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소년이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

by 기막준

소년과 세상


소년에게 어머니의 자궁은 완벽한 공간이이었다.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공간. 소년은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날 우악스러운 손이 소년을 세상밖으로 끌어낸다. 포근한 양수가 사라진 소년은 혼란스럽다. 차가운 공기와 빛, 소음이 거슬리고 스스로 호흡해야 함에 당혹감을 느낀다. 그래서 울음을 터뜨린다. 소년은 그렇게, 고통속에서 세상과 조우한다.

소년은 자라면서 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과자를 못 먹게 하는 부모님, 놀이터에서 찢어진 무릎, 정글같은 학교, 동급생의 괴롭힘, 권위적인 선생, 친구에게 빼앗긴 첫사랑, 여러가지 개인적인 문제들.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소년을 괴롭힌다. 이 과정에서 소년은 스스로를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로 정의한다. 세상속에 속한 존재가 아닌, 세상과 대립하는 존재로 자기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무렵 소년에게 세상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된다.

똥주를 죽여달라 신께 기도하는 완득이. 완득이는 똥주가 밉지만 할 수 있는건 없음에 무력감을 느낀다.*사진출처 네이버 스틸컷

<완득이>의 주인공 도완득은 이런 세상과 극렬하게 갈등하는 인물이다. 신체 장애인 아버지, 지적 장애인 삼촌과 함께 사는 완득이는 투명인간과 다름없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세상이 자신을 싫어함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아버지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회,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임을 학교에 떠벌리는 담임선생 똥주, 그 말에 자신을 비웃는 몇몇 동급생들. 완득이는 이런 상황에 분노하지만 어떻게 표출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세상이라는 실체없는 적 앞에서 분노의 대상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방황한다. 거슬리는 동급생을 패주고, 교회에 나가 똥주를 죽여달라 기도하면서.


소년과 킥복싱


완득이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태생적으로 강한 육체를 가졌고, 어릴 때 아버지가 일하던 카바레(공연시설을 가진 단란주점)에 들락거리며 업소 조폭들에게 싸움을 배웠다. 완득이에게 싸움은 세상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세상사람들이 자신에게, 또 아버지에게 말로 상처줄 때 완득이는 주먹으로 되갚아줬다. 규칙없는 싸움터인 세상에서 완득이 나름의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완득이는 우연한 계기로 킥복싱 체육관을 방문한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규칙있는 싸움을 접한다. 완득이는 링 위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관장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파링 상대방이나 길거리 싸움 상대방이나 그에게는 똑같이 이겨야하는 적이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되려 공격받을 위협이었다. '세상은 제압하거나 제압당하는 공간' 이게 완득이의 세계관이었고 링 위 또한 이 세계관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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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은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고 타격 위주의 무술이기에 얼핏 길거리 싸움과 유사해보인다. 하지만 니킥 등의 위험한 공격은 금지하는 등 명확한 규칙이 정해져있다.*사진출처 랭크5

완득이는 관장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킥복싱에 매료된다. 17살 인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보고 싶은게 생겼다. 규칙이 없고 적이 명확하지 않은 곳. 동시에 누구도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규칙이 있고 적이 명확하며 선수로서 존중 받을 수 있는 링 위로 완득이의 주무대가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완득이는 체육관에 다니며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온다. 체육관 등록비를 벌기 위해 알바도 하고, 운동에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한다. 관장님이라는 사람에게 생전 처음으로 스승의 은혜를 느끼기도 한다. 친해진 여자아이를 체육관에 데려오기도 하고, 어머니가 대회에 응원오기도 한다. 오로지 적뿐이었던 완득이의 세계에 '관계'라는게 생긴 것이다. 세상의 축소판인 링 위에서 완득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똥주의 양가성


완득이의 담임선생인 똥주는 <완득이>의 등장인물 중 가장 양가적인 인물이다. 소설 초반, 똥주는 미친 사람처럼 묘사된다. 완득이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실을 학교에 떠벌리고, 동시에 그의 불우한 가정사를 들먹여 마음을 후벼판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이미 다 배운 내용이라는 핑계로 수업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 와중에 완득이의 옆집에 살아 수급품을 뺏어먹는다. 이 시기 완득이의 가장 큰 적은 당연히 똥주다. 완득이는 똥주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마다 교회에 가 기도한다. 똥주를 죽여달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똥주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완득이가 킥복싱을 시작하자 여러방면에서 배려해주고, 앞집아저씨와 갈등이 생겼을 때 도와줬고, 아버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줬다. 사비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몇년째 돕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완득이는 혼란을 느끼지만 동시에 똥주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 똥주의 이런 양가성은 세상의 양가성과 닮았다. 불우한 가정사를 언급해서 상처주지만 동시에 어머니를 만나게 도와주는 똥주처럼,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이면에 분명한 행복이 존재하는 곳이다.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고하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뭐가요!"

"그 '뭐' 말이야, 새끼야."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완득이에게 똥주가


<완득이>는 주인공 도완득의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완득이의 성장은 대부분 똥주로 인해 이루어진다. 똥주는 자신의 가난을 비관하는 완득이에게 '너는 진짜 가난이 뭔지 몰라' 라고 일갈한다. 힘든 사람에게 '너보다 훨씬 힘든 사람도 많다'라는 말은 상처이다. 하지만 똥주는 완득이가 받을 상처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완득이의 가난, 가정사, 성격 등 온갖 컴플렉스를 끊임없이 드러내려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약점을 숨겨두던 완득이는 그런 똥주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인간은 나를 싫어하는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완득이는 고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컴플렉스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이 과정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완득이는 똥주가 애초에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작품의 결말즈음에 완득이와 똥주의 관계는 깊어진다. 처음엔 똥주를 인간 말종으로 보던 완득이는 점점 똥주 이면의 따뜻함을 알게되고 여러 우연과 사건이 쌓여 둘은 가까워진다. 재미있는 점은 똥주에 대한 완득이의 인식이 뒤집어지는 결정적 사건이 없다는 것이다. 소년이 그저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상 속에 융화되어 어른이 되듯, 완득이와 똥주의 화해도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똥주는 완득이가 살아가는 거지같은 세상의 의인화였다. 소년이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나름의 행복도 있음을 깨달을 때,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비로소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