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식당에 열대 고추로 매운맛을 내는 것일까

by 박향선


우리나라 식당에 열대 고추로 매운맛을 내는 것일까

한국의 온대 고추는 탄수화물이 있어 달면서 맵다. 열대의 고추는 작으면서 매운 갑사이신이 많다



26.03.30 23:19l


박향선(na4amich)



내가 어릴때 우리나라에 고추파동이 있었다. 베트남과 교역이 닫힌 상태에서 베트남 고추가 들어와서 그해 사람들이 베트남고추로 김장을 했다. 한데 너무 매워서 다들 김치을 먹지을 못했다고 한다.


우리집은 물론 밥도 먹었지만 빵을 집에서 해먹고 집에 미색의 네모난 식빵기계가 있었다. 내가 부산에 있을때 시상에서 그냥 전자상가을 구경했는데 식빵기계가 없었다. 집에는 알루미늄전기포트가 있었다. 지금은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전기포트이지만 그 당시에는 알루미늄에 도색이 된 전기포트였다. 물을 끓여서 인삼차을 마시거나 밀크티을 집에서 마셨다.집에는 원통의 동그란커피을 전기포트에 넣어서 끓여먹는 커피가 있었다.

부탄에 UNV을 다녀와서 몸이 안좋아서 유성에 목욕을 다니는데 리베라호텔 지하 1층에 온천욕장에서 사우나실에서 어느 누군가가가 커피 한잔을 주었는데 그 맛이었다. 그때 커피가 어느 브랜드인지 알고 싶어 물어볼까 하다 말았다.리베라 호텔은 88올림픽을 앞두고 대전유성에 세워진 호텔이다. 4층에는 수영장과 호프집이 있었다. 그러나 이용자는 별로 많지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지하1층에 볼링장이 있었다. 온천장이 아니라 말이다. 대학4학년때 과아저씨가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졸업 후행정고시을 충남대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소개해 준 아저씨인데 대전권 남자들과 좀 수준이 달랐다. 난 사람들과 사귄적은 많지 않은데 다 장교후보생과 만났다. 파티도 나중에 ROTC와 친구덕으로 공군사관학교 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다. 일반 대학의 파티와는 좀 다르다.

보통 대학에서는 과페스티벌이나 단과 페스티벌에 미팅도 하지만 보통은 써클에서 동기들이나 선후배에게 이야기 한다. 내 동기에게서 그 말이 듣고 싶었는데 그 동기는 나에게 이야기 햇다. 나 이번에 너가 나온 대전 성모고등학교을 나온 정연희 같이 수의학과 페스티벌에 간다고 이야기 했다.가면 갈 것이지 왜 나에게 이야기을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할까 생각도 했다. 아학년때 이런일이 있었다. 우리 써클에 동기중에 하나가 있었는데 남자애의 여자친구가 학교을 찾아와서 아예 써클룸까지 진을 쳤다. 남자애을 춤을 잘 추었다. 그당시에 블랙댄스라고 아마 나이트 클럽을 갔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보다. 다들 피하는데 나는 이여자애와 이야기도 하고 시간이 되면 커피도 마시고 했다. 우리과애가 이남자애을 좋아했었던 일도 기억이 나고 좀...그래서 이 여자애와 잘 어울려주었다.그리고 이 동기 남자애는 군대을 가고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어느날 세월이 흘러서 다 감흥이 사라졋다. 이 동기는 어느 덧 박사가 되어있었고 수의학과 애는 서울에서 한남동 근처에서 동물병원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건설업을 한다는 것이다. 친구 여동생과 결혼을 해서 애가 시집을 갔다고 했나? 우송정보대을 나온 여자와 결혼을 햇다는 것이다. 그남자애는 수의학과에는 톱으로 들어갔는데 음악에 빠져 지내다보니 ...나는 초대된적이 없는데 그룹사운드에서 노래을 불렀다고 한다. 홍명상가인가에서 르네상스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는데 디오그룹이 드럼치는 모습이 너무 박력이 있어보여 멋있게 생각한적도 있었다. 농대 여학생장이었던 써클 선배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룹사운드에서 노래을 했다고 한다.우리써클은 소리 하나라고 디제이써클이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으니 대전권에서는 리베라호텔에서 맞선을 보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에 지역지에서 호텔소식을 다루며 각 식당의 신메뉴서부터 총지배인 인사발령소식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했다. 서울에서 일류호텔소식을 다루었지만 나는 처음에는 얼어서 잘 가지을 못햇다. 어느 아파트 부녀회 회장이 점심초대해서 강남의 모호텔에서 뷔페식사을 하며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해서 어떻게 하냐 물으니 자세히 가르쳐 주어 잘 따라 했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남의 식당 음식들은 고추가루을 많이 안쓴다. 호텔의 사진을 봐도 고추가루을 잔뜩 넣지을 않는다. 그리고 강남에서는 30년전에 김장 담을 때가 되면 백화점에 식품코너에서는 좋은 배추을 선번하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하고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농촌과 직거래로 배추을 아파트단지에 가져와서 팔았다.그때는 복부인들이 밭뙤기 장사을 해서 배추나 무우을 수확하기전에 사기도 한다.난 몰랐는데 방그라데시 신문에서는 한국인들은 백가지 이상의 김치을 담글줄 안다고 보도 했다. 그리고 흥농종묘에서 나온 사보에는 한국 즉 온대지방의 고추은 탄수화물을 함유한 갑사이신이 매운면서 단맛이 난다고 햇는데 열대 고추는 탄수화물이 거의 없어서 맵기만 하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고추는 한 5cm정도하고 한국고추는 10cm이상이다. 부탄에 고추는 10c이상인데 가로가 한국것보다 좀 넓다. 맛은 단맛이 포함이 되어 있어서 한국김치을 담는데 어려움이 없다. 부탄에서 고추가 대량생산은 어려워도 방글라데시나 캘커타와 태국등지에 수출한다면 가능성은 있다. 태양초 고추등도 소개하고 말이다.

