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속에서의 고찰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by 강진영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하나의 시공간 위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그 중 한 단면을 시간이라는 터널을 지나며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는 미래를 결정하고, 미래 역시 현재를 결정한다.”

반면, 다른 이는 이렇게 반문한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지금 이 순간 한 입자의 상태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두 입장은 물리학의 대표적인 두 세계관을 반영한다. 전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한다. 시간은 공간처럼 구조화된 연속체이며, 모든 사건은 이미 존재해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후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기반한 코펜하겐 해석을 따른다. 이 해석은 자연의 본질 자체에 비결정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관점을 지닌다.

만일 첫 번째 주장이 맞다면,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단지 정보 부족, 다시 말해 ‘무지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우주의 법칙이라는 함수를 완벽히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뿐이다. 함수는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걸 아직 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두 번째 입장이 맞다면, 우리는 단지 현재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정확히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말하듯, 어떤 정보는 원리적으로 감춰진 채 작동한다. 이 세계는 함수로 환원되지 않는다. 즉, 함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만약 첫 번째 입장을 기반으로 했을 때 우리가 정말 많은 정보를, 거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면 과연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을까? 다시 말해, 세계가 정말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구조라면—그때 우리는 이 세계를 하나의 값을 입력했을 때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 ‘함수’로서 다룰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자연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에 해당한다. 고전역학, 열역학, 전자기학, 천체역학과 같은 모든 자연과학은 결정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입력과 출력 사이 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해왔고, 그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놀라운 예측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으로 과학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모든 과정에서 그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이 아이러니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나비 효과로 익히 알려진 ‘카오스 이론’이다. 겉보기에는 인과적으로 결정된 시스템조차도, 실질적으로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기후 과학은 확실한가?’, 혹은 ‘확실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현대 과학이 들려줄 수 있는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기후 과학은 확실해질 수 있는가?


1960년대 미국의 어느 기상 연구소. 한 기상학자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분명히 동일한 방정식을 풀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온 것이다. 그는 입력값을 재검토했고, 문제는 단 하나—소수점 셋째 자리 이하를 생략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원주율 π를 3.14나 3.141로 근사하듯, 천분의 일 정도의 오차는 무시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엔 이 극히 미세한 오차가 전체 결과를 완전히 뒤바꾼 것이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이후 이 가설은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과학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기상학자의 이름은 에드워드 로렌츠, 『카오스의 본질(The Essence of Chaos)』의 저자이기도 하다.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카오스’란 수학적으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동역학계를 의미한다. 첫째, 극히 작은 초기값 차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큰 차이로 증폭되는 ‘민감한 초기값 의존성’. 둘째, 시간이 지나면 관측된 상태가 가능한 모든 상태에 확산되는 ‘위상적 전위 가능성’. 셋째, 이러한 복잡한 거동 속에서도 일정한 주기성이 반복되는 ‘조밀한 주기 궤도’.

이 조건들이 충족될 때, 우리는 그것을 ‘카오스적 시스템’이라 부른다. 이러한 시스템은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며, 외형상 매우 복잡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직관적으로 이해하자면, ‘극히 민감한 역학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에 초기 조건이 완벽히 동일하다면 결과 역시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초기 조건을 무한히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한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후 과학은 본질적으로 복잡계에 속하는 기후 시스템의 작동 메커니즘을 통계적·수치적 모델링을 통해 정식화하려는 학문이다.

카오스 이론이 기상학에서 출발한 만큼, 기후 시스템은 이러한 ‘카오스적 시스템’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기후는 대기, 해양, 빙하 등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체계다.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이며, 단순한 미분방정식이나 선형적인 인과 관계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기후 과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초기값에 대해 무한히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실질적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즉, 우리가 ‘법칙’을 완벽히 알고 있더라도 그 법칙이 실제 세계에서 유효하게 작동하려면 초기값에 대한 완전한 정보가 필요하고,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더해 여전히 불완전하거나 미세하게 추정되는 메커니즘들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구름 피드백(cloud feedback)이다.

