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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J Nov 12. 2024

광고이야기 8.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없지만

광고업에 있다 보니, 디렉션의 명확함에 대해 종종 고민하게 된다.

수학 공식처럼 ‘A와 B를 더해 C라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보니,

디렉션은 그 자체로 두리뭉실하거나 개념적인 경우가 많다.

"마음을 울리면서도 제품의 기능적 특성을 담고, 말투는 친근했으면 좋겠어" 같은 식의 디렉션이다.

이런 디렉션을 받으면, 각자의 경험이나 해석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렉터가 마음속에 원하는 결과는 하나로 정해져 있다.

이런 디렉션을 주고받는 과정은 일반적인 회사에서 받는 업무 지시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다른 업계에서 이런 디렉션을 받으면, "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저연차일 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는 기분으로

디렉션을 받아들이고 신대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밤을 새웠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또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이런 두리뭉실한 디렉션을 풀어내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당연히 저연차일수록 이해도는 떨어진다.

이에 저연차를 탓하는 건 너무나도 가혹하다.

광고업계를 제외한 다른 업계에서는 이런 디렉션을 접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 패션, 주얼리, 럭셔리업계도 제외하자


그렇다면 왜 CD나 광고주가 이런 디렉션을 주는 걸까?

경험상 아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는,

다양한 관점의 아이디어를 받기 위해 일부러 열어두고 디렉션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우다.

이는 장점도 있지만, 팀원들은 마치 스무고개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총알이 많다고 모두 맞는 건 아니다. 영점이 잘 맞춰진 총에 3 발정도면 충분하다.

두 번째는 부정적인 이유로, CD가 광고주의 미션의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모호한 디렉션으로 덮으려는 경우다.


CD라는 롤은 전반적인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 맞는 매스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제시에는 확실한 디렉션과 레퍼런스가 필수적이다.

디렉션을 위한 CD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CD가 되면,

그 자리에 오르면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받아

안을 만들어 정리하는 게 전부일 거라 생각한다.

결국, 팀원의 맨파워가 CD의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CD는 결국에 팀원을 탓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CD의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는 팀원일 때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이끌어야 하는 자리다.

광고가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 지점은 광고주의 디렉션이 모호할 때 그 방향을 잡는 과정에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전략과 방향을 디렉션하기 위한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경험상 모호한 디렉션을 주고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나오는 건 일시적으로 편한 일이지만,

그 다양한 아이디어를 후에 다시 하나로 묶어가는 과정은 때로 고독하고, 혼란스럽고, 힘들다.

다시 돌아보면 앞뒤 맥락이 안 맞는 이야기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을 버리거나 홀로 다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선호하는 건 ‘열어두고 아이디어를 받는’ 그런 모호함이 아니라,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에 맞는 아이디어를 쌓는 것이다.


디렉션이 분명할 때, 팀원들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 아이디어들이 하나의 목표로 이어질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피드백도 의미가 있다.

목표는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이 의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팀원들에게 아무리 의견을 물어봐도 필요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면

목표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사람들끼리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광고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팀원도 소비자도 모두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디렉터의 역할은 단순한 관리자, 피니셔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모두를 이끌어가는 리더’다.

중간에 방향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팀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때 광고는 비로소 제대로 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크리에이티브가 사람들에게 닿을 때, 밤새며 힘들게 한 이 일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미 없는 밤샘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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