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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짱 May 02. 2023

<시간의 역사>를 읽는 엔지니어

'시간의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시작하며


어린 시절 TV가 KBS1,2와 MBC 3개 채널만 있었을 때 주말외화와 미드를 자주 접했다. 그때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오랫동안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심어준 미드가 있었다.  '타임머신(The Voyagers)'이라는 시리즈물이었는데 시간을 조작장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역사적 내용이 바뀌는 위험이 발생되는 순간으로 날아가 수 십년, 수 백년을 이동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옴니'라는 장치인데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위험이 생기면 빨간색이 안전하면 초록색이 들어온다. 

주인공 보그는 시간 여행 중에 기계문제로 1982년으로 오게되고(1970년 이후는 갈 수 없다고 한다) 그곳에서 사고로 역사의 안내서를 잃어버리고 우연히 만난 소년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위험이 발생되자 자신도 뛰어내려 소년을 구하기 위해 시간 점프를 한다. 

하지만 다시 1982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들은 함께 시간여행을 하면서 역사안내서 역할을 그 소년이 하게 된다. 그 소년의 아버지가 역사학자인 덕에 세계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유명 스포츠 스타도 만나게 되는데 실패의 순간 이들이 도움을 주게 된다. 

베이브 루스 시대에서는 직구만 알던 타자에게 변화구를 던져서 모두 아웃시키고 에디슨이 전구를 실험에 실패해서 낙담하자 다시 한번 만 더 시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그 소년은 역사를 알고 있었으니 확신이 있었겠지만 그런 조력자는 분명 그들에게 비슷하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이 미드 시리즈 덕분에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지금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떤 큰 변화가 생겨날까? 


스티브 호킹 박사도 1985년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시간여행은 미래는 가능하지만 과거로 가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근거는 역사는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갔다면 분명 역시에서는 그 내용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건다. 그런데 '백 투 더 퓨처'에서는 역사를 대체적 역사을 말하고 있다. 이 개념은 시간여행자들이 과거로 갔을 때, 기록된 역사가 아닌 또 다른 역사들로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알고 있던 역사와는 별개로 새로운 세계로 살아갈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마티는 30년 전 과거에서 아버지에게 적극적 구애를 가르쳐 주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는 좀더 만족스러운 역사로 바뀌어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대체 역사설이 맞았으면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보다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내가 상상했던 다른 결과를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이는 UFO의 목격 사례가 문명이 발전한 외계의 비행물체가 아니라 지구의 먼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뭔가 그럴 듯하게 들리기는 한데 이에 대해 스티브 호킹 박사가 한 말이 있다. 


P206

그러나 나는 외계인이나 미래의 여행객의 방문이 실제로 있다면 그것은 훨씬 분명하고, 아마도 훨씬 불유쾌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다면, 왜 신뢰할 만한 목격자로 여길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까? 만약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커다란 위험을 경고하려는 것이라면, 그들은 별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 <시간의역사> 중애서 -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의 후회가 자주 밀려오는 것 같다. 과거의 선택이 바뀐다면 현재의 내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실제 과거로 여행을 주제로 하는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나 소설은 많이 나와 있다. 특히 '백 투 더 퓨처 '는 과거 부모가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자신이 없어지는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나의 조상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면 지금의 나는 사라지게 되는 것인가? 내가 알고 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는 것인가? 이런 패러독스 때문에 스티븐 호킹은 시간여행은 과거로는 갈 수 없고 미래만 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한다. 


'시간의역사'는 스티븐 호킹 박사를 영국에서 훌륭한 과학자였던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변화시켜 주었다. 고전 반열에 오른 최고의 과학서적으로 뽑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유전자'보다 더 많은 출판고를 기록했다고 하니 본인도 깜짝 놀랬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으로 호킹지수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수는 실제 그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만큼 어려운 책이었다는 뜻이다. 호킹 박사 자신은 매우 쉽게 썼다고 하지만 이건 순전히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역사' 또한 전혀 쉬워지지 않았다. 

