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이맘때면 우리는 헤어짐을 준비한다. 매년 맞이하는 헤어짐이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쌤이다. 너무도 다른 개성을 지닌 우리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2024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함께 보낸 시간들을 꺼내보며, 한명 한명을 그려보고 싶은 오늘이다.
1반쌤, 그녀는 남색이다. 1반은 보통 학년부장학급이다. 우리 학년도 그렇다. 날카로운 눈매의 그녀는 스마트하다. 그녀 덕분에 올 한해는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지휘관이 1mm 좌표를 실수해서 표시하면 뒤따르는 병사들은 산 하나를 다시 넘어야 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도 그녀 때문에 우리는 효율적으로 한해를 보냈다. 그녀는 지적인 남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한테 슬기로움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2반쌤, 그녀는 찐파랑이다. 그녀는 어리다. 나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MZ세대. 깍쟁이처럼 보이는데 조용조용 잠자리 날개처럼 본인 일을 잘 해내는 친구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일해도 잘 적응하긴 하겠지만 그녀에겐 선생이라는 직업이 천직으로 보인다. 나의 초임 시절과 비교해보면 보면 그녀는 당돌하고 담대한 편이다. 그녀는 밤톨같은 찐파랑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담대함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3반쌤, 그녀는 분홍이다. (복직 후 같이 보낸 시간은 짧지만,) 휴직후 복직을 하면 적응하느라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녀는 늘 해오던 것처럼 근무를 잘 하고 있다. 나도 그녀와 같은 시절이 분명히 있었을텐데 나는 사실 그 시절이 기억이 잘 안다. 기억이 잘 안날 만큼 정신없이, 두서없이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미친 찐분홍이었다면 그녀는 따뜻하고 예쁜 분홍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여유로움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4반쌤, 그녀는 찐노랑이다. 그녀는 인형을 닮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너무 갖고 싶었던 인형이다. 양배추 인형. 뽀끌뽀글 파마머리가 뽀인트다.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잘 밀고 있는 경상도 억양의 센언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잘 기억하는 총명하고 야물딱진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안다. 그녀는 뜨거운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는 마음에 태양의 정렬을 품은 고흐의 해바라가 같은 찐 노랑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진실한 삶을 제대로 배우는 중이다.
5반쌤, 그는 갈색이다. 50대 안경잡이 꼰대로 보이는 외모이지만 그는 운동덕분에 유연하고 유쾌하다. 그는 씨이클을 좋아한다. 슈트를 입고 자전거로 자동차 사이를 당당히 뚫고 출퇴근 하는 것을 왕왕보게 된다. 학교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자전거로 대부분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있는 애처가이다. 나무와 같은 그는 갈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에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배우는 중이다.
6반쌤, 그녀는 민트색다. 청아하고 조용하고 단아하다. 골드미스 그녀는 아들을 군대보낸 사람처럼 진중하고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의지하게 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겉과 속이 같은 한결같은 그녀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소명을 다하는 진짜 선생님이다. 차분하지만, 싱그러운 그녀는 민트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성실함을 배우고 있다.
7반쌤, 그녀는 연보라다. 여리고 여성스러운 그녀는 나와 3년째 같은 학년을 하고 있는 언니다. 관찰력이 뛰어난 그녀는 나를 꿰뚫었다. 꽁꽁싸멘 바보같은 나의 노력과 나의 열정을 그녀는 칭찬한다. 눈물이 많은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의 큰 헤어짐들을 견뎌내고 있는 그녀는 더 유연하고 단단해 질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응원한다. 그녀는 우아한 연보라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삶의 우아함을 배우고 있다.
8반쌤, 그녀는 주황이다. 발랄한 미어켓같은 그녀는 학교의 크고 작은 소식들을 잘 물어온다. 부지런한 그녀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돌사진을 핸드폰에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순수하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그녀는 쿨하면서도 온정적이다. 그녀는 온기 있는 주황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분별력을 배우고 있다.
9반쌤, 그녀는 하늘색이다.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그녀는 하강하는 재주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교사의 전문성은 학습자 수준으로 하강하는데 있는데, 그녀는 삶에서도 교육에 있어서도 하강의 참 의미를 깨닫는 중이다. 교사가 천직은 아니지만, 다이빙을 통해 그녀는 훌륭한 스승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학생을 만나든 자유로워 질 것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그녀는 하늘을 품은 하늘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자유자재의 삶을 배우고 있다.
10반쌤, 그녀는 베이지색이다. 차분한 그녀는 학년에 궂은 일을 1년 내내 도맡아 하고 있다. 11개반이나 되는 학년의 주간학습과 시간표를 매주 짜는 그녀는 세심하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교사로서 그녀는 자신의 가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쓰고 있다.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건 그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다. 그녀는 착하고 차분한 베이지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나눔을 배우고 있다.
도움반 쌤, 그는 회색이다. 특수반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는 학교에서도 어렵고 까다로운 업무를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보다 어리지만 오빠같은 그다. 다정한 새내기 아빠로, 듬직한 남편으로, 그리고 특별히 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는 몸이 한두개쯤 더 필요해 보인다. 자신의 진짜 색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흘러가야하는 그는 지금은 회색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에게 남을 위한다는 것의 참 의미를 배우고 있다.
전담쌤, 그는 초록이다. 퇴직 후 삶을 즐기고 있는 그는 매일 산을 오른다. 기타를 배우는 그는 삶의 풍류와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바쁜 후배들을 위해 늘 도움을 주기 위해 우렁각시처럼 그는 배려한다. 그래서 늘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초록빛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에게 삶의 즐거움을 배우고 있다.
또 다른 전담쌤, 그녀는 살구색이다. 큰 눈에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는 사색을 즐긴다. 아마도 그녀는 우주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나처럼 믿고 있을 듯하다. 크고 작은 시련들과 인연 모든 사건들 속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는 그녀는 밝은 살구빛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녀에게 살구싶은 의미있는 삶을 배우고 있다.
그러는 너는 무슨색이냐구요? 나는 깜장인듯. 나는 나의 동료로 부터 많은 색을 익히고 다양한 장점을 배워가는 중이라 모든 색이 섞여버린 깜장색이 되었다. 흑심 품은 연필 부인처럼 그래서 나는 쓴다. 넘어지고 까져도, 혹은 더러운 것이 묻어도 웬만해서는 잘 티가 안나는 단단한 깜장색이 된 나를 좋아해 보려고 노력중이다. 우리반 아이들도 해마다 다른 개성과 장점을 가진 선생님들과 함께 옹글차게 삶을 살아낼 역량을 지니게 될것이라 믿는다(사실 우리 나라는 대통령만 잘하면 될 것 같다.)
14가지 서로 다른 색으로 1년동안 아름다운 여정을 그려낸 우리는 크레파스다. 내년에도 그 빛을 잃지 않길 기도하며 따로 또 같이 그 빛을 발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