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이야기 11.

CD = Care Director?

by 이기적 J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대리를 막 달았을 때 신입으로 만난 친구였다.

비전공자로 편입까지 하며 이 바닥에 뛰어든 사람.

나와 나이도 비슷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밤새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사이.

비록 6개월뿐이었지만, 이직 후에도 가끔씩 연락은 주고받았다.

만나지는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잊지는 않는 그런 관계였다.


그가 연락했을 때, 지레짐작으로 결혼 소식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했다고 했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게 조금 서운했지만,

애초에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 친구답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가 전화를 건 이유였다.


그는 항상 직업으로서 광고를 선택했다고 했다.

광고가 하고 싶어서 편입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림을 만드는 쪽으로 직업을 갖기 위해 편입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의 아이디어들은 기억에 남는다.

요즘말로 보법이 달랐다.

그는 마치 광고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했다.

신입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빛났고, 나 역시 그를 특별하게 봤다.

내가 이직한 후에도 추천을 부탁받으면 그를 추천했다.

그가 작은 회사에 있는 게 아까웠다.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위로 올라오지 않았고, 작은 회사들에 묻혀 있었다.

내 계속된 추천에 결국 메이저 회사의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미안함에 연락을 못 할 정도로 그의 커리어가 무시당했다.

그의 능력이 회사의 규모와 온에어 개수에 밀려 평가절하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이야기하던 '이 바닥 떠날 거야'가 생각났다.


뜻밖에도 그는 이제 막 CD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프로젝트에서 동료와의 트러블이 있었고,

그로 인해 ECD에게 업무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단어 선택, 표정, 감정 조절.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 친구가 어떤 말투, 표정, 감정으로 이야기했는지 내가 직접 보지 않아 모르지만,

느낌상 미묘한 차이였던 듯했다. 그 친구도 그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ECD는 ‘요즘 CD’가 해야 할 역할을 설명해 줬지만, 그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ECD가 말한 요즘 CD의 역할이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헤아리고,

표현을 조심스럽게 다듬으며, 서로 양보하며 진행하는 것으로 들렸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CD는 그렇다.


과거의 CD는 광고 회사의 왕이었다. 적어도 왕자였다.

CD의 권한과 권력은 막강했고, 모든 스태프들의 집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CD는 모두의 눈치를 살피고, 최대한 마찰 없이 진행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프로젝트를 끌고 간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반기를 들면, 프로젝트가 멈춰버리는 시대다.


그 친구의 고민이 이해됐다. ECD의 말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CD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CD로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 조율할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요즘 광고들이 날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 비슷한 화법, 비슷한 비주얼을 가진 광고들이 연속으로 나온다.

비교우위를 가늠할 수 없는 광고들. 난 그 원인에 모두의 합의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긴 통화 속에서 내가 계속 생각한 것은 ‘왜 나에게 전화했을까?’였다.

그저 6개월 정도 함께 일한 선배에게,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의 고민을 털어놓은 이유는 뭘까?

아마 그때의 내가 그의 CD관과 같은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놀랐던 건 그에게 CD로서의 열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저 돈벌이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그는 CD로서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나는 그러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CD로서, 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예전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무조건 모두를 배려하는 것도 답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


나는 그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그가 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