구름은 위치, 고도, 생성 방식에 따라 서로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다. 낮에는 태양 복사를 반사해 냉각 효과를, 밤에는 지표면 복사를 가두어 온난화 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름에 대한 매개변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기후 모델이라 하더라도 예측되는 온난화 수준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이외에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증가했을 때의 평균 온도 상승폭, 즉 기후 민감도(ECS), 기후 시스템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임계지점인 티핑 포인트의 정확한 위치, 대서양 해양 순환(AMOC)의 붕괴 시점과 조건, 비선형적 상호작용에 따른 복합 시스템의 예기치 못한 반응 등도 아직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들은 기후 변화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급격하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핵심적인 변수들이며, 결과적으로 “기후 변화는 실재하는가?”가 아닌, “기후 변화가 얼마나 더 위험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남은 불확실성을 형성한다.


기후 과학이 불확실하다면, 어떻게 온난화가 위험하다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러한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회의론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구름 피드백과 같은 불확실한 요소가 남아있다면서 어떻게 온난화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그걸 믿고 우리가 왜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기후 대응이라는 것을 해야 하느냐?”
“과장된 것 아닌가? 심각한 재앙이 초래된다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뜻 보면 꽤 합리적이고 과학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확실성을 오용한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적으로 "기후 과학에는 여전히 불확실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 모델의 결과는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오히려 기후 변화의 위험성은 과장되었거나,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와 같은 논리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과학적 불확실성이 일부 존재한다는 말이 곧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에 와서는, "우리가 어디까지 더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아직 완전히 알 수 없다"라는 말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불확실성의 대표적인 요인인 구름 피드백의 사례를 다시 들자면, 현재 과학계에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구름은 미래 기후에서 온난화를 증폭시킬 것이라 합의되었다. 구름은 과거부터 불확실성의 요인으로 지적되어 온 만큼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IPCC 6차 보고서(AR6)에서는 구름 피드백 불확실성 범위가 이전 평가 보고서(AR5)에 비해 약 절반 가량 축소되었다고 보고한다. 일부 모델에서는 약한 음성 피드백까지 시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약한 온난화 피드백을 주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과학적 합의이다. 다만 그 강도에 대한 것이나, 본질적인 불확실성의 요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기후 민감도의 경우에도 추정 범위가 축소되었으며, 불확실성의 하한이 상승하였다는 사실은 현 과학계에서 합의되었으나, 불확실성의 상한값의 경우 이견이 갈린다. 즉, AR6 기준 추정 범위보다 더 높을 가능성은 낮으나 아직 배제할 수는 없다. 또, 기후 민감도가 고정 불변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제시되고 있다. 기후 상태가 달라짐에 따라 피드백 강도가 변화하는 상태 의존성이 있을 수 있어 수세기에 걸쳐 기후 민감도가 더 커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현 입장이다.

해양 순환 변화(AMOC)의 경우 전 지구 해양 순환계의 완만한 약화,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약화되고 있다는 것 자체는 합의가 되어 있으나 약화 정도의 범위, 그리고 붕괴 임계점에 있어서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여겨진다. 공식적으로는 세기 내 붕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합의되어 있으나, 일부 연구들이 세기 내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참고로 AR6은 현존 모델들이 AMOC의 안정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실제 임계점은 예측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만일 AMOC가 약화되면 이는 유럽 지역의 기온 변화, 해수면 상승, 강수 패턴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해 AMOC가 붕괴한다면 지구 전체의 기온 변화, 해수면 변동 및 강수량 변화와 같은 수준까지 이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티핑 포인트의 경우, 현재 몇몇 요소들은 낮은 온도 상승에도 이미 티핑 포인트를 넘길 가능성이 있으며 2도 상승을 넘는 온난화에서는 여러 요소들의 티핑 포인트를 넘길 확률이 매우 커진다는 것이 합의되었다. 다만, 임계 온도가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며, 그린란드 빙상과 같은 몇몇 요소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하나의 티핑 포인트를 넘으면 다른 티핑을 촉발하는 연쇄 가능성 또한 제기되나 정확한 상호작용의 강도는 잘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직 잘 모르니까 대응은 나중에 하자"라는 의견이 무색하게, 기후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정도로 여유롭지 않다"라는 의견의 손을 들어주는 듯 하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쯤 해볼만한 질문이 있다. 과연 기후 변화의 불확실한 위험은 어느정도로 판단되어야 하는가?


불확실성 아래에서.


2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었다.


