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2016)

by cogus


우리 인생의 이야기



언어는 무기다


"언어는 문명의 기반이고, 사람들을 함께 있도록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하며 갈등이 생길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무기'이다"


이안의 책에 나와 있는 문장이다. 헵타포드가 ‘Offer weapon’이라고 했을 때, 그들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당황했다. 그 정확하지만 뜻은 명확하지 않은 문장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주어 없는 이 문장(헵타포드는 상형문자의 형식으로 나타냈을 테지만)은, ‘무기를 주겠다’와 ‘무기를 바치라’라는 아주 다른 뜻이 둘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별을 지키고 싶어 한다. ‘무기’라는 단어는 지구인들에겐 좀 폭력적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뜻의 ‘무기’는, 지구가 생겨나고 지구를 인간이 차지한(난 인간들이 슬슬 지구를 놓아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례로,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가장 많은 상처를 남긴 단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뜻으로 공존하고 있는 두 문장은 어쩌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당신들에게) 주다’와 ‘(우리에게) 주라’. 낯선 인간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언제든 무언가를 제공해 줄 의향이 있다는 의사가 담겨 있기도 해서 친절하다. 이런저런 뜻을 다 합쳤을 때 문장의 온도가 항상 0(기준점)에 닿아 있는 방식은 ‘제로섬 게임’ 같다. 물론 이 생각도 그들의 언어를 그저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의 형식으로 이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점 A에서 지점 B로 가는 형태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물론 중간에 방지턱이 있거나 신호가 있다 하더라도, 우린 그저 지점 B라는 목적지(여기서 목적지는, 말의 의도는 아니다)로 향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쓰거나 발화하는 모든 언어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목적지가 정확하지 않다. 같은 곳을 3번 이상을 뱅뱅 도는 이상한 길이거나 중간에 반드시 멈춰서 물을 마시거나 하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사실 길이라는 것이 땅에 잘 붙어 있거나 공간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빙 돌아서 달린 것 같은데도 자동차 안의 시계를 보면 30초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언어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살고 있는 형태이기에.

이렇게 우리 인간이 쓰는 허접한(이건 농담이다 물론!) 언어를 습득해서 고르고 골라 간결하게 간추려준 게, 사실 좀 고맙지 않은가? 간결한 게 어쩌면 가장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간결하다 보면 상대의 오해를 살 수가 있다. 백 마디의 언어로 감정의 수치를 채워야 한다면, 그게 친해지는 방식이라면, 난 그 역할을 루이즈가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제로섬 게임 아닌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로 헵타포드는 인간들을 알아가고, 인간들은 헵타포드를 알아간다는 것. 욕심부리지도 않고 뺏기지도 않는, 항상 0에 수렴하는 온도. 당신에게 기꺼이 30을 내어줄게요. 30을 받은 헵타포드는, 루이즈가 가진 나머지 20을 욕심내지 않는다. 80이 된 헵타포드는 자신의 다른 쪽 한 면에 잘 존재하고 있는 언어 30을 루이즈에게 내어준다.

‘루이즈는 미래를 본다. 무기는 시간을 연다.’

영화의 부반부에, 코스텔로가 루이즈에게 건네는 문장이다. ‘무기는 시간을 연다’,라는 말을 바꾸면, ‘언어는 시간을 연다’라는 말이 된다. 언어를 배운다. 언어에는 그들의 문화와 삶의 양상들이 내포되어 있기에,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들을 배운다는 것이겠다. 배운다는 그 적극적인 태도가,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시간을 여는’ 능력을 부여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엔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배움은 시간을 연다.’

말하고 듣는 것만이 아닌, 온몸으로 느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언어. 좋든 싫든 루이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잠깐 잠에 들 때마다 한나의 볼과 머리칼을 쓰다듬는 감각을 생생히 느낀다.



한나(Hannah)라는 기억


"만약 당신의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된다면, 뭔갈 바꾸시겠어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아이가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배우고 화내다가도 또 어엿하게 성숙한 모습이 되어 있고 또 그 아이가 죽을 때의 장면을 동시에 본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매 시간 꿈속을 걸어 다니는 기분일 것 같다. 존재하는 모든 시간의 개념들이 나와 ‘함께한다’는 게 좋은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잊고 싶은 과거가 존재할 테고, 알고 싶지 않은 미래가 존재할 테니. 루이즈는 어느 시간 속, 한나에게 말한다. 막을 수 없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고, 그것들이 너와 ‘함께 할 거라고’.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말은 분명 루이즈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밀려들어 오는 것들과 함께 하는 것, 매 순간 진행되고 있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이다.


(루이즈) 아주 희귀한 병으로 인해 (너에게) 생기는 병이야. 그건 막을 수 없단다. (웃으며) 너처럼 말야.

넌 정말 놀라워. 너의 시와 너의 모든 놀라운 일들이 세상과 함께할 거란다.

(어린 한나) (살짝 웃는) 날 막을 수 없어요?

(루이즈) 그래.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언어들이 있다. 이건 산하의 언어다. (KBS <인간극장> 2012, '산하의 여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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