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풀생각 Feb 18. 2024

칼을 찬 선비와 붓을 든 갖바치


한때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3년에 KBS2에서 시작한 이 방송은 전국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과 스타들이 참여하는 치열한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방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세상에는 저렇게 많은 밥벌이와 살림살이를 위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많이 놀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저런 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터득한 삶의 기술을 기록에 남긴다면 그들을 뒤따르는 후배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조선 후기 문신 정약전이 귀양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취급하여 1814년에 저술한 실학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가 그런 뜻에서 사서삼경보다 더 귀중한 값어치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블로그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스스로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수산물을 양식하여 판매하는 분들을 많이 본다. 또 가지가지의 직장에서 자기의 애환을 담은 글도 많이 본다.

참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관념과 실재, 이론과 현실, 탁상과 현장, 붓과 칼은 모두 따로국밥이 아니라 비빔밥이어야 한다.


삶의 현장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자기의 목소리로 글을 남길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글이 된다. 더 나아가 사회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학교 같은 시설에 돌아가 살아있는 교육을 조금이라도 맡았으면 좋겠는데. 자기들 밥그릇 하나 더 챙기려고 환자를 볼모로 잡는 그네들처럼 또 교원임용고시니 하면서 되지도 않는 방패 막을 치려나…​




금융분쟁조정 업무를 하다 보면 남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비롯하여 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주식이나 펀드 또는 ELS 투자로 돈을 날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들뿐만 아니라 의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들처럼 남의 예기는 들을 줄도 모르고 세상 지만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만난다. 일단, 가진 돈도 아는 것도 많으니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생활 경제와 법률 상식의 수준이다. 이곳이 정기예금을 다루는 은행이 아니라 분명히 투자 권유를 받을 때, 저런 투자 상품들은 자기투자 책임의 원칙에 따른 실적 배당형 금융상품으로 원금손실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가입했을 텐데. 꼭 손해가 발생하면 회사와 직원을 상대로 금융감독원 또는 법원을 찾아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사사건은 회사의 적법한 투자권유로 판명이나 기각으로 종결된다. 판단의 주요 근거는 금융이나 법률 상식의 부족으로 발생한 사실 오해 등 해명, 주장 상이, 증거 불충분 따위다. 조금만 고민하면 그들의 지력으로 금방 이해할 정도로 쉬운 내용이 즐비하다. 정말로 몰랐다면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이다.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투자한 돈을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한 잔 꾀를 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것들 말고는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대목이다. 참 의외다!

그나마, 권모술수(權謀術數) 라면 다행이지만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면 진짜로 큰 문제다. 달리 보면, 다른 직업은 몰라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우리 사회의 미래인 학생들이나 보통내기들의 앞날을 지도 편달해야 하는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제도의 노른자 격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자체로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후학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그들조차도 험난한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나쁜 마음을 먹은 하이에나(유사투자자문업자나 보이스피싱) 같은 것들한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밖에서 진짜로 써먹어야 하는 금융경제와 생활법률을 제도권 안에서 학생들한테 많이 가르치면 좋겠는데. 바깥세상에 나와서 딱히 써먹을 곳도 없는 별의별 쓰잘데기 없는 따위만 가르치며 배우는 이도 가르치는 이도 모두 멀거니 당하기만 하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하기사, 백면서생들도 사회생활 체험을 따로 못해봤으니 알 턱이 있겠나?


아무튼, 남을 가르치는 그런 일은 하진 않지만 내가 하는 일이라도 기록에 잘 남겨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도록 해야겠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잣대가 따로 없어 정말 좋다.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 쓰는 일이라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가진 짧은 생각으로 독단이나 독선에 빠질까 봐 블로그에 이처럼 모두 공개하니 별 두려움도 없다. 사실이 이러하니 글 쓰는 일을 망설일 까닭이 없다.

앞으로는 공부뿐만 아니라 직장 그리고 여러 가지 내 개인의 삶을 글감으로 삼아 아무 글이나 많이 써봐야겠다. 그리고, 짬 날 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막 휘갈겨봐야겠다. ​


오늘도 새로운 글감을 찾으러 붓을 들고 청계천 다리 밑에 가서 가죽신을 만들어 팔아 돈이나 벌어 내 가족이 먹을 만큼만 챙겨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산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