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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an 02. 2021

영화 리뷰_<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무모함의 틀을 깨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Swimming against the stream'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예전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내가 잊어버리지 않게끔 써 둔 문장이다. 가만히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모든 무리들이 한 방향으로 갈 때 유유히 그 방향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헤엄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 이미지가 드러난다. 나는 그 물고기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내가 살아낼 앞으로의 인생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서 한 치의 무모함도 용납할 수 없었고, 더더욱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덕분에 내 귀는 종잇장처럼 얇아졌고, 아직도 큰 결단을 내리는 게 두렵다. 



요즘 들어 '선택'이라는 행위에 관한 텍스트를 많이 접하게 된다.  최근에 본 텍스트는,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선택은 없다고, 그 선택이 결정적이거나 사소했다는 평가는, 결국 사후적인 변명일 뿐이며 우리의 인생은 그 변명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백수린 작가의 텍스트였다. 그렇다면 인생에 올바른 선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정답이 없는 인생이 마치 한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설책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젊은 세대들이 없는 답을 찾기 위해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을까. 그들이 살고 있는 이 능력주의 사회의 허점은, 그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학기 수강했던 최성수 교수님의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서 한 논문을 해제를 맡아서 발표한 적이 있다. 논문의 요지는, 채용 과정에서 남녀 간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면접관들의 편견을 조장한다는 점이었다. 불평등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완벽하게 조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다른 편견을 인지하게 한다. 애초에 나를 재단할 완벽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등바등 나를 구겨 넣어 맞추려는 기준은, 결국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 사회적 기준이자 그저 내가 허비하는 시간들의 정당화일 뿐이다. 



매일 마지막처럼 살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송도 기숙사에서 짐을 싸 나오면서, (그때 나는 시험이 남들보다 늦게 마친 편이었기 때문에 기숙사 전체 건물이 고요했다.) 송도를 떠나기가 아쉬워서 든 생각인 것 같다.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의 주인공도 자신이 암에 걸린 줄 알고 마지막 크리스마스 연휴를 무모할 만큼 행복하게 보낸다. 나는, 그리고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없이는 무모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반성했고,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계산, 계획, 확률의 잣대에 내 청춘의 시간을 억지로 욱여넣은 것 같아서, 열심히 사는 느낌은 있었지만 정작 안일하게 살고 있었던 것 같아서. 긍정성과 적응력이 나의 장점이라고 얼버무려놓았던 나의 자기소개서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영화 속에서 호재가 아르코에게 받은 메일이 호재의 포기를 부끄럽게 한 것처럼 말이다. 


 영상을 창작할 수 있다는 재능이 결국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게 했다. 철저히 경제적인 교환 (재능과 숙식의 교환)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사람과 추억을 덤으로 얻었다. 이 '덤'은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낙담시키는 개념이다. 도저히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무거운 생각도 들었다. 지금 코로나가 아니라면, 내게 창작의 재능이 있다면, 내가 (아무데서나 숙식을 해결해도 안전한) 남자였다면,  내게 이상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열정과 동기와 똘끼가 있다면. 수많은 가정들이 그들을 더욱 부럽게, 부럽게만 했다. 내게는 결코 없을 여행이겠지만, 삶은 어차피 여행이기에 그들의 여행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팀원을 대견해할 수 있는 마음, 포기와 용기 사이의 적절함을 찾을 수 있는 리더십, 아르코라는 밴드의 음악을 사랑할 수 있는 탁월한 취향. 적어도 이런 것들은 그들을 감히 닮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는 우리를 순식간에 목적지로 데려가는 대신 마음속엔 아무런 추억도 남기지 않는다." 나의 고민은 언제나 속도와 관련된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빠른 비행기를 타고 더 나은 목적지로 갈 수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며, 계속 여정을 이어가려는 도전의식이라는 것을 영화는 2시간으로 편집된 추억과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말해주고 있다.  누구보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잉여들에게, 이 영화가 개봉한 지 7년 뒤에나 찾아본 한 대학생이 그들을 열렬히 부러워하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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