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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Dec 02. 2023

미운 말이여 돌아가라.. you too!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겨우 여섯 살이었던 막내에게 배운 말이 있다.


당시 아이가 천천히 적응할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미 시작된 학기로 중간에 들어갈 유치원 자리도 찾기 어려웠고, 영어도 중국어도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 입학을 허락하는 로컬 유치원이 잘 없었다. 여러 곳을 다녀봐도 아이가 들어갈 유치원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유치원에만 가면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금방 적응해 줄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다. 싱가포르는 초등학교 졸업시험인 PSLE로 인해 초등학교 입학부터가 중요하다는 걸 전혀 몰랐었다. 그런 이유로 이곳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인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이미 영어와 중국어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그걸 몰랐던 거다.


지금 그 순간을 뒤돌아보면.. 얼마나 큰 실수였나 후회가 된다. 이 나라 초등학교 1학년의 영어와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초등학교 들어가 경험해 보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아이가 비록 몇 시간이지만 홀로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갔을지.. 

유치원 선생님도 그러셨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막내가 외국인이라 못 알아듣는다고 배려해 주길 기대하긴 어렵다고..


어느 날인가 막내 유치원 반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별로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거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그럴 때 넌 어떻게 하니?"

"그럴 때 그냥 이렇게 외쳐요.. you too!"

(You too는 원래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긍정적인 호응으로 사용되지만.. 막내는 '너도 그래!'란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는 표현도 몰랐던 막내의  대답에, 그런 표현은 어떻게 알았냐며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을 했구나 싶어서.. 울지 않고 당당히 버텨준 게 그저 고맙기만 했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나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미운 말을 쏟아낸다면..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대처했었나 되돌아봤다. 소심했던 나는 상처받아 매번 울곤 했었다. 당당히 맞서며 아니라고 싸워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단어!

 유년 시절에 유행했었던 표현 중에 <반사>란 표현이 있었다. 나한테 오는 미운 말들이 반사되어 너에게 다시 되돌아갈 테니.. 내 입을 험한 말로 채우지 않고, 상처받지 않았으니 타격감 제로인 상태로 되돌려준다는 식..

나중에 이 단어를 알고 나선 최대한 얄밉게 "반사~~ "를 외치면서 상처받지 않았다 보여주려 애썼던 거 같다.


막내에게 'you too'는 '반사' 같은 의미였으리라..

알려준 적 없지만 아이는 스스로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잘했다고.. 그렇게 남이 하는 미운말에 상처받지 말고 당당하게 외치라고 응원했었다.




시간이 제법 흘러 이젠  적응했지 싶었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과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할 기회가 생겼다.

한 아이가 한국인인 줄 뻔히 알면서 모르는척하며 미운 말로 속을 긁는 일이 있었다고..

여전히 우린 경계선 밖에 서있는 외국인인지라 은근한 말들로 상처받으라 던지는 미운 말들.. 신경 쓰고 싶진 않지만 아프라고 던지는 미운 말들 앞에 멀쩡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얘들아.. 우리에겐 막내에게 배운 마법의 단어가 있어."

그들이 아프라고, 상처받으라고 던지는 미운 말들을 받아 들고 아파하지 말고.. 가볍게 돌려줘 버리자!

"You too!~~" 하면서..

숫기없는 아이들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먼저 던져오는 미운 말을 받아 들고 아파하기엔 너무 억울하니..

"원래 네가 던진 말 고이 너에게로~~ "하고 돌려줘 버리자..

게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조금은 덜 상처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외쳐본다..


"미운 말이여 돌아가라! You too! "..


완벽할 수 없기에 매 순간 부딪히고 실패하고 경험하며 버터야하는 하루하루..

그냥 부딪히기도 바쁘고 아픈데..

다른 이가 던지는 아픈 말까지 받아 들고 아파하기엔 너무 속상한 일이다.

잘되라고 던져주는 채찍이 아니라, 아프라고 넘어지라고 던지는 말에는 아파할 이유가 없다. 아프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조금은 더 씩씩할 수 있기를..



해의 마지막 달..

무수한 어려움에 걸려 넘어졌지만.. 어찌어찌 또 버텨내며 털고 일어나 달려오다 잠시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하며..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가 이 말이었나 보다..

잘 해낸 결과도.. 실패한 경험도.. 열심히 달려오느라 애썼다고..

그 걸음걸음에 행여 상처받은 순간이 있었다면 들고 가지 말고 던져줘 버리자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도 중요한 순간이 많지만..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살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보다 더 잘할 순 없었을 거라고..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다..



따뜻하고 건강한 12월 되시길..






(사진 출처 ; photo by Sincerely Medi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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