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나': 몸의 정상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

영화 <서브스턴스>를 문화인류학으로 해체하기

by 그불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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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누구나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외출 준비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서면, 그날따라 내 얼굴의 단점만 눈에 쏙쏙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다. 눈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모공이 좀 더 작았더라면, 허리가 조금만 더 잘록했더라면... 그러던 어느 날, 내 눈 앞에 그런 단점들을 보완해 '더 나은 나'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정체불명의 약물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과거 대스타였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이제 연예계에서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됐다. 촌스러운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로 전락한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프로듀서의 전화를 엿듣게 된다. 프로듀서는 엘리자베스가 너무 늙었다며 그를 강제 하차시킨 후 더 어리고, 더 섹시하고, 더 아름다운 여성 출연자를 지금 당장 섭외해 오라고 한다. 낙심한 엘리자베스는 운전 중 도로에서 자신의 사진을 뜯어내는 것을 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만난 한 남자 간호사는 그의 몸을 검사하더니, '행운을 빌어요'라는 말과 함께 엘리자베스의 코트를 건네준다. 건네진 코트 안에는 종이에 싸인 USB가 하나 들어있었고, 엘리자베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영상을 보게 된다.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약에 대한 홍보 영상으로, '지금보다 나은 나를 꿈꿔본 적 있는가?'라는 문구로 시작한 영상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는 문구로 끝난다. 그는 처음에 그 USB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만, 나중에 다시 그것을 주워 기재된 전화번호로 연락을 한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수상쩍은 주소로 배달된 그의 패키지. 박스 안에는 '최초 1회 사용 후 폐기'라고 적힌 노란색 활성제와 안정제, 영양제 패킷, 그리고 교체 키트가 담겨있었다. 물건을 다 꺼내고 나자 마지막 설명서에는 굵은 볼드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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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활성제를 몸에 꽂아넣자 그의 척추를 찢고 새로운 클론이 태어난다. 엘리자베스보다 훨씬 더 젊고 아름다운 그 클론의 이름은 수(SUE). 수는 클론이기에 완전하지 않다. 하루에 한 번, 본체인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척수액을 뽑아내어 수의 몸에 주사해야만 온전한 상태로 활동할 수 있다. 수는 엘리자베스가 진행하던 에어로빅쇼에 신인 출연자로 들어가게 되고, 사람들은 그의 몸매와 외모에 열광한다. 엘리자베스의 자리를 꿰찬 수는 빠르게 유명세를 탄다. 수로 사는 7일 동안 그는 새롭게 태어난 사람처럼 굴었지만, 엘리자베스로 돌아간 7일 동안은 수가 가진 젊음과 아름다움에 낙심한다. 수가 미모의 신인으로서 승승장구할 동안 엘리자베스는 수가 홈파티를 하면서 어지럽힌 집을 치우는 일이나 해야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수와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비교해가며 자기혐오에 깊게 빠져든다. 하루만 더, 이틀만 더...그렇게 수는 엘리자베스로 돌아가지 않은 채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끊임없이 척수를 뽑아내어 7일의 기간을 어기고, 수로서의 삶을 연명해간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몸에서는 맑은 척수액 아닌 썩은 고름에 가까운 액체가 나오고, 결국 강제로 엘리자베스와 수가 교체된다. 교체된 엘리자베스의 몸은 노화가 이루어지다 못해 괴기한 신체 변형으로, 그야말로 마귀할멈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는 절규하며 제약회사로 다시 전화하지만 노화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는 말에,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회사에서는 이전에 왔던 주소를 알려주며 중단 약물을 받아가라고 한다.

'종료'라고 쓰인 약물을 수의 몸에 주사하던 중, 엘리자베스는 수가 없으면 자신의 명예도, 영광도 없을 것이며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사실에 절망하고, 약물 주사를 중단한 채 수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전한다. 절박한 마음에 교체키트를 사용하고, 어찌된 일인지 두 육체의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수가 깨어나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죽이려던 걸 알게된 수는 반대로 엘리자베스를 쫓아가 무자비하게 살해하지만, 서브스턴스의 경고 문구였던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를 떠올리고 다시 절망하게 된다. 엘리자베스가 죽었으니 그의 척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하던 수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제발, 더 나은 나를 줘!


