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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by 운해 박호진

아파트 현관의 게시물. OO일 까지 자전거 소유자는 관리사무소에 등록하란다. 방치된 것을 구분하여 폐기 처분하기 위해서이다. 단지 내 곳곳의 자전거 거치대는 고철 폐기장처럼 흉물스러웠다. 어른용 아이용 할 것 없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였고 바람 빠지거나 녹슨 것, 심지어 부서져서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도 보인다. 한때는 운동으로 레저로 씽씽 달렸을 텐데. 사용 안하려면 중고판매 사이트에 올려 나눔을 하던지, 아끼며 애지중지 하던 녀석을 방치하여 영 영 못 쓰게 만들었을까. 예전에는 지자체에서 중고 자전거를 기탁 받아 수리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행사도 있던데 이젠 그런 수요도 없나 보다. 옛날에는 자전거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재산이었는데. 그냥 버려지는 게 안타깝다.


어릴 적 방 한편에 자전거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 사시던 삼촌이 보낸 준 귀한 물건이다. 그 시절의 자전거는 대부분 짐자전차로 불리던 대형 자전거였고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안장 뒤 짐받이에 널따란 판자를 대고 짐을 잔뜩 실어 고무 밧줄로 묶어 운반하거나 각종 먹거릴 싣고 골목을 누비며 행상을 하는데 쓰였다. 더러는 출퇴근이나 통학용으로 사용하는 승용(?) 자전거도 있었지만 감히 넘겨다 볼 수 없었다. 일산(日産)자전거는 흔히 볼 수 없는 멋진 녀석이었다. 몸체나 휠의 금속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살며시 페달을 돌리면 체인 움직이는 소리가 자르르르 나며 바퀴가 부드럽게 돌아가고 휠은 더욱 광채를 낸다. 발전기가 붙어있어 라이트에 불이 들어오는데 바퀴를 돌리는 속도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재미있어 자꾸 돌리다가 고장 낸다고 어른들께 혼이 나곤 했었지. 밖에서 아버지가 한번 태워주면 우쭐할 텐데 통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렇게 달포 넘게 모셔져 있던 자전거는 어느 날 없어졌다. 귀하고 아까운 것을 타기보다는 처분하여 돈으로 바꾸었겠지.


지금 우리 집에도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아들이 결혼 무렵 제 처랑 놀이로 탄다고 마련한 것이다. 자동차에 싣고 한강 공원으로 나가 탈 요량으로 접이식 자전거를 샀단다. 그러나 두어 번 타지도 못하고(한가하게 한강 공원이라니) 자리만 차지하다가 창원의 우리 집까지 오게 된 녀석이다. 마침 아내가 창원시의 ‘자전거 교실’을 막 수료한 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러나 웬걸 배운 실력은 어디가고 삐뚤삐뚤하다가 넘어지기 일쑤다. 넓은 운동장에서 여럿이 배울 때 하고는 달리 도로나 공원은 장애물도 행인도 많다. 지레 겁을 먹고 멈추니 넘어질 수밖에. 자전거는 이사 올 때 따라 왔다. 탄천이나 신갈천 변에 자전거 길이 잘 만들어져 있지만 나서기가 겁난다. 한 대 뿐이니 아내더러 조금씩이라도 타고 가라하고 나는 뒤쫓아 뛰어다니니 재미도 없다. 아내가 신나서 배우면 나도 빌리거나 사서 같이 타고 다니면 좋으련만 늘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다가 이젠 베란다만 차지하고 있다.


친구 중에는 자전거를 배워 4대강 종주니 국토 종단이니 하며 전국을 누비는 이가 여럿 있다. 달리며 풍광을 즐기는 기분이며 운동의 효과를 자랑하며 같이 자전거 여행 다니자며 권하기도 한다. 사실 둘레길이나 강변길을 걷다가 대열을 지어 달리는 라이더들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였다. 한번은 친구의 권유로 낙동강 변에서 자전거와 헬멧을 빌려서 타보았는데 강바람을 맞으며 씽씽 달리는 경쾌함은 나를 유혹하였다. 한번 시도 해볼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자전거 가격에 깜짝 놀랐다. 장거리를 다니려면 자전거가 가벼워야 하고 안전해야 한단다. 싼 거는 조금 타다보면 금세 비교되고 싫증난다며 처음부터 괜찮은 자전거를 사야 한단다. 친구가 타는 것은 천만 원을 호가 한다고. 깜짝 놀라니 중고를 사면 반값이란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하고 한발 물러섰다. 과연 몇 번이나 타러 다닐지, 그보다도 몸에 짝 달라붙는 자전거바지를 입고 아파트를 나설 자신이 없다. 남이 입은 모습을(특히 여성) 쳐다만 봐도 낯이 화끈 거리는데. 포기! 등산이나 하고 자동차 여행이나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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