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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향선 Nov 11. 2024

여름에 일자리 없던 건설에서 시골 가서 빨간 자두한박스

도시민에게 농협 홈페이지 시골구인  및 시청등 도시근교 농장 일자리 오픈

도시민들도 시골에 있는 소규모 농원, 영농법인의 공동작업장등에 일자리을 갖을 수 있을까? 도시의 건축현장의 노동자가 여름등에 일꺼리가 없을때 도시근교의 과수원등에서 일자리을 갖고 돈을 벌 수있을까?



내가 중학생일때 어느 여름에 아버지는 일을 다녀오셨다면 자두 한박스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셨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주로 집에 오시면 하는 일이 다 씻으시고 나면 전화기에 앉아서 내일 필요로 하는 건설 인부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한동안은 일상이었다.



건설현장 소장을 하셨던 아버지는 언젠가는 건설현장의 도면비슷한 것을 집으로 가져와서 일을 하시다가 나보고 건설도면에 네모난 모양을 그리라고 시키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름과 겨울에는 간혹 집에 계시는 일이 잦았다. 너무 더워서 일을 안하고 쉬쉰것은 아닌가 한다. 건설현장에 일하기 위해서 기초보건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장을 찾았더니 온열환자을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었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는 여름에 일을 쉬었던 것은 아닌지?아버지가 우리을 위해 교육비을 마련하기 위해 여름의어느날 농촌에 가서 자두따는 일을 하신것은 아닌지?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유통시설이 발달을 안해 마트나 시장도 발달을 안한 시절이고 대전에도 유성장, 신탄진장과 같은 전통시장이 서던 때다.



우리 가족들은 그 빨간 자두을 맛있게 먹었다.이제야 먼저 저세상가신 아버지에 코끝이 시큰합니다. 어머니가 조산원을 하셨지만 일정하게 월급이 없어서 환자가 조산원을 찾으면 돈이 들어오고 환자가 없으면 집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양복을 아버지에 해주셨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아버지가 일은 하셨지만 옛날에 고등학교을 나왔지만 잘 안풀려서 건설일을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남앞에 깨끗이 입고 다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일에도 열심히 해 바르게 살기위원회에 가입요청을 받으면서 정당일에도 관여하고 지역국회의원선거켐프에도 참여하고 충청권인사의 정치입지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한데 우리에게는 여름에 시골의 농장에서 일하다 오셨다는 이야기는 안하고 자두을 한박스 가지고 오셔서 우리는 여름에 선풍기 앞에서 온가족이 자두을 맛있게 먹었다.



어느 날 남동생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살고 있던 우리집에 버섯을 한박스 가져왔다. 동그란 우산이 아니라 너무 펴서 상품성가치가 없는 버섯같았다. 우리는 버섯을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버섯을 잘게 잘라 말리고 다른 반찬을 해 먹었다.



그때 어머니가 말려둔 버섯이 지금도 있다.; 어머니는 이버섯으로 물을 끓여 먹고 된장찌게 할 때 조금씩 넣어서 끎이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서 지난 앨범에서 사진 한장을 봤다. 누군가의 무덤 묘지 앞에서 아버지와 막내 남동생이 같이 찍은 사진이다.



난 아버지와 막내남동생이 친하다고는 생각을 안해서 그 사진이 이상하다는 생각과 아버지는 남동생에게 우리을 키우면서 고생한 이야기을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글을 쓰면서 수입이 발생을 안해서 가족을 위해서 건설노동현장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교육장에 온열질환자 포스터을 보며 갖가지 생각에 새벽에 글을 몇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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