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만 하다 지친 당신에게

좋소기업 테크트리에서도 이건 알고 버티자

by 코와

앞선 글에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면 우선 5년, 즉 만 시간의 법칙¹을 채우며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엉덩이를 붙이고 이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능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니까요. 실력을 쌓기 위한 버팀과 영혼 없이 자리만 지키는 버팀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움직여야 할 때는 또 과감하게 움직일 줄 알아야 합니다.


버티기 전문가가 되어버린 직장인

제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첫 직장을 다니고 사회를 좀 알아가고 회사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중간 관리자인 차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등교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늘 출석 체크를 당하는 학생처럼 불안하게 앉아 있었고, 언젠가는 이 지루한 생활이 끝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자리 잡고 있었죠. 심지어 만화나 라디오 사연에서나 나올 법한, 의자에 양복 윗도리를 걸어두고 퇴근한 척하는 꼼수를 부려보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스스로를 들여다보니, 저는 어느새 버티기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퇴사하지도, 도망치지도, 그렇다고 치열하게 싸우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있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괜찮아. 다 이런 시기가 있는 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다 해결해 주겠지."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꼬인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내 감정이 무뎌질 뿐입니다. 무뎌진다는 건, 내 안의 감각과 열정이 조금씩 죽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방향 없는 버팀은 소모일 뿐이다

예전에 데리고 있던 후배 중에 참 성실하고 말도 잘 듣고 버티는 힘도 강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조직이 원하는 착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결국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퇴사하던 날, 그 후배가 제게 남긴 말이 아직도 가슴에 맴돕니다. "선배님, 저 버티는 건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버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갑자기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그 쓸쓸한 고백을 듣고, 오래전 수첩에 적어둔 메모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버티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왜 버티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로 버티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버티며 살아갑니다. 취업 준비생은 합격 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버티고, 신입사원은 선배의 칭찬 한마디를 들을 때까지 버티고, 팀장은 조직 안에서 온전한 자기 사람을 만들기 전까지 버팁니다.


하지만 그 버팀에는 반드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방향 없이 그저 꾹 참기만 한다면, 그건 인내가 아니라 단지 소모일 뿐입니다. 나는 오늘도 잘 버텼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닳아 없애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입니다.²


이유 없는 무기력, 번아웃의 경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현대인의 고질병인 번아웃입니다.


내가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버티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번아웃이 찾아옵니다. 몸은 회사 파티션 안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까맣게 타버린 상태. 주말 내내 아무리 잠을 자고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무기력해집니다.


이유 없는 피로와 무기력, 일상에 대한 흥미 상실. 이런 감정이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면 이미 번아웃의 신호가 켜진 겁니다. 번아웃은 단순히 야근을 많이 하고 일이 넘쳐서 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잃어버릴 때, 맹목적인 버티기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향 없는 버티기는 결국 자신을 가장 빨리 소진시키는 지름길이 됩니다.


제가 신입이던 시절만 해도 버티는 게 무조건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선배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해주던 "야, 원래 다 힘들어. 조금만 참고 버텨라"라는 말은 직장 생활의 필수 조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참는 것도 분명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전략이 되려면 반드시 언틸(Until), 즉 기한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버티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것인지 기한이 없는 지속 불가능한 인내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습니다.


때로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날카롭게 물어야 합니다. "이 지루한 버팀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그 끝이 나의 확실한 성장인지,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출인지, 아니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월급을 받기 위한 현상 유지인지 말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세 가지 간(間)

수많은 직장인을 만났습니다. 그중에서 휩쓸리지 않고 결국 자기만의 업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나 역시 회사 대표가 된 뒤에도 심한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저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해 보거나,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게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사람이 자신의 운명과 삶을 바꾸려면 반드시 세 가지 간(間)을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³


바로 인간(人間), 공간(空間), 시간(時間)입니다.


첫째, 인간(人間).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기존의 인간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공간(空間). 매일 오가던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완전히 다른 낯선 환경에 자신을 놓아봐야 합니다. 셋째, 시간(時間). 늘 똑같이 굴러가던 하루의 루틴이나 주말에 시간을 쓰는 방식을 과감하게 바꿔야 합니다.


실제로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평소 안 가던 낯선 공간에 가보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다르게 써보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지금 번아웃에서 벗어나 숨을 쉬고 싶다면, 퇴사나 이직 같은 거창한 결심 이전에 내 일상 속 이 세 가지 간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나를 지키는 과감한 결단

바로 앞선 글에서 제가 만 시간의 법칙, 즉 5년을 묵묵히 버티는 것이 중소기업 생존 테크트리의 시작이라고 꽤나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내 몸과 영혼을 무참히 갈아 넣으면서까지 미련하게 버티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방향을 잃고 숨이 막힐 때는 먼저 세 가지 간을 애써 바꿔보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고 도저히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면, 그때는 나를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털고 일어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만 시간을 채우려다 내 인생 전체가 무너져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버티는 것은 분명 훌륭한 삶의 무기입니다. 하지만 나를 죽이는 버팀은 무기가 아니라 흉기일 뿐입니다.


맹목적으로 버티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세 가지 간을 바꾸는 작은 움직임으로 나를 환기시키십시오. 그리고 때가 왔을 때는 과감히 결단하고 움직이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그 유연함이 결국,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당신만의 단단한 길을 만들어줄 테니까요.



주석

1. 만 시간의 법칙 :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대중화된 개념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 본문에 위첨자로 표기됨.

2.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남긴 명언. 본문에 위첨자로 표기됨.

3. 인간, 공간, 시간 (세 가지 간) :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大前研一)가 그의 저서 《난문쾌답》에서 인간이 바뀌기 위한 세 가지 방법(시간 배분을 바꾼다, 사는 곳을 바꾼다, 사귀는 사람을 바꾼다)으로 제시한 내용.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