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J Sep 28. 2024

광고이야기 3.

나 때문이다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와 일해서 된 게 하나도 없어!”


한때 몸 담았던 회사의 CD이자 이사가 뒤에서, 또 앞에서 늘 하던 말이다.

그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메인 광고주의 이탈로 새로운 광고주를 영입해야 했고,

수의로 계약을 따낼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PT라는 전장에 계속해서 참전했다.


원래도 PT를 많이 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배수의 진을 친 예민하고 살벌한 전쟁터였다.

팀의 분위기는 잦은 패배로 인해 수장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수장은 능력, 커리어, 성과 모든 면에서 팀을 이끌기에 부족해 보였다.

그런 그의 눈에 드는 아이디어는 없었고, 그가 맘에 들어 한 아이디어는 우리 눈에도 차지 않았다.


아이디어 선택은 계속 미뤄졌고, 제안 하루, 이틀을 남기고 다수결로 아이디어를 선택했다


선택되었다는 것에 한숨 돌렸지만 그 아이디어는 그의 손을 거쳐 더 형편없어졌고,

우리는 잦은 야근과 감정적 소모 끝에 결국 좋은 결과가 아닌 기약 없는 퇴근만을 바랐다.

그때 나는 6년 차였고, 그 이사는 20년 가까운 경력의 소위 고인 물이었다.

가끔씩 그의 경험에서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가 실무에서 손을 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결심했다.


‘이 업은 마흔을 넘기기 전에 그만둬야겠다!’


그 이사의 기억과, 시대의 변화 덕분에 나는 지금 그만큼 무능하지는 않지만,

내 결심과 달리 마흔을 넘어 여전히 이 업에 남아있다.


생계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무섭게도, 성과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불쑥 든다.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지만,

아마 내 눈빛이나 태도로 그런 생각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회에서 이기적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책임에 대한 무게 때문이다.


지금 다시 과거의 이사를 생각하면, 그는 아마도 그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PT에서 이기지 못하면 조만간 직원들의 월급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었던 것 아닐까.

온전히 책임을 지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팀에게 돌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책임은 어디로도 옮길 수 없다

결국 실패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돌리려는 그의 말속에는 가짜 이기심이 숨어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만을 이기적으로 선택했더라면,

그가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진짜 이기적 선택은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결과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연대책임 속에서 그는 이기심을 버린 듯했지만, 그 실패의 결과에 다시 이기심이 끓어올랐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를 비판했지만, 점점 더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과연 온전히 이기적인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나는 그 책임을 감당하면서도, 나만의 이기심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잘 되어도 못 되어도 나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기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고이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