쉬, 파파지, 고엔카, 크리슈나무루티, 상카르철학, 톨레, 성경 등 다양한 진리에 대한 책을 섭렵해 왔습니다. 깨달음은 궁극의 자유로움의 경지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는 집착?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남? 저는 그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질문
자! 견성의 사전적 정의를 자신의 본성이 본래 한 점 마음도 생각도 없는 텅빈 고요이며 평화로움을 체험하는 것이라 해봅시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어떻게 해서 그 상태로 들어갈지 전전긍긍 합니다. 얼핏 이런 체험을 순간적으로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 체험이 견성 체험이란 것을 다만 모르기에 무의미하게 지나가곤 합니다. 견성체험은 실재로 우리의 삶 안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몰입하여 하나가 된 상태이거나 복잡한 하루를 내려놓고 쉬거나 길은 수면상태에서 의식이 깨어있거나 즐거움 속에서 한껏 웃을 때도 견성 상태와 닮아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견성체험을 기억하고 체험을 확대하려 노력하는 것을 불가에서는 보임의 과정이라 합니다. 보임 과정에서 대부분 빠지는 함정은 과거의 경험을 그리워 하거나 의심하는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잊어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전히 화가 나고 욕망하는 과거로.
그
맞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체험을 한 것도 까마득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실 변한 것은 내가 다시 그런 상태가 아니므로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가 더 늘어난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
깨어나는 과정에는 몇 가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시공은 본래 없으며 우린 시공에서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그 체험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사라질 수 없는 것을 본성이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늘 존재 하는 것처럼 참나는 항상 우리의 본성이며 평화입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에 의심을 거두라고 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 해서 안 하는 것은 강요된 에고이지만 자유를 주었는데 선택하는 것은 자존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자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잡다한 마음에 짓눌려 잊고 있는 무게를 덜어내는 명상을 하고 가슴을 일깨워 느낌에 몰두하는 힘을 길러 보십시오.
깨달음을 추구하는 욕망이 가장 집요하고 강력한 욕망이지요. 그냥 본성을 한 번 본 것으로 변할 것은 없습니다.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그마음이 당신이 움켜쥔 집착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때 느낀 평안함과 텅 빈 상태에서의 고요의 체험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당신의 깊은 곳에 늘 존재 합니다. 그 체험을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로그인하듯 집중해 열어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모습이니까요.
그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