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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Dec 09. 2023

나는 자는 걸 제일 잘해요!

(당신의 밤은 평안하신지요..)

12월..

한 해의 마지막에 이르러 올해 제일 잘한 일이 뭔가 가만가만 되돌아봤다. 갈수록 짧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뭔가 바쁘게 쫓아다니며 지내왔는데도 문득 1년이란 이 긴 시간 동안 뭘 했나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후회와 아쉬움이 더 많이 비집고 올라온다.


그래도 올해 이건 정말 잘한 거야 싶은 일은.. 다시 영어 교실을 찾아간 일 같다. 코로나 이전에 열심히 다니다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그만뒀었는데.. 영어도 배우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 다시 찾아간 영어교실..

이미 경험해 봐서 익숙한 곳임에도 새로운 시작과 도전은 늘 어려운 일인 거 같다.


잔뜩 긴장해 찾아갔는데 왜 걱정하고 망설였나 싶을 만큼.. 늘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귀 기울여 이야기 들어주시는 우리네 할머니를 닮은 선생님과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의 대화는 매번 즐거웠다. 그리고 무료 수업임에도 참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또 열심히 공부하며 배우려 노력하는 그들의 수업태도는 내게도 좋은 자극이 되어 주었다.


조용히 웃는 인상의 우리 할머니 선생님은 귀여운 매력이 있는 분이셨다. 서로를 알면 더 빨리 가까워진다며 학기 초 모두에게 질문지를 돌리셨다. 자녀가 몇 명인지.. 자녀의 나이대는 어떻게 되는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즐거움으로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을 채우고 있는지..

그냥 학기 초에 나눠주는 일회성  질문지인 줄 알았는데 이 질문지를 통해 모두를 더 오래 기억해 주셨다.


어느 날인가.. 교재 진도에 맞춰 열심히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교재를 덮었다. 서로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게임을 해보자고 하셨다. 4명씩 둘러앉아 쌓여있는 카드들 중 하나씩 뽑아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눠 보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라 하셨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앉을 때도 같은 나라에 온 사람과 나란히 앉지 말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앉으라 권하셨다. 그래서인지 둘러앉은 서로가 다 다른 나라 출신이었다. 나이도 제각각이고 자라난 배경도 서로 다른 친구들과 둘러앉아 카드에 적힌 질문을 보고 이야기 나누며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


이날.. 평범하기만 한 하나의 질문 앞에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질문은..

"당신이 제일 잘하는 건 무엇인가요?"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흔한 질문이지만.. 대답을 찾으려니 생각이 많아지는 질문..

'뭐라고 답해야 하나.. 난 뭘 잘하지?'

수많은 생각이 떠올라도.. 딱히 자신 있게 난 이걸 잘한다며 답할 거리를 못 찾고 있었다.


그때 첫째들 나이가 같아서 친구처럼 더 친밀하게 느껴졌 일본인 친구가 너무 쉽고 담담하 이렇게 답했다.

"난 자는 걸 정말 잘해요!"

엥? 엉뚱한 그녀의 대답에 우리 조 친구들은 푸하하 웃고 말았다. 잠자는 걸 제일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다니..

평소 엉뚱하고 짓궂은 친구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차분한 성격의 친구가 너무 평온한 표정으로 저리 답하니 더 엉뚱해서 한참을 웃었다.


우리가 많이 웃으니 조금 당황해하던 그녀의 설명은 이랬다.

본인은 언제, 어떤 시간,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푹 잘 잔다는 거였다. 상대적으로 예민한 자기 남편은 여행을 가거나 비행기 안에서나 공간이 바뀌면 잠을 전혀 못 자는데 본인은 자야지 하고 머리만 어딘가에 기대면 푹 잘잔다고..

그래서 남편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그저 엉뚱한 대답인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잘 자는 것>도 언제나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마침 같은 조의 중국인 친구가 자긴 무슨 이유에선지 싱가포르에 오고부터 불면증이 생겨서 잘 자는 날이 손꼽을 정도로 별로 없다며 너무 부럽다고 했다. 잠이 줄어드는 나이도 아니고 아이도 8살이라 밤잠을 방해하는 상황도 아닌데.. 긴 밤 푹 잘 자고 싶은 게 소원일 정도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님도 하지불안증후군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이루시고 밤마다 고생하고 계신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자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고 고생하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푹 잘 자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는 나이가 들수록 더 공감하는 내용이지 싶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고 싶은데 잘 못 자는 밤이 얼마나 피곤할지 헤아려보니.. 상상만으로도 피곤했다. 잠이 보약이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잠이 든다고도 하지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 앞에 걱정이 많아지고 해답을 찾지 못해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아진다.

그러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다 보니..

해맑게 웃으며 나는 자고 싶을 때 잘 잔다고..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친구가 문득 부러웠다. 평범한 일과지만 <잘 자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찾아오는 건 아닐 수 있기에..  



어릴 적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기면.. 이것저것 떠오르는 게 많아서 어느 걸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욕심쟁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되게 해달라고 어떤 결과를 바라기보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바라게 된다.


보통의 삶.. 그 평범하고 별다를 거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제일 어려운 일임을 살아보며 느낀다.

어떤 사건 사고 없이 어제처럼 별일 없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그런 보통의 하루의 끝에 밤새 푹 잘 자는 걸로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가 잘 씻기기를..

그렇게 평범하기를 바라게 된다.

평범하기가 제일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당신의 밤은 안하신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불면증 없이 잘 주무시고 큰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고 평범한 날들이 함께 하시기를..  



(사진 출처 ; photo by David Clo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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