우리딸은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떡볶이와 마라탕을 자꾸 시켜 먹는데 나와 입맛이 맞지가 않는다. 그래도 딸이 시키니 열심히 먹기는 한다. 처음에는 공부한다고 해서 시켜주고 나중에는 마라탕이 너무 좋다고 해서 둔산동까지 가서 마라탕을 먹었다. 그돈이면 양식집에 가서 식사을 해도 되고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을 수 있다. 요세는 글쎄 닭발숯불구이을 계속먹는다. 약간은 맵다. 아무 채소도 안들어 간다 .한참은 아쿠탕에서 해물탕을 시켜서 먹으면 집에서 양파와 콩나물등을 더 넣어서 요리을 해주었다. 고추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위에도 안좋다.

이번에는 딸이 닭국을 시켰다. 나는 안먹었다. 계란찜을 먹고 연어알인가 들어간 밥을 좀 먹고 ..
딸이 오늘 이 콜라켄을 보라면서 나보고 콩나물을 넣어서 조리해달라고 해서 콩나물과 돼지고기와 파와 당면, 두부을 넣고 조리해 주었더니 밥을 먹고 잔다고 다시 들어갔다. 콜라겐을 돼지 껍데기에도 많다고 한다. 콜라겐 건강기능 식품은 한 14만원에서 30만원정도 한다. 여자가 중년이 되면 먹고 챙겨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40대가 들어서면 갱년기여성들의 몸도 보호해야 한다. 해럼큐도 4050대 먹는 것이란다. 나는 40대에 잠깐 맨스가 끊겼다가 다시 맨스을 했다. 요새는 의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지난해에 맨스가 끊기면서 더 우울햇던 것은 내가 아들을 하나 갖고 싶었는데 딸을 키우다 보니 갖지 못한것이 원통하다. 취재기자 할때는 몰랐다. 부동산분양과 임대 세입자 관리 할때도 몰랐다. 한데 식당을 다니면서 여러식다을 가보니 분식집은 여자가 남편과 일을 했고 수라면옥은 할머니가 아들에게 장사을 차려주었다가 다른 여자에게 넘기는 과정이었는데 그여자 말에 의하면5억이라고 했다.그여자는 남편이 의사이고 키가 작았는데 큰아들은 키가 상당히 컸다. 그 아들과 수라면옥에서 같이 일을 했다.뷔페 식당은 나또래 젊은 부부가 사장인데 50대인가 천안과 대전 두곳을 하다가 대전킹덤은 오페라웨딩홀에 넘긴다고 했다. 코로나로 경영이 어렵다고 한데 장사가 잘될때는 주말 매상이 일억을 홋가 한다고 했다.다들 부부가 하거나 가족경영이 많고 회계는 잘 모르겟는데 시설투자보다는 넘기는데 급급한 것인지 좀 ....

