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정적 속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음악이 흐른다. 바로 옆에 있었던가 보다. 벨 소리도 높여두었던가 보다. 무음으로 해놓았던 핸드폰이 언제 제자리로 돌아왔던가. "헥!"하며 얼른 전화기를 켠다.
"짝꿍이가?"
언니는 필이가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먼저 말한다. 눈이 보이지 않고부터 귀가 더 발달한 것 같다. 아니면 언니가 원래부터 청각이 섬세했는지도 모른다.
"나물 쪼까 먹을래? 니 줄라꼬 싸놨는데. 맛은 먼저맨치로 맛있지는 않다. 여름 나물이라 맛이 없다. 겨울나물은 맛있는데."
아니,
벌써 필이 주려고 나물을 다 싸놨다고 하고서는 사설이 길다. 주고는 싶은데 걱정이 되는가 보다. 맛이 없을까 봐.
언니!
언니가 주시는 것은 어떤것도 맛있어요. 짜도 맛있고 싱거워도 맛있고 다 맛있어요. 언니의 사랑이 들었으니깐요.
언니네 식구들 다녀가고 남으면 달라고 한다.
"남아서 주기는! 먹기 전에 줘야지. 맛이 없으따나 쪼매 묵어봐라. 너거 아도 나물 좋아한다면서? 그래도 추석인데 가져가서 쪼매 맥이봐라. 니도 묵고."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고야 만다.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놓고 [파란수영장] 퇴고 삼매경에 빠진 필이다. 글 속에서 짝꿍 언니를 만나며 눈시울 붉히고 있는데 언니가 언제 글에서 나왔던가. 현실에 언니는 글 속에 언니보다 더 필이에게 눈물을 준다. 필이가 글로 다 표현하지 못했음이다.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고야 만다.
식용유 선물세트 들어온 걸 가지고 간다.
"내가 이거 받을라고 부른 게 아인데……. 어제도 니가 김선물을 줘가 내가 미안코 고맙고 그렇는데……. 어른이 돼갖고 내가 챙기야 되는데……."
어제 드디어 언니와 점심을 먹는다. 짝꿍 언니, 시누이 언니, 그리고 영이와 나. 시간을 맞추지 못해 겨우 날을 잡는다. 명절 앞두고 시간이 좀 그렇다면서도 이 뒤로는 더더욱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그래서다. 짝꿍 언니가 사주는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김 선물세트를 산다. 3개를 사서 모두에게 선물한다. 값이 가장 싼 것이다. 그거 하나 받고는 언니는 감동이란다. 챙겨줘서 고맙단다. 이걸 받아도 되나 미안하단다.
마트에 서서는 다른 거 하나도 안 보고 값이 가장 저렴한 걸 골랐던 필이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아니란다. 값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단다.
언니가 맛있는 밥 사주는 것은 생각도 않는다. 평생을 베풀면서 산 언니인 것인지.
언니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파란수영장에서 만나 단짝이 되어 신나게 지낼 뿐. 짧은 시간 만남으로 서로를 알기에는 언니 삶도 필이 삶도 이야기가 너무 많다. 너무 긴 세월이다.
식용유세트도 조합에서 준 거라고. 집에서 밥을 잘 안 해먹는다고. 그래서 가지고 온 거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언니는 아니란다. 미안하단다. 고맙단다.
언니!
필이가 더 고마워요. 나물 했다고 필이를 생각하다니. 필이 아들이 지난번 주신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한 말을 기억하다니. 나물을 했다고 이렇게나 챙겨주다니. 언니! 필이가, 필이가 백만 배는 더 고마워요. 이 고마움은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언니!…….
"요게 나물이다."
언니는 동그랗게 생긴 찬통 뚜껑을 연다. 그곳에는 색깔이 다른 나물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줄을 맞춰 자신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느냐며 뽐내고 있다.
고사리, 죽순, 박나물, 콩나물, 토란……. 언니가 말해준 나물을 이 정도만 기억한다. 한두 개가 더 있는데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다 씻고 말리고 삶았다. ㅁㅈ(요양보호사 언니)가 와가 간하고 볶았다. 먹을만 할 기다. 이기는 추어탕이다. 자연산 미꾸라지로 한 거다. 이거는 내가 해가 간이 좀 짭다. 물 쪼매 더 넣고 팔팔 끓여가 묵으면 될 기다. 여 들어간 게 다 몸에 좋은 거다. 몸에 좋다 생각하고 맛이 없으나따나 쪼매 묵어봐라."
나물보다 더 큰 통에 자연산 미꾸라지로 만든 몸에 좋은 짝꿍 언니표 추어탕이 들었다.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나물 하나 해먹지 않은지 몇 해다. 새삼 울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필이가 챙기지 못하는 명절. 짝꿍 언니가 챙겨준다. 엄마 그립다 눈물이나 흘릴 줄 알지 명절 음식 하나 챙기지 않는 필이를 짝꿍 언니가 챙겨준다.
점심에 오랜만에 엄마표 돼지갈비로 배부르게 밥 먹었다는 아들은 저녁은 가볍게 먹을 거란다. 이런 아이가 대접에 밥을 조금만 달라고 하더니 나물을 넣고 참기름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엄마, 한 번 먹어봐. 맛있다. 음~~!"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며 얼마나 맛있는지 자랑한다. 꺼지지 않는 배에 저녁을 먹지 않으려던 엄마도 아이가 비빈 나물밥으로 숟가락을 옮긴다.
한입!
음~~
아이 말 대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나물인데 엄마는 여기서 할 줄 아는 나물이라곤 콩나물밖에 없다.
"여름 나물은 맛이 없다. 겨울 나물이 맛있다. 내 겨울에 나물 맛있게 해서 주께."
언니는 잘 도착했냐며 전화까지 한다. 다음에도 나물을 해서 줄 거라고 한다. 더 맛있게 해서 줄 거란다. 필이는 또다시 울고 만다.
"아들아, 엄마 한 번 꼭 안아줄래? 엄마 어디서 이래 사랑받을끼고. 엄마가 뭐 했다고 이래……."
아이가 꼭 안아준다. 엄마가 잘 살아와서 그런 거라며 꼭 안아준다.
나물은 짝꿍 언니가 주고 사랑은 필이가 다 받는다. 짝꿍 언니에게도 아들에게도!
이번 추석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석이 되어 버린다. 울 아이에게도 필이에게도!
글을 쓰는 지금도 필이 눈에서는 물방울이 맺히다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필이는 또다시 웃으면서 우는 이모티콘이 된다.
감사하다.
모든 것에 감사함이 울리는 추석 아침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