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내가 책 읽기와 영어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절대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내가 맡은 일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 없이 혼자서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부서에서 업무와 관련한 주제 빼고는 거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대화에서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 툭 까놓고 말하면, 그들 말고도 나를 찾는 고객들과 영업점 직원들의 문의에 답변하는 일만 해도 아주 빠듯해서 말을 할 기회가 많다.
하루에 늘 다른 사람과 한 건 이상의 새로운 주제로 통화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꼰대들처럼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거리거나 심심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근로시간에는 업무상 통화를 하거나 고객과 면담하거나 회의에 참석 또는 자료를 작성한다. 그리고, 대기시간에는 민법이나 민사소송법을 비롯한 소비자보호법 해설서를 보며 사용자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기다린다.
쉽게 말해, 근로 규칙상 업무분장에 속하는 일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며 직무향상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휴게시간인 업무 시작 전이나 점심때 짬이 날 때 틈틈이 The Economist나 Financial Times를 본다.
참고로, 근로시간은 임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 가운데 하나다. 이와 헷갈릴 수 있는 것으로 휴게시간과 대기시간이 있다. 근로시간에 속하지 않는 대표적인 것은 휴게시간이다. 이는 사용자의 지휘명령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근로자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인데 업무 개시 전이나 점심시간이 그렇다.
반면, 대기시간은 겉으로는 휴게시간과 비슷하게 근로자가 휴식 등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음의 작업을 위해 기다리면서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이 배제되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이 시간 중에 있는 근로자는 사용자(규정상 업무 지휘자)의 구체적인 업무지시가 있으면 언제라도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운전기사가 승차시간 사이에 배차를 기다리는 시간 따위가 대표적인 대기시간이다. 이때에는 업무 준비나 업무 정리와 같이 근로자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 주로 민법과 같은 교재를 펼치고 보는 것이다.
아무튼, 근로시간을 늘 바쁘게 활용해야 하므로 남의 일 따위에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상 부서원들로부터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기회 하나가 줄었다.
업무상 간섭은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인간관계에 긴장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의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면 창의성이 억제되고 업무 만족도도 떨어진다.
선배 또는 상사들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까닭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라는 틀에 갇혀 남의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나만이 옳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무지의 자각을 일깨우느라 바쁘기 때문에 ‘라떼는 말이야!’를 외칠 겨를이 없다.
사회과학 분야의 철학이나 법학을 조금 공부하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이론과 사상들이 모두 옳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대에서는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옳고 또 이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견해도 맞다는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고 또 그 중도적인 견해도 옳을 수 있으며 다수설과 소수설이 모두 개별적 이론의 틀 위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도 마찬가지로 내가 지나오며 겪었던 직무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은 수 십만 가지 가운데 겨우 하나일 뿐이므로 ‘남의 일에 콩이야 팥이야’ 할 필요가 없다.
가끔 동료들이 조언을 구해 올 때가 있다. 이때는 조언과 지시를 구분해야 한다. 조언을 할 때는 자칫 그것이 지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조언은 타인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만, 지시는 당연히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조언이라는 일도 상대방이 원할 때만 하는 것이 좋다. 다행히 남들 하는 일에 간섭하거나 지시할 일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물어오기 전에는 조언할 일이 거의 없다.
독서법이라던가 영어 공부법이라던가 법학 공부법이라던가 하는데서는 내 실력이 보잘것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남들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가고 있어 그런지 아무도 물어 오는 이가 없다. 물론, 나도 남들한테 이 세 분야에 대해서는 따로 물을 일이 없다. 우물 안 개구리마냥 독불장군이라서가 아니라 남들한테 묻지 않아도 이제는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 길을 가다가 잠시 길을 잃으면 그 분야의 현장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정신적 롤 모델인 동•서양의 현자들이나 전 세계 석학들에게 독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물어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