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낭만
직장에서 '상사를 모신다'는 말은
상사의 존재가 직장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표현한다.
상사와 선임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상사는 선임보다 더 무겁고 권위적인 존재로 느껴진다
신입 시절, 1년 선임이었던 사람조차 상사처럼 느껴졌다.
직급이 높지 않아도 무언가 묘한 권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후임을 받게 되었을 때, 나도 그 권위를 흉내 내보았다.
아마 그 후임도 나에게서 상사의 좋지 않은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상사에게는 낭만이 있었다.
상사는 술값을 계산하고, 사고가 생기면 책임을 지고, 후배의 생일까지 챙기곤 했다.
물론 그 표현 방식이 깔끔하진 않았다.
흔히 말하는 '츤데레' 보다는 더 투박하고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 그게 나쁠 이유는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랬었다.
야근 후 상사들과 어울려 술 한잔 얻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지적받기도 하는 것이 후임으로서의 낭만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상사가 되었을 때, 후임들과의 술자리에서 결제를 하며
속으로는 ‘얼마나 나왔을까?’ 긴장하기도 하지만
겉으로는 “이런 건 원래 윗사람이 사는 거야~”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했다.
그 순간은 내가 상사로서의 낭만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후임들의 낭만은 사라진 것 같았다.
“오늘 끝나고 술 한잔 할까?”라는 말에 정적이 흐르고,
커피 한잔 사주려 해도 거절한다.
본인이 결제하거나, 아예 마시지 않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낭만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싶었다.
덕분에 돈은 많이 아꼈지만, 잔소리도 덜 하게 되었다.
상사의 낭만은 더 이상 밥이나 술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그 낭만조차도 결국 이기심의 영역이다.
후임들은 이제 더 이상 상사와 저녁을 함께 보내려 하지 않는다.
“내가 왜 당신과 시간을 보내야 하죠?”
“당신에게 커피나 밥을 얻어먹을 이유가 없어요”
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듯하다.
받은 게 없으니 줄 것도 없다는 냉정한 이기 속에서 상사와 후임 간의 유대는 옅어졌다.
물론, 아직도 상사에게서 낭만을 찾는 몇몇 후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비율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나는 상사로서 낭만을 지키려고 했지만, 어쩌면 그 역시 내가 가진 이기심의 한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한 낭만이 괜찮았으니, 나도 후임에게 그렇게 하는 게 괜찮을 거라는 이기심 말이다.
지금, 내 이기심은 상사의 낭만을 자주 외면한다.
상사의 낭만을 외면하는 게 편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내 상사들도 그 윗 상사들의 낭만을 외면하고
우리에겐 낭만으로 포장한 이기심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받은 상사의 낭만은 순수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그 속에 이기적인 계산이 숨어 있었던 걸까?
그 답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낭만이든 이기심이든, 결국 모든 인간관계는 주고받음의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내가 모신 건 상사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준 낭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낭만마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서로의 이기심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