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직언 사이에서

조언 좀 할게… 아니, 지적이야

by 이기적 J

오래 일하다 보면 한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그럴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한다.


‘내가 그의 인생에 개입해야 할까?’

‘내가 살아오며 쌓은 경험을 쏟아내 그가 더 나은 길을 걷게 해야 할까?’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


‘아니, 그의 인생은 그가 만들어가는 거잖아.’

‘내 경험이 정답은 아닐지도 몰라.’


결국 나는 후자를 선택해 왔다.

내 의지로 하는 조언은 조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조언을 하면서 속으로든 대놓고 든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잘되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하지만 의지가 담긴 조언이라는 건 결국 나의 기대가 들어간 말이다.

그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담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포장해도, 조언에는 의도가 있다.


조언을 듣는 입장에서, 그것이 진심 어린 충고인지,

혹은 상대의 불만을 부드럽게 전달하는 방법인지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상대는 듣는 척만 하게 된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의도에 답하다 보면 결국 오해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오해는 종종 ‘조언을 듣는 이의 잘못’이 된다.


조언을 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상대가 부족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네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내가 채워줄게"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정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경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린 로봇처럼 입력값을 넣으면 답을 내는 존재가 아니다.

그 조언이 누군가에겐 정말 어려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벽에 부딪힌다.

인생 1년 차의 벽이던 50년 차의 벽이던

본인에게 다가온 두께와 무게는 비슷할 것이다.

모두에게 그때는 그때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 조언을 요청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조언을 요청한다는 건 내가 참고해서 적용할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반면에 조언이 마려운 상황이라면, 어쭙잖은 조언 대신 직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직언은 명확하다. 나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의도가 명확하면 상대는 그걸 받아들이든 반박하든, 최소한의 생각은 해볼 것이다.


반면 조언은 흐리다.

의도 있는 조언은 더더욱 흐리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상대에게 조언도 의도도 닿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요청하지 않은 조언이 지금의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는가?


그래서 나는 쉽게 조언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의견을 원할 때만 말한다.

스스로 필요할 때 찾아올 수 있도록, 나는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그가 스스로 질문할 때까지.

조언은 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상대의 인생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