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새하얀 밀가루를 쏟아붓고 시원한 물을 부어가며 반죽을 시작했다. 손목이 아프지만 맛있어져라 외치며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동안 남편은 감자를 깎아 반달 모양으로 잘랐다.
밀가루 반죽을 뭉치며 이렇게 힘쓰는 건 보통 우리 아버지가 해 주시더라 하며 슬쩍 남편을 봤더니 감자를 더 열심히 다듬으며 예쁘게 깎겠다 했다.
저녁 메뉴는 감자 수제비로 정했다.
무더운 여름 나라 싱가포르에서 뜨거운 국물요리할 일이 있을까 싶었었는데.. 이곳의 12월은 한국의 겨울처럼 춥진 않지만 매일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려 조금은 추워진다. 이곳 분들은 시원해서 딱 좋다 하지만 오래 살다 보니 한국의 장마철 같아 보일러나 전기장판이 그립다. 뜨끈뜨끈한 게 그리워 정해진 오늘의 메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육수에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으려니 어쩔 수 없이 땀이 줄줄 흘렀다. 얼른 하자며 손을 보태기로 한 남편에게 최대한 얇고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풍덩 빠지는데 보니 코끼리 만한다.
얇게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저 허허 웃으며 사랑하는 만큼 많이 먹으라고 그런단다. 도와주겠다더니 갈수록 엉망이다.
그렇게 완성된 감자수제비를 나눠 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오랜만에 다 같이 둘러앉아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까 본 그 커다란 코끼리 반죽을 찾아 내 그릇에 담아주는 남편.. 많이 먹으란다.
오랜만에 끓인 탓인지 맛있다며 잘 먹어주니 그저 좋았다.
그렇게 다 같이 배부르게 먹고 서로 도와 뒷정리하고 돌아온 거실 풍경..
첫째 ; "내가 작은 피스들 같이 찾아줄게. 전에 사둔 블럭 같이 만들까?"
막내 ; "나야 좋지. 누나도 같이 만들자!"
둘째 ; "그럼.. 난 음악을 틀어줄게. 듣고 싶은 음악 말해줘. "
어느새 나보다 커버린 세 아이가 머릴 맞대고 둘러앉아 예전에 사뒀던.. 블럭 크기가 작아 만들기 까다롭겠다며 미뤄뒀었던 블럭을 같이 만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둘째가 틀어주는 음악이 경쾌하게 흐르고 있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남편 손을 꼭 잡았다. 셋이라 얼마나 보기가 좋으냐고.. 키울 땐 정말 힘들었지만 저렇게 사이좋게 커줘서 우린 정말 큰 선물을 받은 거라고.. 정말 감사하다고..
"당신이 고생 많았어요."
키우느라 애썼다고.. 돈 버느라 애썼다고.. 서로 고마워했다.
따뜻한 국물요리로 추위를 데우고.. 둘러앉아 도란도란한 모습에 마음을 데우고..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물 같은 저녁이었다.
유난히 병원 갈 일이 많아 마음 졸이느라 힘겨운 한 해였다. 그래서인지 그저 소소한 이런 저녁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으로 다가오나 보다.
오래오래 기억될 따뜻했던 저녁.. 특별한 건 없지만 영원히 박제하고픈 저녁 풍경..
혼자 하기엔 버겁고 힘들어 미루게 되는 일들..
함께 손을 보태고 마음을 더하면 조금은 수월하게 해낼 수 있기에..
크고 작은 어려움 앞에 지금처럼 손을 보태고 마음을 더할 가족이 함께라 든든한 밤이었다.
(아이들이 함께 만든 블럭 하우스.. Photo by 서소시)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웃을 일 많은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