"대부분의 경우, '기후 변화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문제이고 이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라는 명제에 있어서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만, ··· 과연 지금 당장 우리의 삶에서 기후변화를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가? ··· 현재의 기후변화는 수많은 중요한 이슈들 중 하나로서 생각되고는 있지만, 그 중요한 이슈들 사이에서 기후는 뒤로 밀려나기 쉽다."


이후 기후변화를 논해야 하는 이유, 즉 '기후 변화의 중요성'으로서 기후 변화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기후 변화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수많은 중요한 문제들 사이에서 지금, 기후를 앞에 세워야 할 이유'로서 충분한가? 생태계 붕괴, 농업 생산성 저하, 물 부족, 해수면 상승, 기상이변, 공급망 혼란, 물가 불안, 지정학적 갈등 등과 같은 위험의 가능성들은 충분히 심각하지만, 그 자체로 지금 당장 적극적인 기후 대응에 우선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결정적 근거가 되는가?

앞선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들조차, 이 질문 앞에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물음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단지 “위험할 수 있으니 중요하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위험할 수 있으니 다른 문제들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말은 피할 수 없는 상대적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만약 여기서 성급하게 “기후 변화는 심각한 위기이므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결론지어버린다면—그 말은 지금 수준에선 구체적이면 이상적으로, 추상적이면 감성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 변화는 낮은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이 담론이 현실적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 또한 만만찮게, 어쩌면 더 이상하게 들린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기후 변화라는 문제의 본질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이 질문이 왜 답하기 어려운지는 두 가지 측면만 바라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번에는 "행동의 당위성"의 측면에서 다뤄보도록 하자. "행동의 무게" 측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행동주체"가 단일이라고 가정할 경우에는 아래 내용에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질문에 불편해 하는 이유 또한, "행동주체"가 여럿으로 늘어난다 해도, 아래 내용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왜, 기후 대응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전통적인 리스크 판단은, 위험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되고 그 발생 확률과 피해 규모를 정량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 접근은 피해 크기발생 확률을 곱해 기대 손실값을 산정하고, 손실이 가장 적은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현재 과학적으로 합의된 수준에서의 기후 변화 피해는 이러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평균적인 온난화로 인한 피해 추정만으로도 기후 대응의 필요성은 정량적으로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 방식은 불확실성비가역성이라는 기후 변화의 핵심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피해의 규모는 대략적으로 추정 가능할지라도, 그 발생 확률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거나 예측이 어렵고, 일단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단순한 기대값 계산만으로는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다음의 간단한 비유를 보자.
한 사람이 전 재산 400만 원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선택 1: 게임에 참여하면 확정적으로 200만 원을 잃는다.

선택 2: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1/3 확률로 400만 원 전부를 잃고, 나머지 2/3 확률로는 손실이 없다.

기대값만 따져 보면, 선택 2의 손실 기대값은 (1/3) × 400만 원 = 약 133만 원이다. 따라서 전통적 리스크 분석에 따르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쪽이 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만일 1/3 확률이 현실이 되어 전 재산을 모두 잃는다면, 그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기대값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감수하는 선택이 과연 합리적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사전 예방의 원칙’이 작동한다.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그 결과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라면 확실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예방 조치를 취하라”는 이 원칙은, 기대값 중심의 전통적 리스크 분석이 간과하는 위험의 비가역성과 감당 가능성을 고려하자는 제안이다.

기후 변화는 이런 판단이 특히 요구되는 영역이다.

기후 변화 자체는 과학적으로 확정된 사실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티핑 포인트를 넘어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결과가 매우 파괴적이고 비가역적일 수 있음은 충분히 경고받고 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기후 변화 대응은 단순한 기대값 계산을 넘어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비가역성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할 때, 기후 변화 대응은 다수의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최소한의 책임이자 회피 불가능한 필요조건이 된다. 물론 이 결론이 모든 형태의 급진적인 기후 정책을 자동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정립된 수준의 대응책,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감당 가능한 범위 내 조치는 정당화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가역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위험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우선순위란 단순한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리스크에 대한 대응의 시급성에서 비롯된다.


이대로 끝내도 될까?


지금까지의 논리는, "왜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가"에는 그 자체로 타당한 설명이 된다. 또한 "기후 변화 대응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상대적 위험 평가를 통해 충분한 행동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지금 당장, 적극적인 기후 대응에 먼저 사회적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가?"에는 아직,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아직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를 멈추게 한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장애물, 우리가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그 이유를 파헤쳐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