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잠보다 소중한 건
통잠을 자본적이 대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통잠’이라는 말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임신 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무거워지는 배가 불편해 뒤척이기도 했고, 밤낮 없는 태동 때문에 수시로 잠에서 깼다. 그렇게 수많은 밤을 뒤척이고 깰 때마다 든 생각은 ‘엄마 되는 일이 쉽지 않구나.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면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니 정말로 잠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았다. 천국이라는 조리원에서도 유축 때문에 세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통잠은 나에게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통잠 자는 비결, 통잠 자게 하는 아이템. 온통 내 신경은 아이의 통잠에 맞춰져있었다.
통잠 때문에 고통 받던 어느 날 나보다 먼저 출산한 친구의 연락이 왔다.
“아이 잘 키우고 있어?” 라는 물음에
“대체 통잠은 언제 자는 거야? 통잠 자는 아이가 정말 있기는 한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통잠 자는 아이 많지. 근데 못 자는 아이가 더 많아.”
친구의 대답에 나는 뭔가 머리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아…. 통잠 자는 아이도 못 자는 아이도 많은 게 현실이구나. 그동안 맘카페나 블로그, 어플의 공개일기에서 본 통잠 자는 아이의 이야기는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이었구나.’ 통잠 자는 아이는 분명 있다. 다만 내 아이가 아닐 뿐. 나에게 통잠은 어쩌다 한 번 얻어걸린, 혹은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자 언젠가 다가올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왜 우리 아이는 도통 잠을 못 자는 걸까? 일명 ‘통잠을 부르는 육아템’이 없어서 그런가? 내가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잘 못해줘서 그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나에게 친구의 대답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통잠 자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 아이만 통잠을 못 잔다는 좌절감과 통잠의 비법을 배우면 곧 우리 아이도 통잠을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이 두 가지였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의 글을 발견하면 안도와 동시에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통잠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집착하면 할수록 나만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통잠은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진정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함이 아니었던가! 좀 더 쉬운 육아, 좀 더 편한 육아를 위해 아이의 통잠을 바라고 있던 것이다.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인 나는 왜 못 자냐고 슬퍼하고 자책한 셈이다. 그때부터 나는 통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 통잠을 못 자는 아이구나. 내가 조금 힘들지만 더 기다려줘야지.’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나의 욕심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내려놓고 통잠의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나에게 아이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던 것처럼. 통잠보다 소중한 건 바로 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