원래 우리집음식이 맵지도 짜지도 않다. 방글라데시에 다녀오니 감자을 볶는데도 고추가루을 넣어서 하고 있었고 맛도 좀 매워져 있었다. 음식도 짜지고 아버지가 고혈압이라서 ...이빨이 안좋아서 엿는지 어머니는 돼지고기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진 것이 아니라 갈은 고시을 써서 김치 찌게을 해서 대학졸업후에 밖에 먹어본 돼지김치찌게는 돼지고기도 큰 조각. 부두도 큰조각등이라는 것을 알앗다. 그리고고기도 그렇지만 생선을 많이 먹었다.고추가루도 들어가지만 간장에 고추가루가 약간 들어가서 조린것으로 말이다. 조선간장으로 ..쌀죽도 쑤면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수제비도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우리 어머니는 김치을 잘 담그신다. 김장을 하면 소김장과 대김장으로 나누어서 11월에 11월과 12월에서 1월까지 먹을 것을 담그고 그다음에 12월에 김장을 하면 소금을 더넣어서 1월2월3월까지 먹는다.그려면 겨울내에 집에서 김치전을 하면 우리 식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 찾아오는 아줌마들까지 이웃집 아줌마들까지 김치전을 먹었다. 그리고 김치로찌게도 끓이고 김치에 돼지고기에 두부, 당면을 넣고 김치만두을 만들어 먹는다. 김치을 안먹으면 콩기름이나 들기름에 지져서 먹기도 한다 .우리딸은 김치 찜을 좋아한다. 동치미는 얼음이 성김 시원한 국물이 별미다. 김장독을 땅에 묵어두면 겨울에 김치가 얼어서 그 맛이 일품이다. 딸은 갖었을대 그 김치가 먹고 싶었다. 동치미 한사발을 들이키면 너무 시원할 터인데 ...물은 시원하지가 않다.

나는 집에서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이면 더 바빴다. 집안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겨우 중학생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공부을 한다는 것이다. 동생들은 차려주는 밥을 먹고도 엄마에게 띵깡을 부리곤 햇다. 딸이 고등학교여름방학 끝나고 학교을 다녀오더니 다른 친구들은 방학때 공부을 햇다고 나에게 화을 냈다. 딸은 과외을 알아보다가 밖에서 코로나가 걸려서 집에 있느라고 과외을 못하게 되고 나도 코로나가 걸렸었다. 그리고 딸은 미스터 션샤인을 시청했었다.나는 어머니에게 화을 낸 적도 없고 아버지에게 무엇을 부탁한적도 없다.

그리고 나는 중하교시절에 집에 돌아오면 방 빗질부터 방청소을 해서 그다읍에는 걸레질그리고 어머니와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이 끝나면 동생들과 이야기을 하다가 숙제을 햇는데 중하교들어가서 생긴 버릇중에 하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을 햇다는 것이다. 아침에 수학이나 영어등을 공부하고 학교을 갔다. 국어는 처음에는 사전을 찾아가며 낱말을 정리하고 말이다.

그리고 난 문 옆에서 잤다. 아랫목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고 그옆에 남동생들. 여동생 나는 문옆에서 잤다. 춥기도 해서 일찍 깨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앞에서 챙피당하기 싫어서 일찍 일어나 공부을 했다. 그랫더니 어머니가 스탠드을 사주셧고 내가 영어테이트을 월부로 사가지고 오자 카세트테이프을 사주셧다. 그래서 그 카세트테이프에 영어테이프을 넣고 공부했다.

