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
<보기>, 보기
-일민미술관 ⟪IMA Picks 2024⟫ 전시 중 작가 차재민의 ⟪빛 이야기⟫를 중심으로-
예술 작품이란 무엇일까?
작은 의미에서 예술가의 손끝에서 창작된 무언가를 뜻하기도 하지만 큰 의미에서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 그 자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런 시선들이 작가의 담론을 만들고 또 예술적 언어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 이러한 모든 과정을 예술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IMA Picks 2024⟫는 다양한 분야의 표현 방식을 작가들의 시점에서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총 3층으로 구성된 전시는 층마다 각각 전혀 다른 ‘보기’ 방식을 가진 세 개의 전시를 예술적 시선의 <보기>로 제 공한다. 차재민은 ⟪빛 이야기⟫에서 영상으로 전치된 현실을 통해 개인이 맞닥뜨리는 사회 안에서의 문제를 미술적 감각으로 표현한다. 백현진은 ⟪담담함안담담한라운지⟫에서 작가 개인이 그림 밖에서 느끼는 고뇌를 단순한 패턴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환기한다. 김민애는 ⟪화이트 서커스⟫를 통해 3층 공간을 가상의 옥상으로 치환하여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미술적 설치를 통해 탐구한다. 각각 영상, 회화, 조각 형태를 가진 작가들은 매체의 차이뿐 아니라 매체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전개 흐름에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자기 확신과 표출이라는 공통된 흐름에서 세 가지 전시의 합은 막무가내로 뭉쳐둔 것이 아니라 개성이 돋보이지만 동시에 겹치지 않는 유려한 선화로 돋보인다. 미술관을 꽉 채우는 분량의 전시인만큼 본 글에서는 전시의 오프닝을 맡고 있는 차재민 작가의 ⟪빛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차재민의 신작 ⟨광합성하는 죽음⟩은 죽음에 대해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과 이미지들을 한데 병치한 영상 작업이다. 영상은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이 작업공간에 유리 전시장과 과일들을 배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공간의 창문과 문들은 마치 철거하는 아파트 현장처럼 모두 열려 바깥의 날씨를 보여주고, 축축이 젖어드는 여름비 속에서 과일들은 자연스럽게 부패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날들 속에서 차례로 등장하여 마치 박물관의 유물을 관람하듯 유리 진열장을 바라본다. 과일의 변화 과정을 교차하여 보여주기도 하고, 벌레들이 알을 까고 또 탄생하는 과정까지 관객은 숨죽여 바라보게 된다.
작업의 흥미로운 점은 동료가 작가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읽는 내레이션이 깔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여성의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아홉 단계로 기록한 불교 구상도를 보고자 박물관에 연락하지만, 학예사는 콜베이스에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것을 권한다. 이 서신 과정에서 동료인 연구자 시무라 히카루는 이중언어에 대한 글이나 여성의 몸에 대한 문학을 언급한다. 작가는 연구를 위해 일본으로 방문하고자 질의하는 과정을 텍스트로써 영상에 담았으며, 관객에게는 그 결과를 함구한다. 영상은 끝없이 부패하는 과일의 이미지와 명확하게 종결되지 않은 서신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작가는 죽음을 소멸이 아닌 변화의 상태로 정의한다. 같은 맥락에서 완결된 영상물보다는 작업 과정 그 자체를 작업으로 보게 되는 점이 이 전시가 여러 가지 시선 중 가장 첫 번째로 제시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영상을 통해 관객은 작가가 재구성한 여러 가지 은유적 이미지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상상하면서, 동시에 작업이 지칭하는 죽음의 실제 광경인 구상도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박물관의 학예사가 제시한 고해상도 이미지 역시 카메라를 통해 여과된 사본이며, 더 나아가 곰팡이 핀 과일을 촬영한 것이나 일본-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마저 작가라는 여과지를 거친 것이다. 이는 마치 물체에 반사된 빛을 색이라고 인식하는 ‘보기’의 시각적 착각과도 닮아있다. 따라서 작업의 주제는 단순히 죽음이 아닌 보는 행위 그 자체로 파생된다.
텍스트를 이용하여 영상의 한계점을 넓히는 차재민의 방식은 전작인 ⟨네임리스 신드롬⟩과 ⟨보초서는 사람⟩에서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상 작품들은 흔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많다. 작가는 영상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지만 비유에 가까운 위치의 텍스트를 병치함으로써 다큐멘터리와의 간극을 만들어낸다.
⟨광합성하는 죽음⟩에서는 내레이션에 사용된 텍스트가 단순히 학술논문에서 발췌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점도 관객의 주의를 끌 만하다. 또 일본어를 주로 쓰는 화자가 한국어 텍스트를 읽게 하여 독특한 발음과 어조를 통해 청각적 집중도를 높였다. 영상이 설치된 공간은 작가가 에스키스와 드로잉을 보여주는 공간과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빨간색 벨벳 벽지와 커튼이 설치되어 마치 박물관의 수장고를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쾌감을 준다. 이렇듯 은근하고 섬세한 장치를 통해 표현된 전시 ⟪빛 이야기⟫는 마치 시청각적 경험의 집합체와 같이 확장된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