그러나 수에겐 그를 정상으로 끌어올려줄 가장 중요한 쇼, 새해 전야제가 남았다. 드레스를 입고 치장을 하지만 컨디션이 완전치 않은 수.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화장실로 달려간 수는 자신의 치아가 너무나도 손쉽게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실성해버린다. 출연자는 화장실 안의 수를 재촉하고, 밖으로 나온 수와 마주친 프로듀서는 수에게 '예쁜 여자는 역시 웃어야 한다'며 앞니가 죄 빠져버린 수에게 웃을 것을 강요한다. 애매한 미소를 짓고 세트장에서 도망친 수는 집에서 '최초 1회 사용 후 폐기'라고 적혀있던 서브스턴스 약물을 발견한다. 수는 그것을 자신의 몸에 꽂아넣으며 절박하게 외친다. 제발, 나에게 더 나은 나를 줘!

이전과 똑같이 수의 척추가 갈라지고, 태어난 수의 새로운 몸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괴물이었다.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괴물. 괴물 수는 드레스를 걸치고, 치장을 한 후 방송국으로 향한다. 무대에 오른 괴물 수를 본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수의 몸뚱어리에서 유방이 튿어져 나오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저 괴물을 당장 죽이라며 소리친다. 누군가 수를 때리자, 부러진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분출되고, 온 세트장을 피바다로 만든 수는 방송국을 빠져나와 도망가버린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한 채, 온몸이 무너져내리고, 수의 얼굴과 그곳에 붙은 살점들은 힘겹게 바닥을 기어 할리우드 거리에 박힌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이름의 별 보도블럭 위로 자리한다. 수는 자신이 화려한 별빛에 휩싸이는 환상을 보다가 녹아버리고, 이튿날 청소부가 그 액체를 닦아냄과 동시에 영화는 끝이 난다.


'더 나은 나'를 향한 끊임없는 집착


엘리자베스와 수의 이야기가 바디호러 장르라는 다소 극단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어서 그렇지, 기실 모든 사람들은 '더 나은 나'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갈망한다. 그런데, '더 나은 나'라는 것은 존재할까?

'더 나은 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인 동시에 허구적 환상이다. '더 나은 나'에 도달하기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나'는 우리 사회에서 말해지는 정상성의 맥락에 맞닿아 있다. <서브스턴스>는 몸의 측면에서 '더 나은 나'를 이야기한다. 보다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말이다. 작중 엘리자베스는 50대의 한물 간 여배우로, 그는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 화면에서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엘리자베스의 몸은 쳐진 유방, 튀어나온 뱃살과 거무튀튀한 색의 몸, 곳곳에 진 주름 등 온통 '고쳐할' 곳 투성이다. 그러나 수는 정반대의 몸을 가지고 있다. 큰 가슴과 엉덩이, 하얀 피부, 주름지지 않은 탱탱한 얼굴. 작중 등장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모두가 수와 같은 몸을 가진 여성을 보고 싶어 한다.

<서브스턴스>에서 수는 여성의 '정상적'인 몸을 상징한다. 여성으로서 도달 해야하는 외모의 이상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만큼 아름다운 몸을 가지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기준으로 여겨지는 몸인 수처럼 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작중에서 자기혐오가 심해진 엘리자베스는 약속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밖으로 나가려다 마주친 간판에 걸린 수의 화보에 비해 자신의 화장은 너무 촌스럽다. 옷은 볼품없는 가슴을 너무 곧이 곧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얼굴에 주름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거울 앞에서 스카프를 매어 가슴을 가리고, 자신의 외모를 수십번 고치다가 결국 손으로 미친듯이 얼굴을 문질러 화장을 전부 지워버리고, 약속을 파토내고 만다. 여성들이라면 모두 이와 같은 경험을 한 번씩 하지 않는가? 그날따라 내 얼굴의 흠이 더욱 눈에 띄어서,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울 앞에서 한 시간 내내 붙박여 움직이지 못하는 경험. 만족할 때까지 나를 뜯어고치려 했던 경험. 우리는 모두 '수'라는 이름의 사회적 정상성에 걸맞은 몸과 얼굴을 가지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수 역시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본체인 엘리자베스의 죽음으로 더 이상 수로서의 생명을 연장하지 못하게 되고, 수의 몸은 '추하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수의 앞니는 너무도 손쉽게 뽑혀나가기 시작하고, 제 손으로 앞니를 모두 뽑아버린 수는 더 이상 프로듀서의 '예쁜 여자는 역시 웃어야하니 활짝 웃어라'라는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조건에서 탈락된 몸이 된다. 누구나 바라는 완벽한 몸을 가진 것 같았던 수조차 몸이 불완전해지자 두려움을 느끼고 '더 나은 나'를 달라고 절규한다.