'시간의역사'의 호킹지수는 '6'이라고 한다. 책 100페이지 중에 6페이지를 읽었다는 뜻이다. '시간의역사'보다 낮은 호킹지수를 가진 베스트셀러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자본'이 호킹지수 2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만큼 어려워서 유명세로 책을 구입한 사람들이 쉽게 포기해 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시간의 역사'를 읽어보면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다. 물리학 전공자도 힘들었다고 하니 일반인은 더욱 힘들 것이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시간의 역사'의 뜻은 우주가 탄생하면서의 지금까지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시간과 우주는 같은 개념과 같은 것이다. 빅뱅과 동시에 시간도 생겨났을 테니 말이다. 

스티븐 호킹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와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의 새롭고 완전해지는 이론을 개발되어 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우주를 거대한 거북이 떠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인도인은 커다란 코끼리 여러 마리가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진은 이들 코끼리가 움직일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여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이성적인 판단일 수 있다. 당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으로 설명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을 물리의 법칙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고 정립을 시킨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다. 뉴턴은 모든 질량이 있는 물체는 서로 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지구도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중력이라고 했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원리는 이 원칙을 따라야 한다. 

물리과학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불리는 '프린키피아'는 1687년 아이작 뉴턴에 의해 발간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저명한 사상가 리처드 벤틀리는 이렇게 의문을 던졌다. 

'만일 큰 질량일 수록 당기는 힘이 크다면 저 넓은 천체도 결국은 거대한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은 한 점에 수렴되어야 설명이 되지 않는가?'

뉴턴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이 부분을 뉴턴은 무한 한 공간에 무한 한 수의 항성이 균일하게 퍼져 있으면 서로의 힘이 상쇄되어 중심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의 시대와는 달리 정적인 우주관이 당연한 사상의 흐름이었다. 아무도 팽창이론을 제기하지 않는 시대에 뉴턴의 이론 주장은 사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적인 우주에 무한한 항성의 존재을 받아들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이전에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을 풀어내지만 그 안에 또 다른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뉴턴의 원리는 결국 지구 밖으로 나가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생겨난다. 이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풀어냈다. 그런나 상대성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규칙이 깨지는 우주의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 이론이 생겨났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인 물리를 모두 수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으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물리학은 그런 수학적 규칙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확률이론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원리는 수학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생전에 양자이론을 철저히 무시했고 지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직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닐스보어의 확률이론에 대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양자이론의 대가인 코펜하겐파의 닐스 보어는 '함부로 신에 대해 평가하지 말라'는 말로 되받아 쳤다.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기 위해 많은 이론이 생겼났다. 고대의 거북 우주부터 편평한 지구라는 우주관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계로 정립되어 세상의 원리로 받아들였다. 이 원리에 의문을 가진 코페르니쿠스는 행성계 원리를 분석하여 자신의 질문에 답을 찾았다. 뉴턴이 수학적 증명으로 발표를 했을 때 300년 동안 이를 진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그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상대성 이론도 의문점이 생겼다. 이에 양자이론이 설명할 수 있었다. 

이후 소립자 물리학, 블랙홀, 초끈 이론, 무경계 제안, 벌레구멍 모형 등 훌륭한 과학의 이론들이 끊임없이 연구되고 발표되었다. 

과학자는 이전의 이론을 맹신해서는 안된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만일 답을 찾지 못한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잘못된 질문에는 제대로된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들을 기술하는 데에서 과학이론들이 거둔 승리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우주가 일련의 법칙들에 따라서 진화하도록 허용했고, 이 법칙들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우주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 법칙들은 우리에게 우주가 처음 탄생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 시계의 태엽을 감고 그 바늘을 몇 시에 맞춰 놓은 후 째깍거리게 할지는 여전히 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우주가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한, 우리는 창조자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주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어떠한 경계나 가장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창조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 <시간의 역사> '우주의 기원과 운명' p180~181 중에서 - 


과학이라는 것을 현대 사람들이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래서 반드시 규칙이 존재한다는 전제로 생각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경제, 생활,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불확정성의 원리까지도 결과를 보고 그 이유를 찾아간다. 이러한 이론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게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상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고 한가지 원인에만 시선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데에 너무 집착한 나무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제기할 수 없었다. 반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자신들의 직업인 철학자들은 과학이론의 진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18세기에 철학자들은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자신들의 연구분야로 삼았고, '우주에는 시초라는 것이 있었는가'와 같은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철학자나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수학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범위를 너무나 축소시켜서 금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임무는 언어분석 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큰 몰락인가!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머지 않아서 소수의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넓은 원리로서 그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가 우리 자신과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시간의 역사> '결론' p233 중에서 - 


