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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Apr 30. 2022

통잠 아이템 그런 거 없습니다

아이템보다 더 중요한 건

백일 이후 아이는 한 단계 진화했다. 몇 날 며칠을 뒤집으려 활 자세를 하며 낑낑거리더니 드디어 109일에 뒤집었다. 뒤집기를 시작으로 앉기 지옥, 기기 지옥, 서기 지옥 등 각종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그 첫 번째 관문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낑낑거리며 못 뒤집어 짜증을 냈다. 그러다 몸이 반쯤 넘어가더니 몸에 걸린 팔을 빼지 못해 짜증. 팔을 빼고 완전한 뒤집기에 성공해서는 오래 버틸 수 없어 짜증. 되집기를 못하니 또 다시 짜증. 짜증, 짜증, 짜증. 짜증을 내면서도 계속 뒤집었다.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 뒤집어 바라본 세상이 무척이나 신기했겠지. 자기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아이는 뽐내기라도 하듯 눕히면 뒤집고 또 뒤집었다. 기저귀를 가는 것이 어려워졌고 다시 눕혀주는 것도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밤이었다. 잠결에 뒤집기를 시도하다 안 되니 자꾸만 잠에서 깼다. 정말이지 한 두 시간마다 깨는 인간시계가 따로 없었다. 신생아 시절 배꼽시계보다 더한 시계였다. 그중에서도 정점은 새벽 3시 이후. 이때부터는 한 시간 간격, 짧게는 30분마다 깨서 우리를 경악케 했다. 통잠은 고사하고 제발 두 시간만이라도 푹 자고 싶었다. 성장에 대한 기쁨은 어느새 공포로 변해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뒤집기 지옥,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했어요.’ 뒤집기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보통은 되집기를 해야 이 지옥에서 끝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되집기를 언제할지 모르니 그저 감내하는 수밖에. 하아.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고 하지 않던가! 육아선배들의 뒤집기 방지를 위한 다양한 묘책이 있었다.


아이 양 옆에 베개 놓기, 수건을 돌돌 말아 베개 커버에 넣고 만든 뒤집기 방지쿠션, 1.5리터 생수 두 개를 수건에 감싼 뒤집기 방지쿠션, 두꺼운 바디 타월을 돌돌 말아 만든 죽부인. 간단하고도 집에 있는 것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신박한 아이디어였다.


먼저 안 쓰는 베개를 아이 양 옆에 놓아 보았다. 하지만 실패. 솜털처럼 가벼운 베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수건을 말아 만든 뒤집기 방지쿠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1.5리터 생수로 더 무거워진 뒤집기 방지쿠션을 만든다면? 베개보다 무거우니 뒤집지 못하겠지! 한 이틀간은 뒤집지 못했지만 결국 실패. 뒤집고야 말겠다는 아이의 의지가 이기고 말았다. 괜히 의지만 더 불태운 셈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죽부인을 만들어 다리 사이에 넣어주어 옆으로 잘 수 있도록 해보았다. 하지만 실패. 다리가 짧아 죽부인은 자꾸만 빠져나왔고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는 아이의 화만 더 돋우었다. 이렇게 나의 노력과 시간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육아템은 아이마다 다르다더니 우리 아이에게 전혀 맞지 않는 아이템임을 스스로 확인한 격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며 여러 발단단계를 거칠 텐데 그때마다 아이템을 바꿔야하나? 그렇다면 수도 없이 많은 아이템이 있어야 할 텐데…. 아이가 자다가 뒤집어도, 앉아도, 기어 다녀도, 일어서도 잘 자게 해주는 아이템은 없는 걸까? 왜 못하게 막으려고만 할까? 아이의 성장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 아이가 뒤집기를 해도, 자다가 앉아도 다시 잘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 지켜보다 안 되면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날 저녁 통잠 아이템으로부터 이별을 선언했다. 무조건 뒤집기를 방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아이는 더 자주 잠에서 깼다. 하지만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코를 박아 숨을 못 쉬는 위험한 상황이 오면 도와주었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기다려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자기에게 맞는 편한 자세를 찾아 자기 시작했다. 스스로 뒤집어서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서 뒤집기를 해낸 것처럼 말이다. 똑바로 누워서 잘 때보다 엎드려서 더 잘 잤다. 엎드려 자고 싶은데 자꾸 똑바로 눕히니 아이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아이의 잠을 방해한 셈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통잠 아이템은 구입하지 않는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구입하지만 단지 통잠을 위한 아이템은 찾지도 사지도 않는다. 잡고 일어서기를 시작한 지금도 아이가 스스로 내려와 다시 누울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본다. 최고의 통잠 아이템은 묵묵한 기다림, 열렬한 응원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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