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사박, 내 발걸음 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
그 소리가 정확히 어떤지 아는 사람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가을의 서늘함 사이 속에서 그 낙엽 위를 걸으며 살아가고, 귓속으로 들려오는 낙엽의 사그락 소리를 알고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소리를 일상에서 흘러가는 일로 치부하는 건, 계절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의 평범한 생활 속에 얼마나 소중한 한자락의 기억이 되는지 그만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어떤 이는 학교에서
다른 누군가는 직장에서,
혹은 심지어 집에서 조차도.
우린 바쁜 삶을 이어나가며 살아가고 있기에.
잠깐의 여유를 부려 나의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참 그렇다.
내 생각엔 코로나 때부터였나?
그 전 부터였나?
사실 시기가 뭐가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언제부턴가 자기계발, 자기관리, 생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개인의 사적인 시간을 무언가의 결과를 창출하지 않는 쪽으로 쓰면 소모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음...
사실, 그건 나였다.
스물의 중반 쯤.
대학 생활을 하며 대학 강의를 듣고 아르바이트도 하나론 모자라 두개를 하고, 교육봉사도 하고 싶어 평생교육을 주관 하는 봉사단체 활동도 한대다가, 교내에서 진행하는 외국인 교환학생을 위한 튜터 튜티 활동도 했었고, 나름의 삶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 블로그도 꾸준히 썼다.
그래도 불안했다.
이 바쁜 세상 속에서 내가 조금만 무언갈 안하고 있어도 도태될 것 같았다.
그 시기의 나는 나를 몰아치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나 더, 아니 이것도 더.
지금 생각해보니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촉박하여 한 마리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는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번아웃을 겪기엔 충분한 것 같다.
한동안 누워만 있기도 했다.
지쳐버린 못난 딸을 둔 엄마는 왜이러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안달복달 애원도 하고, 울기도 하셨다.
참 지나고 보면 사랑하는 우리 엄마, 좋게 말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해 예민한 성향의 나 때문에 맘고생 많이 하셨다.
뭐, 결과적으로는 휴학을 하고 여유라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솔직하게는 그 당시의 기억이 끊어지는 편린처럼 나서,
나의 건강한 삶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덕으로 바뀐건지 아니면, 나 스스로 그 알을 깨고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나는 나의 삶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별 거 아니었다.
그냥 날이 좋으면 산책도 하고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대학생활을 다시 준비하며
조금 지친다 싶으면 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펴 할걸 하기도 하고 책도 읽었다.
그 때 느꼈다. 지금의 이 순간, 이 계절,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중 일부라도 느끼며 살아야 사람의 삶은 피폐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열심히 살아가야하고, 이 바쁜 세상에 내 한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적인 여유가 내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이 계절이 흘러감을 잠깐의 짬을 내서 체감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삶에 한점의 쉼표가 되어주지 않겠냐는 것.
그래, 마치 열심히 - 열심히가 아니더라도 힘들게 혹은 하루하루를 견디며 - 평일을 살아온 우리가 주말에 잠깐 거리를 나와 떨어진 낙엽을 두 발로 밟아보며 눈으로 단풍을 쫒듯이 말이다.
계절이란 참 신기하다.
계절의 내음, 계절이 가지는 촉감 일종의 계절의 질감, 한 공간을 구성하는 계절의 아우라.
그런 걸 느끼다보면 참 내 아등바등의 삶이 다 부질없다고 느껴지면서도 힘이 난다.
그러니 우리, 열심히 살아가자고 되내이는 우리.
오늘, 지금. 잠깐 점심을 먹고 햇살이 쨍쨍하지만 폐에 가득차는 찬공기를 쐬며 낙엽을 밟아보며 산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삶에는 열심히 살아간 결과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걸 살아가는 우리의 과정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