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 글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가 재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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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화가 뭐야?라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대답했던 영화가 재개봉했다. <빌리 엘리어트>를 가장 처음 봤던 그 계절이 돌아왔고, 극장에서는 본 적이 없었으니 주저 없이 영화를 예매했다. 2000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의 재개봉 포스터는 이렇게 쓰여있다. '새해, 다시 보고 싶은 모두의 인생 영화'.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춤을 출 수 있는 빌리는 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권투 수업 대신 발레 수업을 택한다. 그리고 있는 힘껏 춤을 추고, 배우고, 더 배우기 위해 학교 오디션을 준비한다. 빌리가 사는 마을은 아버지와 형이 함께하고 있는 광부 파업이 진행되고 있고, 가족에게는 엄마의 부재가 너무 크다.
몇 번이나 본 터라 줄거리는 줄줄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시 본 이유는, 영화 속 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춤을 출 때 짜릿한 표정을 하고 있는 빌리의 표정이 너무 좋다. 춤이, 발레가 왜 좋냐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서툴게 말문을 떼는 빌리의 대답도 너무 좋다.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서사.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 서사는 <빌리 엘리어트>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빌리가 욕실에서, 침대에서, 권투장에서 턴 한 바퀴를 제대로 돌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에 매료된다. 결과가 어떻든 노력만으로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으니, 그 순간들을 이 영화에서 발견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며 발견했던 건, 예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빌리의 '세상'이었다. 그간 이 영화를 읽어왔던 방식은 위에서 말한 '빌리의 노력'이었지만, 이번에야 영화 속 세상이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이전에는 충분하게 느끼지 못했던 빌리의 세계 - 무너지는 가정 경제, 철저한 계급 사회 - 를 부지런히 보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세상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선택이 이어진다. 빌리와 가족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무너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의 선택에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최선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도 그러기로 했다. 마음을 조금 단단하게 먹고,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고르기로 했다. 할 수 없는 것은 제쳐두고 할 수 있는 일을 고르다 보니 작은 선택지부터 고를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은 일 생각 없이 나에게 집중할 것. 누군가를 대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의를 가질 것.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인지 많은 사람들을 무너지게 만들고 있지만, 해보기로 했다. 단지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 조금만 침착하게 가장 나은 선택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를 지지할 수 있는 좋은 이유를 하나 더 만든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추워진 겨울밤에 빌리가 생각나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꺼내 보아야지. 빌리가 자신이 행복해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춤을 추고 다음 단계를 준비했듯, 가족들이 많은 것을 내주고 함께해주었듯, 빌리의 발레 선생님과 친구가 지지와 응원을 보태주었듯. 나도 나를 위해서. 나에게 행복을 주는 이 영화를 선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