이 부분에서 '몸의 정상성'은 결국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향, 도달한 듯 보여도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너무나도 쉽게 탈락하는 시험. 그렇다면 이 '정상성'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왜 수는 그렇게 쉽게 무너졌어야 했을까?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폭력


작중에서 프로듀서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은 젊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프로듀서는 볼일을 보고 닦지 않은 손으로 엘리자베스 앞에서 새우를 까먹는다. 그리고는 아는 동료가 나타나자 식탁보로 대충 손을 닦더니 그와 악수를 하러 간다. 심지어는 신인 출연자로 나타난 수의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며 대화한다. 밖에서 어떻게 보일지 수십번 신경쓰는 엘리자베스에 비하면 그는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무신경하다. 또한 오디션 심사위원 남성들 역시 따분한 얼굴로 여성 지원자들의 몸을 비난하다가, 수가 나오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말하며 수의 외모를 고평가한다.

<서브스턴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평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때때로 그들은 평가하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남성들의 시선은 곧 권력이고, 그 권력이 바로 정상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프로듀서인 남성이 엘리자베스가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은 몸이고 평가를 내리는 순간 엘리자베스는 사회적 정상성으로부터 탈락된다. 오디션 심사위원인 남성들이 참가자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참가자들은 탈락된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단숨에 오디션에 합격한 수의 몸은 영화에서 몇 번이고 메일 게이즈(Male gaze)를 통해 클로즈업 된다. 마치 수의 몸이 얼마나 젊고 아름다운지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서브스턴스>는 젊음과 아름다운 육신이라는 허황된 환상에 빠져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불쌍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한 여자를 만들어낸 남성 사회의 권력과 몸의 정상성을 이야기하는 기형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다. 동시에 늙고 추해진 몸에 대한 공포과 혐오를 이야기한다. 엘리자베스가 수를 폐기하려고 했을 때, 엘리자베스는 선물 받은 꽃다발과 함께 온 메세지 '너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을 거야'를 보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엘리자베스에겐 사랑과 관심이 간절했다. 정확히는 사회로부터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한 구성 요소가 간절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수가 필요했고, 양쪽 모두의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난 수는 자신을 죽이려한 엘리자베스에게 광적으로 분노한다. 비명을 지르고 화를 내며 엘리자베스를 쫓아가 처참하게 살해하는 이 장면은 늙고 추한 몸에 대한 혐오이자, 그러한 자신의 몸을 보는 여성의 자기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요구하는 몸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기형적이고 늙은 몸은 작중에서 수에게 있어 계속해서 큰 스트레스였다. 수가 승승장구할수록 엘리자베스는 폭식과 나태한 생활을 일삼고, 수는 그런 엘리자베스에게 'plz control yourself!'라며 소리친다. 수의 말처럼 이 사회에서 늙고 추한 몸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데서 나온 결과이다. 노화는 세월에 따른 당연한 변화이지만, 우리는 '노력'함으로써 그 노화를 늦출 수 있고, 때로는 보다 '곱게' 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수라는 이름이 사회적 정상성에 의해 단죄 당해 마땅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엘리자베스의 노력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의 몸이 놓인 사회적 맥락은 엘리자베스의 존재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고, 엘리자베스가 걸어온 길이 어떻든 그의 몸은 몸의 정상성에 반하는 결과로 읽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고뇌와 내적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서 유독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몸을 끝없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나가며, 사회적 정상성을 인정 받으려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

결말 부분에서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새해 전야 무대에 올라가고, 한 사람이 그를 처치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부러지기만한 그의 팔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모든 세트장을 피바다로 물들인다. 엘리자베스에게 가해진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책임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그들에게는 모두 엘리자수의 피가 묻어있다. 동시에 그 피가 묻은 사람들 모두 신자유주의적 몸의 정상성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작은 여성일지도 모르지만, 그 끝은 남성이나 다른 기득권층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기준은 점점 좁아질 것이고, 우리는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말그대로 '끝이 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혐오를 지적함을 뛰어넘어, 종국에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상성에 대한 욕망, 비정상성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러한 규범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 캐릭터를 재현한다.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와 욕망의 재현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늙고 추한 몸을 어떻게 보는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진정 몸이 가진 정상성과 '본질(substance)'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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