어머니는 내가 자라자 이런 저런이야기을 했고 어머니는 옷에는 신경을 안썼다.이런 말을 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가지고 있던 좋은 옷을 가지고 나가서 팔려고 하는데 그 옷을 쌀로 바꿀수가 없엇다는 것이다. 애들은 굶주리게 생겻는데 ..그래서 어느 쌀가게을 가니 총각이 어머니의 옷을 보고서 아줌마가 참 딱해 보인다며 쌀을 한말을 주었다고 했다.어머니는 나에게 교육적인 것은 도와주었는데 옷에는 잘 신경을 안쓰셧다. 아버지가 아산만공사에서 하청으로 사업당시에 고모가 신혼인데막내고모돈을 끌어다 쓰셧다가 갚지을 못하자 막내고모가 나 중학교때 집에 왓다가 내가 옷이 별로 없자 자기가 입던 옷을 보내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에 이야기하는데 막내고모가 양품점을 하셔서 고등학교떼 나 입으라고 보냈다고 한다. 황토색 커다란 원피스와 회색투피스였나보다.

어머니는 나에게 옷을 입히는 것보다 먹는 것을 부실하게 먹으면 안된다고 당부했다.아버지는 나에게 왜 용돈을 안달라고 하냐 옷을 안사달라고 하냐 했는데 어머니의 말에 어떻게 내가 나만 생각을 할 수있었겠는가?어머니는 밖에서 친구와 노는 것도 중요하고 공부도 중요하지만 집에서 전화한통을 잘 받아 산모을 받아서 애을 받으면 우리가 살지 않겠는가?집에 와서 주사을 맞는 사람수발과 애기 낳으러 온 사람들 수발까지 다 했다. 어떨대는 피빨래까지 ....어머니가 환자을 받은 날 이면 그다음날에 학교을 가면 너무나 피곤했다. 그런데 동생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그때 가 재미가 있었지 않나싶다. 어머니가 환자을 받으면 우리 사형제는 어머니 팔다리을 하나씩 맡아서 주물렷다. 밥은 안먹고 치킨을 먹거나 밖에 나가서 외식이었다. 우리는 신이 난것이다. 좀 자라서 어떻게 어머니에게 조를 수가 있었겠는가?

한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동생이 반에서 뽑은 주부클럽 모임에 학교에 갔다가 에어로빅을 배우더니 나중에는 집에서 춤선생을 불러서 동네 아줌마들이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맞바람을 피운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나 초등6학년때 계돈 천만원을 날리었다는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아버지도 돈을 버는데 집에 제대로 가져다 주는 것 같지가 않았고 살림이 어떻게 되었던 것인지 좀 의문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다.계주가 도망을 가서 천만원을 못받게 생겼다고 약을 드시고 했었다.

친구중에 한 명은 자기 아버지가 공무원이라고 하고 어머니가 보험을 하는데 대출을 받아서 탄방동에 이사을 갔다고 한다. 나중에 언니하나는 제일제당에 형부가 다녔는데 부도가 났던가 해서 살림을 들고 친정집에 들어왓다는 이야기도 하고 나중에 그집에서 말도 많았다. 친구는 대학때 그옆집에 살던 남자친구가 카투샤에 들어가서 주말마다 나와서 친구가 다른 사람못만나게 하더니 친구가 대학을 졸업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식을 못해서 애가 터졋다고 한다. 삼성생명보험에 지방소장을 하다가 대전으로 왓다고 했는데 ....내가 방글라데시에 있을때 결혼사진을 보내와서 나는 방글라데시에 아롱에서자주가죽함을 사서 보내었었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기전에 한번 찾아갔을때는 친구가 이야기하길 자기 부부는 가끔씩 와인을 마신다며 와인잔을 보여주었다.

