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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May 30. 2024

사랑은... 자해다...

덕질이 고통스러운 세 가지 이유

#덕질

 ‘덕질’ 일대기를 정리해 보자면 첫 시작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으르렁>을 부르던 엑소의 영향력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달콤한 케이팝(K-POP)을 처음 맛 본 이후, 기획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케이팝 ‘유목민 생활’을 즐겼다. 대학에서 나는 ‘말하는 감자’에 불과했지만, Mnet ‘프로듀스 101’ 덕분에 ‘국민 프로듀서’라는 직함도 생겨 봤다. 갑자기 힙합에 빠진 적도 있다. Mnet ‘고등 래퍼’를 보며 한참 어린 친구들에게 주책 맞은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곤 했다. 또 최근에는 인디 밴드 씬에 빠지게 됐다. 아무래도 그동안 ‘엠넷의 노예’ 생활에 지쳤던 모양이다. 


 덕질을 논하는데 트위터를 빼놓을 수 없다. 지구촌 각지의 다양한 덕후들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디지털 공간이다. 그곳의 ‘밈’들은 각 필드에서 터져 나오는 이슈들이 생생하게 반영되고 빠르게 확산된다. 그 중 “사랑은 자해다” 밈을 소개하고 싶다. 과격한 표현 때문에 놀랄 수 있지만 덕질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장이다. 그동안 무의식 속에 숨겨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문장으로 내뱉은 것 같달까. 덕질에서 사랑은 스스로 고통받는 행위이다. 왜 그럴까? 밈 활용 사례와 함께 세 가지 의미로 정리해보겠다.


 첫째, 뇌의 이중 표현. ‘케이팝 번역기’에 따르면 “죽고 싶다"는 곧 “사는 맛 난다”를 의미한다. 귀여운 아기를 볼 때 “깨물어 주고 싶다"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는 과학적 사실로 밝혀졌으며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이라 일컬어진다. 인간의 뇌는 감정의 과부하로 해를 입는 것을 피하기 위해, 특정 감정이 격해지면 그와 상반되는 감정을 함께 내보낸다. 너무 좋아서 정신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격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레전드 화보, 혹은 새로 발매된 노래가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 팬들은 전봇대를 뽑고 싶고, 지구를 부수고 싶고, 우주까지 폭파시키고 싶다. 무시무시한 공격성을 참아내야 하는 건 크나큰 고통이다.


 둘째, 질투. 열애설이 났거나, 이성과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이 화두 될 때 이 밈을 사용한다. 최근 덕질 문화는 연예인에게 ‘유사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그래도 가슴 한 켠이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질투하는 팬들을 소위 ‘빠순이’ 혹은 ‘빠돌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팬 문화는 과거 디지털 과도기 시절과 달리 성숙해졌으며, 변화하는 문화 산업구조와 함께 점점 발전하고 있다. 연예인이 썸을 타든 연애를 하든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자연스레 쓰라린 감정이 생겨도 행여 못난 팬으로 비춰 질까봐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속으로 견뎌내며 “사랑은 자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할 뿐이다.


 셋째, 불만. 지금까지 다양한 덕질을 해왔지만, 불만이 없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요즘도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이 적으면 적어서 화가 나고, 많으면 많아서 화가 난다. 일본 세이케이 대학교 문학부 교수 이토 마사아키의 <플레이밍 사회>에 따르면, 강한 공감은 때때로 강한 반감을 형성할 수 있다. 상대와의 일체감이 강해지면 자연스레 기대도 높아진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언동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쉽게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깊어질수록 불만이 많아진다. 하지만 덕후들은 참을 수 밖에 없다. 사랑하니까 참는다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그들의 불만이 반영되어 해결되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덕후들의 영향력은 어느 소비자 시장보다 강하지만 그만큼 인정받지 못한다. “사랑은 자해다”라는 밈의 과격한 표현은 지적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답답한 심정 또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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