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을 아십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문화인류학과라고 소개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대학에 인류학 혹은 문화인류학과가 그렇게 많이 개설되어 있는 학과도 아니고, 그렇기에 더욱이 대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화인류학이라는 울림은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고고학 역시 인류학의 한 분파로 고고인류학이라는 분파가 있기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것은 '문화'인류학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류와 사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실 이렇게 설명했을 때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뿐이고, 설명하는 사람입장에서도 난감하다. 더 설명하자면 고릿적 외딴 섬의 원시부족을 연구하는 서양학자들-인류학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현장연구까지 설명 해야하니 차라리 날 잡고 설명하는 게 빠를 정도다. 그러니 이해가 가든 안 가든 저렇게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이 제일이다.
우선, 문화인류학의 시초는 외딴 섬의 원시부족과 그들을 연구하는 서양학자가 맞긴하다. 과거 인류학자들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었다. 마거릿 미드라는 인류학자도 '사모아'라는 섬에 가 부족의 청소년들의 행동양상을 관찰해 민족지(현존하는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 전체를, 실지 조사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를 작성했고, 루스 베네딕트 또한 일본 사람들을 연구한 '국화와 칼'이라는 민족지를 기술했다. 대체로 인류학자들은 직접 그 사회와 문화가 속한 현장을 오랜 기간 관찰하고 그것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 '참여관찰'은 인류학 연구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이 외에도 인류학은 굉장히 많은 이론과 학자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다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 아닌 문화인류학을 좋아하는 일개 학부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인류학사 배운지 오래 돼서 학자들이나 이론들의 세세한 이름은 잊어버렸다...
인류학의 핵심은 '상대주의'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이분법적인 분류를 초월하는 무언가이다. 즉,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위해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인 2030 여성들의 탄핵 집회 참여 양상을 예로 들어보겠다.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의 중심은 102030의 어린 여성들이다. 같은 나이대를 두고 비교해 보았을 때,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의 집회 참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거리고 나오거나, 재치있는 깃발을 만들어 SNS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좋은' 것일까?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문화인류학도로서 빵점인 대답이다. 반대로 말해서,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양상은 '좋다'도 '나쁘다'도 아닌 사회 문화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왜 유독 많은 여성들이 집회에 참여했는가? 중장년층보다 청소년 및 청년 여성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이들은 무엇을 위해 왜 광장에 나왔는가? 이러한 현상에는 어떤 사회적 맥락이 뒤따르는가?
위 질문들에 모두 답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인류학자의 소양이자 관점이다. 단순히 어떤 현상을 가치판단하기 보다는 맥락을 포착하고 현상을 구성하는 부품들을 헤집어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떻게 해당 현상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치는 게 바로 문화인류학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왜 그들이 소수자인지, 소수자인 그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주류 사회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위계관계를 파헤치는 문화인류학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은 성급한 봉합과 빠른 해결책 제시를 경계해야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처방’하려고 하는 태도, ‘봉합’하려고 하는 자세.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뜯어보는 일이다. 그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그 과정에서 불합리함이 있다면 그것을 돌아보도록 해야한다.
사실, 작년까지 나는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것이 정말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탁상공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여성차별에 대해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장애학에 대해서 백날 이야기한다고 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의하고 글을 써도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어제 뱉은 한마디와 오늘 고심해서 끄적인 한줄은 아무런 힘도 없다.
하지만, 재밌다. 문화인류학은 재밌다. 이 자리에 앉아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재미있어서’이다. 재미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나를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의 세상에 다양한 관점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논의되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 서사를 불어넣는 일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내일 당장 세상이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가 변하고, ‘우리’가 변했다. 우리 또한 세상이 아닌가?
문화인류학도들에게 문화인류학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교수님부터 시작해서 선배, 친구들까지 참 다양한 대답을 한다. 사람 이야기를 사람답게 하는 학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 사람과 사회를 탐구하는 학문...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는 여대의 안전함과 지속성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라는 장소 바깥의 안전함과 지속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한다.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이 해체되어가는 이 시대에, 보편적인 형태의 가족을 이루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정상가족의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한다. 반대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여대 바깥의 안전함과 지속성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대의 소멸을 주장하는 이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 정상가족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가족의 형태를 고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사람은 유동하고 협상한다. 순응, 저항, 간파, 조율, 협상, 갈등, 연대, 대안 모색과 혼란의 과정, 통일되지 않는 정체성. 좋다와 나쁘다의 이분법을 넘어선 태도. 오늘부터 이 브런치에는 그런 사람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보겠다. 다소 두서없고 군데군데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을진 모르겠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렌즈를 끼고 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대충... 책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그때그때 갖는 생각을 쓸 것 같다. 혹은 최근에 시끄러운 사회문화 이슈나 유행에 관련된 내용으로 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건 중언부언 휘갈긴 개요가 이해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 글을 덧붙여볼 것 같다. 뭔가 거창하게 쓰긴 썼는데 그냥 내가 과제로 썼던 쪽글들을 좀 편집해서 올려볼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