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되기 전 나를 구한 것은

by 필이

"도둑이다. 도둑! 이대로 가면 넌 도둑이 되는 거야. 도둑!"


토요일,


부산을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탄다. 시골이다보니 인근 소도시에 정차해서 20분 후 출발한다. 내렸다가 다시 타기로 한다. 배가 고프다. 일찍 나선다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따끈한 어묵이 나를 유혹한다. 어묵 하나, 물떡 하나. 2000원어치를 먹는다.


아직 이곳은 카드가 되지 않는다. 소도시로 제법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인데도 이곳은 아직도 옛 방식을 고수한다. 단 하나 변한 게 있다면 송금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금만 고집하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2,000원을 송금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돌아오는 길도 소도시에 머물다 가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40분이나 정차를 한다고 한다. 병원 시간이 늦어져 점심도 못 먹었는데 잘됐다 싶어 얼른 내린다. 아침에 먹은 어묵 국물이 생각난다. 버스 터미널이라 대충 국물을 낸 곳과는 달리 진한 육수맛이 일품이다. 이곳에서 국수를 먹는다.


"국수값 오천 원 입금하면 되지요?"


아침에 송금했던 것이 있으니 자신있게 송금한다. 이상하다. 아침에 송금을 했으니 최근 입금계좌에 나와야 한다.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입금내역이 없다. 부산에서 튀김이랑 떡볶이 먹은 3,300원 입금 내역은 있는데 아침에 먹은 2,000원 입금 내역이 그 어디에도 없다.


순간 얼음이 된다. 전깃불이 찌릿하며 뒷목을 타고 오른다. 머리끝까지 올라와 머리카락이 다 서버린다.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다.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봐도 없다. 믿음 수 없는 현실에 어찌해야 할바를 모른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주인 할머니가 이상한 듯 쳐다보지 않은가. 아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모두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건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이다.


'이대로 가자. 이대로 가면 아무도 모른다. 괜히 말했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거야. 이대로 이대로 일어나 가면 된다. 가자. 이대로 모른척하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그냥 가면 된다. 그냥 가자.'


"아주머니, 제가 아침에 오뎅 하나랑, 물떡 하나를 먹고 이천 원을 입금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입금 내역이 없어요. 이번 설에 시스템 정비해서 뭐가 변해가지고 비밀번호가 몇 번을 다시 넣어야 되더라고요. 확인까지 누른다고 한 것 같은데 마지막에 뭔가 하나 놓쳤나 봐요. 죄송합니다."


구구절절 버벅거리며 설명한다. 사실이다. 이번 설에 며칠 은행 앱 사용이 안되더니 이후 비밀번호를 예전보다 더 많이 인증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6개월 이내에 거래 내역이 없는 곳은 마지막에 한 번 더 확인 절차를 거친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 같다. 설명하는 목소리 끝이 다 떨릴 정도로 울기 일보 직전이 된다. 아니 울먹인다. 원치 않는 도둑이 되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하이고 참, 젊은 사람이 마음이 참 곱네. 그거 말 안하고 가면 아무도 모를 건데. 마음이 참 곱네. 고와."


"지난 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명이서 비빔밥을 먹고는 그냥 갔다가 그 다음 날에 와서 돈을 주고 안 갔나. 서로 돈을 준 줄 알았다가 아무도 돈을 안 낸 거 알고 놀래가지고 쫓아왔단다. 하하하"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까지 나더러 착한 사람이란다. 세상에나. 도둑에서 고운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CCTV를 달아놓아도 아이까지 같이 와서도 밥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봤다. 이름하여 먹튀! 예전에 즐거보던 '사건반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런 사람들이 날마다 제보가 될 정도로 많은 걸 봤다. 이곳에는 CCTV도 없다. 엄마인 듯한 할머니와 딸인 듯한 조금 젊은 할머니 둘이서 하는 가게다. 입금했다고 해도 제대로 확인도 안 한다. 사람을 믿고 한다. 그런 믿음에 재를 뿌릴 뻔 했다.


도둑이 되는 순간에 나를 구한 것은 누구일까? 나 자신이다. 마음에 목소리가 혼을 낸다. 이대로 가면 도둑이 된다고. 그냥 간다는 마음을 먹은 것조차 이미 도둑이라고 혼을 낸다. 따끔하게 혼나고 나니 정신이 든다. 다행이다. 실수할 수는 있지만 알고도 그냥 갔다면 난 도둑이 되는 것이다. 다행이다. 도둑이 되기 전에 구원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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