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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Dec 09. 2022

현대적 공론장으로서의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 오랜만이죠?

 클럽하우스는 2020년 4월에 미국에서 출시된 오디오 기반 SNS 플랫폼이다. 기존에 가입한 사용자들에게 초대나 승인을 받아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사용자는 모두 갖가지 주제의 토론 방을 개설할 수 있으며, 토론 방을 운영하는 사용자는 ‘모더레이터’라 불리우며 토론 방에 참여한 ‘리스너’들이 손을 들면 발언을 할 수 있는 ‘스피커’가 되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주제에 따라 스피커들의 발언을 이끌거나 제재를 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클럽하우스가 18세기 초 영국에서 성행한 ‘커피 하우스’와 유사한 지점이 많으며, 클럽하우스가 하버마스가 제안한 ‘공론장’ 개념에 따라 현대의 디지털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고에서 클럽하우스를 직접 사용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클럽하우스가 현 시대의 온라인 공중대화에서 하버마스가 제안한 공론장으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분석해 볼 것이다. 더 나아가 클럽하우스가 더욱 건강한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볼 것이다. 


 클럽하우스가 한국에도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서 3달여간 직접 경험을 해 보았다.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있어 주로 매 주 한 번씩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관련 토론 방에 참여했다. 모더레이터들은 매 주 토론 주제와 시간대를 지정해 토론 방을 운영하였으며, 다양한 직업적 특색을 가진 미디어아트 전문가들이 스피커가 되어 차례대로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주제와 관련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리스너로 참여한 사용자들도 손을 들면 누구든지 토론에 참여 가능했으며, 의견 제시 뿐만 아니라 다른 스피커들에게 질문도 가능했다. 또한 필자가 속한 융합콘텐츠학과 모임 방이 개설된 적도 있다.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는 학생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먼저 참여자들을 모집하여 저학년 학생들이 고학년 학생들에게 전공 과목, 커리큘럼, 복수전공, 진로 등 학과 전반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목적 없는 모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방에 지인이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어갔다가, 새로운 지인을 사귀게 되어 계속해서 연락을 지속하게 되기도 했다. 토론 방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화의 주제를 정해두지 않고 잡담 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으며, 서로의 목소리가 익숙해지자 ‘목적 없는 모임’방은 이후에도 여러 번 열렸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타 SNS에서 친구를 맺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인생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방에서는 스피커들이 차례대로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다. 스피커는 10명 안팎이었으며, 리스너들은 스피커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자유롭게 손을 들어 스피커로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맞팔방’도 자주 보였다. 참여자 모두 음소거를 한 뒤, 사용자의 프로필에 게시된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친구를 맺는 방식이었다. 모더레이터는 모든 리스너들을 스피커로 지정해주었으며, 스피커로 지정된 사용자들은 모두 서로 인스타그램 친구로 추가해야 하는 그 방만의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성대모사 방’도 큰 인기였다. 사용자들은 프로필을 자신이 성대모사 하는 대상의 사진으로 바꾸고, 스피커들은 서로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역할놀이를 하는 등 일종의 ‘오락’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침묵의 방도 개설되어, 많은 스피커들과 리스너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클럽하우스에서 토론 방을 개설하여 활동하는 목적을 항목별로 분류해보았다. 친목, 네트워킹 및 정보 공유, 관심사 공유, 오락 이 네 가지가 그것이다. 먼저 클럽하우스에서 사용자들은 보이스 기반 SNS 플랫폼이라는 장점을 살려 지인들과 친밀한 소통을 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지인들을 만들어 간다. 주로 사진이나 글로 소통하는 여타 SNS와 다르게, 직접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클럽하우스의 플랫폼적 특성 때문에 친목의 목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방들은 전문가들의 네트워킹 공간이자 주제에 따른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각자 자신의 전문성에 의거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이 활성화 되었고, 한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거나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는 등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세 번째로, 사용자들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토론방들도 많이 개설되었다. 시, 영화, 음악, 주식, 반려동물, 연애 등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며 사용자들간의 유대감은 깊어졌다. 마지막으로, 오락을 목적으로 개설된 방들은 한 편의 사용자 참여형 라디오 예능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이러한 필자의 분류는 하버마스가 제시한 ‘유럽 공론장들의 3가지 제도적 특징’ 분류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 제도적 특징은 ‘신분 불문’, 공통 관심사 영역’, 그리고 ‘포괄성’에 의거한다. 먼저 신분 불문에 관해서는 필자의 4가지 분류가 모두 통한다. 사용자들은 대개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예쁜 반말’이라 불리우는 격식 없는 말투를 사용하였으며, 모더레이터가 이를 토론방 제목에 일종의 토론 규칙으로 명시해 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자신의 프로필에 자유롭게 자신에 대한 소개와 사회적 지위, 관심사 등을 표기할 수 있었고, 이를 인지한 다른 사용자들은 토론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이를 반영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신분 불문’이라는 유럽 공론장의 제도적 특징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공통 관심사 영역’이다. 특정 영역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가 큰 권위를 차지하고 있던 유럽의 상황과는 달리, 커피 하우스에는 이러한 공적인 주제 또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사적인 공중’이 있었다. 클럽하우스도 마찬가지로, 토론 주제에 있어서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진행하는 사적인 공중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 주제에 있어서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포괄성’에 대한 내용이다. 18세기 유럽의 커피 하우스에서는 글을 읽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장을 열어두었다. 클럽하우스 또한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특정 토론방에 들어가 리스너 혹은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클럽하우스 서비스가 IOS 사용자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와 같은 타 운영체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접근 기회조차 없다는 점에서, 문맹이었던 도시민들은 참여할 수 없었고 여성은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던 커피하우스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클럽하우스의 ‘오락’적 측면은, 하버마스가 제안한 공론장으로서의 커피하우스의 모습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주제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가 아닌, 오락과 여흥을 즐기는 자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가 현대 코로나 시국과 같은 언택트 시대에서 현대적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빠른 기간 내에 호응을 잃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밀레니얼 세대와 중년층이 함께하는 토론방에서는 주로 30~50대의 주도로 토론이 이어졌다. ‘반말’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암묵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발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클럽하우스 측에서는 청소년은 사용이 불가한 어플리케이션이라고 명시해 두었지만 엄격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으며, SNS 주 사용자층인 Z세대 사용자들은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자유로운 발화를 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클럽하우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용자로부터 초대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유럽의 공론장이 가진 비폐쇄성과는 상반되는, 클럽하우스만의 폐쇄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적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클럽하우스는 다음 사항을 보완한다면 온라인 공중 대화의 매개체로서 그 기능을 더욱 더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토론을 평등하고 개방적으로 이끄는 모더레이터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다. 토론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용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며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모더레이터가 토론 방을 열 때, 그리고 토론을 진행할 때 이를 염두에 두고 스피커들의 토론을 이끈다면, 더욱 건강한 공론장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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