우리집에는 아주오래된 와인잔이 있다. 지금처럼 큰 와인잔이 아니라 약간 아담한 사이즈에 약간 색이 들어간 잔이다. 요새 와인잔들은 다 무색이다. 와인과 곁들이는 비스캣이나 치즈나 다 맵지는 않은것 같다. 딸에게 와인을 가르치려는데 딸은 막걸리에 하이볼을 찾는다. 막걸리에 매운 안주들은 남자나 먹는 것이다. 딸이 중2때 막창은 친구집에서 먹고 왔다고 해서 난리을 쳤다. 그것은 술 안주로 먹는 것이지 너희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친구들과 놀지 말라고 했었다.우리 큰올캐는 배운것이 없다. 우리 남동생이 일반고을 다니다 말고 검정고시을 햇다.그리고 그집은 지금은 논밭이 있어서 부자가 되거나 돈을 벌었는지 모르겟지만 음식이 아니다. 맵고 짜다. 딸이 중1에 들어가 처음에 중간고사을 공부해야 하는데 큰 남동생 큰딸인 한해가 우리집에 와서 칼국수을 사는데 매운 칼국수인가 뭔가을 사서 우리딸이 잘 못먹었다. 그리고 처음 중학교에 들어가 입술이 안쪽이 헐어서 음식을 먹기가 힘이 들었다. 시험보기 이틀전인가 밤 11시넘어서 갔다.딸방에서 안가고 있었다. 시집을 간다고 인사을 하러와서는 말이다. 그리고 시집을 간다기에 내가 가진 여러요리책가운데 한가지을 고르라고 햇는데 국을 골랐다. 딸의 눈썹도 다듬어주고 내 눈썹도 다듬어주었다....딸이 어떻게 중간고사을 치르었을지....

난 화장을 할때 스킨과 로션을 사용한다는데 남동생 큰딸은 나에게 영양크림을 하나 주엇다. 여동생은 화가 났는지 이 것은 1만 오천원정도 한다며 나보고 바르라는 것이다. 나는 화장을 해도 그만이라 이야기 안하다가 나중에 이야기했다. 한해야 난 스킨과 로션이 필요하구나....영양크림에 대전에 오면 하나씩 주고 갔다. 설화수에서는 영양크림이 몇십만원한다. 엘지 헤라에서도 영양크림이 몇십만원한다. 자기들을 키워주었는데 큰고모에게 영양크림....아니 스킨과 로션하나 좋은 것 못해줄까?자기 부모에게서 돈을 받아서 키운것이 아닌데...

이집에 오고서 한 번 김치을 담아왔었다. 너무 고추가루가 들어간 약간을 쉰듯한 것이었다. 잘 안먹었다. 내가 아파서 김치을 잘 안 담자 딸이 김치을 담으란다. 이번에 김치을 사서 조금 가져다 주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때는 내가 어머니와사는 여동생에게 김치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제는 별로...여동생은 김치을 담그는지 안담그는지 내가 김치을 담아다 주면 싱겁네 마네 김치 담아오지 말라고 말이 많았다. 나는 어머니가 김치을 찾아서 담아다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내가 담아다 준 김치을 잘 먹는 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김치을 담아 달라고 해서 안하고 요양보호사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요양보호사가 바뀌었다. 그만 두었나보다....그때 몸이 아팠다. 너무 힘들어서..
한 2년에서 3년되엇나보다. ...동네 아줌마는 70대인데 요양보호사다니는 아줌마 집에 김치등도 담아 주고 나이가 있는 요양보호사는 반찬도 해서 다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초겨울에 들어서 좀 추우니 칼국수을 어머니에게 끓여달라고 칼국수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안했다. 그리고 차을 타마시며 이야기 하라고 차도 가져다 두었다.

한데 요양보호사들은 교육을 받겟지만 일주일에 5일이 아니라 2일이나 3일정도 다녀서 인근에 할머니들이 골고루 헤택을 받았으면 한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국내에 대거 유입된다고 한다. 말이 어눌할 터인데 ...

