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그 의심 많은 감각에 대하여
광고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이거다.
“그냥 감으로 했어.”
감. 직관. 영감.
멋지게 들린다. 뭔가 있어 보이고, 재능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어처럼.
그런데 내가 느끼기엔, 그건 늘 의심해야 하는 감각이다.
믿고 싶은 만큼 위험한.
나도 이 일 오래 했다.
어느새 십수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의 패턴이 보이고, 나만의 감각이 생긴다.
그게 바로 ‘직관’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그 직관, 내 분야 안에서만 유효하다.
광고의 표현 방식, 스토리의 흐름, 화법
이건 내가 잘 아는 영역이고, 내 몸에 밴 감각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광고주가 누구인지, 어떤 산업군인지, 어떤 시장 흐름에 있는지
그건 내 직관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모든 업계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일한 기간 = 능력.
그래서 경력이 많으면 능력도 많고, 오래 했으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 착각이 더 큰 착각을 부른다.
‘내 직관이 모든 분야에 통한다’는 믿음.
그 믿음은 위험하다.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다.
아이데이션을 오래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였는데,
윗사람 중 하나가 말하길.
“내 지인 중에 이 업계 덕후가 있는데…”
그 사람 말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그 사람의 경험을 주절주절 늘어놨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랫사람이었기에 그 말을 기반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다.
망했다.
그 사람의 덕후력은 결국 그 사람만의 해석일 뿐이었다.
객관도 아니었고, 보편도 아니었고, 근거도 없었다.
다만 관계의 확신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작은 경험은 경계하고, 보편적인 자료를 우선해야 한다.
뉴스, 책, 리서치, 통계, 트렌드 분석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 사고의 출발점을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
사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항상 우연처럼 보인다.
어떤 날은 뉴스 한 줄이,
어떤 날은 영상의 한 프레임이,
어떤 날은 그냥 멍 때리는 동안 툭 하고 튀어나온다.
나도 잘 모른다. 언제 어디서 오는지.
다만 확실한 건 있다.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
머리 한구석에서 뭔가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
그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나는 확신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생각한다.
“괜찮은데?”
그게 내 방식이다.
항상 가능성을 본다.
확신은 멈춤을 부르지만, 가능성은 더 깊은 탐색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결정까지 유보하는 건 아니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직관을 동원하고, 근거를 붙이고, 빠르게 결론을 낸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예술가적인 감각과 논리적인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물론, 내 직관이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모든 걸 동원해 결정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게 설명하고,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끔은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직관과 데이터와 컨셉과 비주얼이 하나로 정렬되는 순간.
그땐, 나도 고집을 부린다.
그건 자만이 아니라 신념이다.
“이건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
직관이란 건, 결국 의심 많은 감각이다.
그걸 믿되, 맹신하지 말고.
그걸 따르되, 근거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배운 태도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