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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Apr 24. 2022

Take this waltz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내가 가장 여러 번 본 영화는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다. (원제는 <Take This Waltz>. 원제가 훨씬 좋다.) 대학 수업에서 알게 됐던가, 어쩌다 처음 접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여하튼 일 년에 한 번씩은 찾아 보고 있다(보게 된다).


결혼 5년 차인 마고가 남편 루와의 권태를 느끼던 중 나타난 이웃집 남자 대니얼로 인해 동요하는 이야기. 이 영화를 남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줄거리가 그렇긴 한데, 그냥 그런 불륜 영화가 아니에요!"라고 해명하듯 말하곤 하는데, 맞다, 불륜.


(아래 장면은 대사와 눈빛만으로도 어지간한 베드신보다 더 야해서 볼 때마다 놀란다.)


초반 몇 년은 마고의 마음과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닭고기를 요리하는 남편을 '견디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권태를 극복하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하필 그때 대니얼 같은 남자가 나타났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라고. 새것도 결국은 헌것이 된다 하더라도, 아직 헌것이 되지 않은 새것에 끌리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느냐고, 사람의 감정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언제부터였을까. 마고의 선택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관계에는,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마고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니얼을 밀어내려는 노력이 아니라, 남편인 루를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을 뿐.


마고의 마음을 들은 루는 이별을 앞두고 마고에게 샤워를 권한다. 샤워하는 중 어김없이 머리 위로 찬물이 쏟아진다. 루는 샤워커튼을 열고 고백한다. 마고가 샤워할 때마다 자신이 찬물을 받아 몰래 뿌려왔다고, 샤워기가 고장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나이가 들어 수십 년 동안 장난을 쳐왔노라 고백할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당신을 웃길 작정이었다고.


나는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중의적인 문장인데, 데이트 후에 헤어질 때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길을 갔다는 의미다.) 아쉬워서 그랬다. 더 같이 있고 싶어서, 한없이 아쉬워서, 그렇지만 각자의 내일이 있으니까, 나는 떼쓰는 아이여서는 안 되기에 더 칼같이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애인과 헤어지던, 그러니까 영영 안녕을 고하는  헤어짐의 밤에 나는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애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매번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갔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의 지난날과 영화 속 장면이 함께 생각났다. 닮은 점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고, 그래서 두 개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굳이 설명할 마음은 없다. 그냥 생각이 났다며 무책임하게 지나가고 싶다.


우리는 이렇게나 오해하고 어긋나고 실수하며 산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현명하다. 관계 속에 우리는 상처받지 않으려 아등바등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도 쉬이 상처를 입힌다. 때늦은 이성은 아무런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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