동네에서보면 아니 둔산동도 마찬가지지만 노인들이 은행업무가 불편하다. 40대와 50대도그런데 ....6070대들은 더욱 힘이 든다.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의 은행업무도 대신 봐준다고 한다. 노인들도 연면의료제도도 좀더 정신이 맑을때 하고 자기 재산에 대한 이야기도 동네 변호사가 있어서 상담을 하거나 정리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머니가 무엇때문에 동사무소에서 서류에 사인을 해오라고 해서 가니 어머니는 내가 안본사이에 힘도 없어져서 손을 볼펜을 들 여력도 없어지셨엇다. 글씨을 제대로 못쓰셧다. 그런 가운데 여동생이 갑자기 kT전화기을 해지 했다 어머니가 이집을 나가기 전에 전화을 나에게 주었는데 여동생이 전화번호을 해지 한것이다. 한데 이상했던 것은 2024년 11월에 내가 목원대 근처에 용계동 에테르스위첸모델하우스에서 인가 그 회사 아파트부동산 분양을 하러다니는데 집에 전화을 하니 엉뚱하게 딸이 전화을 안받고 어떤 여자가 042-533-9362을 받고 있었다.내가 여러번 해도 말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떤 남자가 그 전화을 받고 있었다.24년 가을에 나는 설사을 계속했었다. 식당을 계속다니기도 힘이 들고 ...25년1월에는 여동생이 해지한것은 1월 말경인가 중순경에 알게 되었었다.어떤 사람이 전화을 하며 가연부동산이냐고 물으며 전화가 왓다. 아니라고 했었다. 부동산이냐고 자꾸 전화을 하다가 끊었다. 그 가연부동산은 그집에 딸이 세명인데 큰딸이 간호사로 삼성병원에 있다고 햇다. 막내는 구미인가 물리치료사 공부을 한다고 했다. 막내는 딸과유평초 동기다.그집은 그딸이 초등학교6학년때 인가 마트에서 라면을 종종사가는 것을 보았었다.

나는 집에서 딸에게 과자을 만들어서 해 먹이는데 그 푸르뫼아파트에 사는 딸친구엿던 김아연으 ㄴ우리집에 오면서 꼬깔콘인가 과자을 사가지고 왔었다. 아는 엄마들은 안다. 왜 유기농을 따지는지 말이다. 김아연은 우리집에 여동생까지 와서 놀았는데 어느날은 수연이가 집에 안가고 여기에 더 있겠다고 안가고 버티었다. 그랫더니 나중에 아연엄마가 와서 우리방까지 들어와 보고 수연이을 달래서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무슨일인가로 아연이네 집에 갓었다. 넓은집에 환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딸에 의하면 아연이네는 월세로 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딸이 아파트로 이사가고 싶다고 해서 딸과 같이 보는데 삼부가 30평대가 천만원에 40만원이었다.
어머니는 건강체험실에 갔다가 어떤 할아버지을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가 자전거로 남동생이 가져온 김치을 한박스 가져가기도 했다. 동양파라곤인지 버드네 인지 잘 모르겟지만 그 할아버지는 영어선생을 하는 딸과 같이 산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말이다. 어머니가 그 할아버지 초대로 그 아파트에 한번 갔다왔다고 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구두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했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식사비용도 엄마가 낸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아파트 어쩌면 전세이거나 월세가 아니엇는지?그리고 이상한 것은 이 동네 금성빌라 어머니가 살던 집에 뱅갈리 쇼올이 걸리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말이 없이 언젠가 가니 미안하다 하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을 안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서울에서 여동생이 갑상선암이라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대전에 와서 이야기 했엇다.다른 사람이었나....여동생이 굉장히 틱틱거리고 제일 잘 난 사람인냥 행동을 햇었다.어느날은 내가 제사음식을 같이 준비하러ㅗ가니 혼자서 다해서 내가 나중에 내가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와야 겟다고 했더니 언니가 언니같아야지 하며 화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나보고만 참고 있으라는 것이다.울화통이 터져서 안볼려고도 햇다. 한참 먹을 나이인데 글쎄 다른 여조카들에게 고기와 음식을 싸주면서 우리는 안주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돼지고기 갈은 것과 새우을 사서 돼지고기전을 해주니 딸이 너무 좋아하고 음식하는 것을 배웠다. 내가 보겟다. 막내남동생은 한 술더 떠서 자기 딸을 요리학원에 보내 음식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라고 했었다.큰남동생의 큰 딸이 집에서 돼지고기요리을 하는데 간장을 더 넣어서 내가 너무 짤것 같으니 물을 넣자고 물을 조금 넣었다. 그랫더니 나중에 자기 딸편을 들며 자기 딸이 한 것이 맛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한 것이 맞다고 하고 .....그때 당시에 가만히 보니 조카들이 전문대 다니면서 식당에서 알바을 해서 돈을 좀 버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큰고모 수고햇다고 ....인사한번 없었다. 조카들이 대학을 들어갓다고 해서 이야기을 나눌려고하면서 써클이야기을 했더니 자기네는 수업받느라 써클을 할 시간이 없다고해서 할말이 없었다.큰 조카 한해는 대전여상을 다니면서 알바을 일찍 시작했다. 그리고 동아리로 연극을 한다고 했다..그리고 자기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그때 막내 남동생의 딸도 혜인이도 같이 갔다. 큰남동생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언젠가 태평동에 와서 같이 어머니와 식사을 하는데 손놀림이 달랐다.밀양을 다닌다고 햇다. 남자친구을 만나러 말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나오는 정부보조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얼마가 나왓는지 나는 모른다. 그때 남동생이 방을 큰남동생 전 와이프에게 얻어줄때 쯤인가 정부보조금으로 넣은 계을 탔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지 않았다. 달라고 해도...집을나갈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나에게 목걸이 하나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돈을 어머니가 막내남동생에게 맡겨둔다고 햇다. 막내남동생이 계숙이에게 얻어준 방이 선화동에 꽤 큰 것 같은데 300만원이라고 했다. 10년전이다.
나중에 내가 돈을 나에게 달라고 햇더니 내가 돌아다니면서 먹는 것 다 사먹었다고 돈을 안주었다.이집에 이사올때는 내가 따로 나가 산다고 하자 남동생이 칠천만원에 내 천만원해서 팔천만원이라고 하면서 돈을 안주었다. 그리고그냥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된다. 나는 동생에게 월세을 낸다고 햇다.어머니가 내책을 다 버리셧다. 이사오면서 ...귀한 책이다 방글라데시건축에 대한 책에서 로즈니 곤다의 시집. 가나화랑 미술책, 히말라야 꽃. 히말라야 등산에 관한 책등 부탄역사책등영어책에서 각종 책들 ...두책장에 꾳혀잇는 책을 버리었다. 한국에서는 사지도 못하고 값이 비싼책들이다.

