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환경과 기후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환경PC주의는 국가 정책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 과학과 상식,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합리적 기후정책을 마련하겠다. 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 21대 대선 제2차 토론회 중,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비과학적 환경주의’와 ‘합리적 기후 대응’의 경계는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 어떤 주장들은 누군가에게는 감정적 과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상식적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지에 따라 ‘합리성’이라는 기준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 후보의 말처럼, 과학적 근거가 곧 합리성의 충족 조건일까? 애초에, 우리가 믿는 ‘기후 과학’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과연 ‘합리적’일까?
내가 이 발언을 인용한 이유는, 그것이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처음 접했을 당시의 내 태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나는 기후변화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환경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리고 비과학적으로 접근한다고 느꼈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배우고자 했다. 이로부터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기후 변화라는 소재를 다리 삼아 다양한 분야를 건너며 공부해왔고, 내 생각은 많은 면에서 바뀌었다. 이제는 그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공유해볼 시점이 되었다고 느낀다.
이 시리즈는 기후 변화라는 주제를 다룬다. 익숙한 질문인 “기후변화는 왜 중요한가?”에서 출발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나갈 것이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데이터는 물론, 사회적‧정치적 맥락까지 함께 고려하면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고의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루한 구성 안에서 어쩌면 새로울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펼쳐보려 한다. 이를테면, 이성적인 언어로 감정적인 현실을 서술하거나, 점진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급진적인 정책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서술하는 방식 말이다. 때로는 감정적으로만 보이던 환경 담론을 정책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이 시리즈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교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내 생각에 공감해준다면 기쁘겠지만,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더 고민해보는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의미 있지만, 전혀 다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더 많은 통찰이 나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리즈가 당신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흔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이제부터 천천히, 내 이야기를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