철학과 과학은 중세까지 같은 분야처럼 흘러왔다. 과학자체가 철학을 품고 있고 철학적인 자세에서 과학이 탄생했다. 그래서인지 뜻밖에 철학자들이 훌륭한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대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년: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는 흔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아마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한 번씩은 들어봤을 그가 남긴 유명한 명언이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시각에 대한 초기 이론에 공헌했고, 지금 어느 위치든 사용하는 X, Y축 2차원 좌표도 데카르트가 생각했다. 우주의 별 위치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나선의 중심으로부터 어떤 선을 그어도 나선과 동일한 각도로 교차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긴 같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1623~1662년) 또한 어려서 수학의 신동으로 불렸다. 13세 때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했고, 16살 때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했다. 19세 때는 세무관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었다(당시 매우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21세 때에는 유체의 압력과 부피에 관한 기초를 만든 파스칼의 법칙을 완성했다.

아마도 지식의 분업화가 전문화로써 발전이 된 것은 있지만 보다 넣은 의미의 발전적인 측면에서는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연구는 학문을 닦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원리를 알아가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과학의 반대되는 개념은 아마도 종교일 것이다. 과학은 관측과 증명에 의한 것을 믿지만 종교는 세계관을 결정시키기 때문이다. 이 틀에 갖혀 갈릴레오도 종교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반면 과학이 이런 행위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례가 있다.

뉴턴이론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이론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런데 과학이 관측에의해 확인이 된 것을 믿어야 한다면 뉴턴의 이론이 폐기될 위기가 있었다. 

1781년 음악가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윌리엄 허셜이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다 우연히 천왕성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전 궤도가 뉴턴이론과 오차가 있었다. 과학적 논리라면 관측된 행성이 이론에 맞지 않기 때문에 뉴턴이론을 대체할 다른 이론을 만들고 이를 해석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물리학자들은 뉴턴이론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정밀하게 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턴이론이 맞다는 가정으로 천왕성의 공전주기에 영향을 주는 다른 행성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크기와 질량을 계산했고 예상되는 관측 시기를 예상했다. 그리고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전기력과 자기력에 대한 부분 이론을 통합하여 맥스웰의 방정식을 만들어 냈다. 이 훌륭한 이론에는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을 만들어내어야 했다. 지금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폐기된 개념이지만 당시 과학적 지식 범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파와 광파를 설명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초끈이론' 등은 모두 관측할 수 없다. 다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 진 것이다. 물론 여러 관측에서 이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관측하고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과학적 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비록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사실일지 몰라도 이를 해석하기 위해  만든 가설은 또 다른 발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과거 종교에 의한 절대적인 세계관은 그런 접근 범위를 축소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많은 가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그들이 믿었던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패러다임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고 또 굳이 버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끈이론, 암흑물질, 양자학 등 모두 어쩌면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상상 속의 이론일지 모른다. 

과거 연소되는 현상을 설명할 때도 플로지스톤 이론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으로도 굳이 산소의 반응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설명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나왔기 때문에 과거의 것을 버리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고 싶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며 원리를 짜 맞추며 말하는 것과 상반되는 모습일 지 모른다. 결국 과학도 승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브 호킹 박사는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 싶어 거대한 중력에 의한 고전 이론과 아주 작은 최소한의 크기를 설명하는 양자학을 통합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이론은 사실 상반된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에서 '불확실성의 원리'를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겠나.

그는 세상은 수학적 이론을 설명을 할 수 있고, 지금 풀리지 않는 것은 과학 발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상반된 이론을 통합하려는 스티브 호킹 박사는 정확히는 과학의 다원론자라고 할 수 있다. 우주를 한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다른 두 이론을 조합해서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합이론'이라고 말을 한다. 호킹 박사는 이론의 통합을 위해 '양자중력이론'이 생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은 매우 상반되는 이론이지만 서로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틀을 깨는 것은 새로운 이론에만 있지 않다. 과거의 틀이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를 열 수도 있지만 잘못된 아집으로 과거의 훌륭한 이론적 사실을 무시하여 지금의 부족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열쇠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바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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