난 침대가 그다지 필요가 없다. 이방에 침대하나와 딸 책상이 하나 덩그라니 있었다. 이방에서 딸과 6년을 있었다. 이침대에서 같이 딸과 잤는데 어느날 갑자기 공부도 안하고 여행도 못갓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딸은 저방에 상을 침대삼아 올라가더니 자기 시작해서 침대을 사고 매트리스을 가져다놓은 것이다. 막내 남동생이 가져다놓은 매트리스가 자기가 쓰던 것이라고 말이다. 막내마용서을 할 것이가 말것인가.

딸이 어느날 미스터 션샤인을 보더니 나에게 엄마란 함안댁 같은 가보라고 해서 너무 놀래서 나을 보니 옷이 너무그랫다. 동네 헌옷가게도 옷이 없었다. 나는 이집에 오면서 계속 살이 찌었다. 95사이즈에서 105까지 그말인즉은 영양 불균형이다. 채소나 과일등을 적당히 먹어야지 살이 안찌는데 기름기가 있고 탄수화물이 있으면 살이 찐다. 더군다 남녀관계가 없으면 호르몬 불균형으로 중년여성은 살이 '찐다. 딸은 중학교 들어가서 충남여중근처에서 먹어본 떡복이을 집에서 시키기 시작하더니 해물탕에 이어나중에는 마라탕을 지금은 닭발을 열심히 시키어 먹는다. 맵고 이상한 맛을 좋아한다. 방글라데시도 좀있는사람들의 음식이나 일반 사람들의 음식은 그다지 맵지 않다. 외국인을 배려해서 인지...방글라데시 계란말이는 열대고추가 들어가는데 그던대로 맛이 있다. 이렇게 딸이 시키는 닭발처험 매운맛이 아니다. 태양초고추가 아닌 열대 베트남 고추인지 ..대전시내에 주문제작의 태국고추인지 다른 나라 열대 고추인지 여러 생각을 한다.2녀전부터 당뇨증세가 잇었나보다,딸은 지난해인가 동네 다이소에서 바바나잎 추출물의 식사전에 먹는 혈당조절약을 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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