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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간디 Dec 05. 2020

홍콩으로 순간이동을 하면 소원이 없겠어요.

CHUNGKING MANSION, 2018

ig @bibigenie_film


 나는 홍콩 덕후다. 지금 같은 시기에 일이나 학업의 목적이 아닌 이유로 남의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서, 마치 누군가와 이별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상사병에(?) 시달리고 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으로 상사병 수준으로 그립다. 그 분위기가 너무 그립고, 홍콩에 갔던 때 찍었던 사진들을 열어 보면서 더 그리워하고 있고, 밤에 자기 전에 아련하게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홍콩 사진들을 본다. 


 그러던 중에 오래전 브런치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저장해 둔 이 사진을 발견했다. (브런치는 무려 2018년에 승인을 받았는지 그때의 글이었다. 지금은 2020년 말.. 이제서야 하나둘씩 글을 쓰기 시작하니 약간의 반성이 필요하다.) 처음 홍콩에 갔을 때 청킹맨션을 찍었던 사진이다. 


 내가 홍콩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왕가위 감독의 영화 때문이다. 신의 미장셴을 구현하는 감독, 홍콩의 그대로를 색채로 구현할 수 있는 감독, 내가 영상을 함에 있어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왕가위! (극찬 끝) 

청킹맨션은 왕가위의 영화 중 유명한 '중경삼림'의 배경이었던 곳이다. 주변에는 짝퉁 시계를 파는 외국인이 한국어로 '언니, 언니!' 하며 말을 거는 다소 무서운(?) 곳인 이곳은 홍콩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공간 중 하나였다. 


 다행히 외국인인 나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구석도 아니고,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건물이라 손쉽게 갈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청킹맨션에 가기 전 여권과 비행기 표와 지갑이 든 손가방을 도둑맞았다. 페리를 타는 선착장에서 손가방이 사라졌었는데, 선착장에서 침사추이 경찰서까지 가려면 청킹맨션을 지나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청킹맨션을 침사추이 경찰서에 가는 길에서 만났다. 그 때 촬영한 이 사진을,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찍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다. 


 정말 다행히도 그 길로 찾아간 침사추이 경찰서에서 영화같이 나의 가방을 가지고 온 홍콩아트센터의 관리인 분과 마주쳐 (홍콩달러로 환전한 현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가방과 지갑, 여권, 비행기 표는 그 자리에서 돌려받을 수 있었다. 홍콩 경찰이 웃으면서 "You're so lucky girl!"하던 모습, 관리인 분과 침사추이 경찰서에서 홍콩아트센터까지 걸으며 느꼈던 그날의 온도, 습도, 기분.. 긴 길을 걸으면서 관리인 분이 "홍콩엔 왜 오게 되었니?"라고 물었을 때, 신나게 왕가위 감독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그 날은 이 사진 한 장에 다 담겨있는 듯하다. 


 오늘도 나는 홍콩을 그리워한다. 내가 홍콩에 오래 살다 온 것도 아니고, 그곳에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단순히 나는 그곳의 '덕후'이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는 홍콩이 그립다. 지금이라도 홍콩으로 순간 이동을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어요. 


CHUNGKING MANSION, 2018 / canon g7 mark2 / copyright by. bibigenie(최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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